“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 Suddenly, Jesus himself came along and joined them and began walking beside them. But they didn't know who he was, because God kept them from recognizing him.” (누가복음 24:15-16)
낯선 사람으로서의 예수님,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는 길에서 만난 예수님이 그저 낯선 사람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시지만 얼굴이 전과 같고 몸도 전과 같은 체구이실 터인데 그들이 알아보지 못한 것은 참 이상하다. 더욱 더한 것은 십자가 사건 이전에 주님께서 그토록 여러 번 제자들에게 곧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이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 중 한사람도 이를 염두에 두고 믿음을 가지고 부활하실 예수님을 기다린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믿기지 않는다.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쯤 되는 엠마오라는 촌으로 돌아가는 예수님의 두 제자도 그저 슬픔에 잠겨 소망을 잃고 실망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가리워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의문은 왜 하나님은 그들의 눈을 일부러 가리워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셨을까 하는 것이다.
길가는 중에 다가온 낯선 사람이 가까이서 보니 주님이시라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고 가정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못 알아보아 일어난 상황과 서로 비교하여 생각해 볼 때 왜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가리우셨는지에 대한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바로 알아보았다면 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일단은 심히 놀라서 두려워하며 도망을 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던지 아니면 너무 기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흥분의 상태에서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런 소란하고 흥분된 상황으로 인하여 대신 주님은 제자들이 이번 십자가 사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진정한 소감과 고백에 대하여 그들의 입으로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셨을 것이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제자들의 현재 영적 수준을 친히 확인하시는 기회가 된 것이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다가가시어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물으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서 이렇게 대답 하였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이 대답을 들으신 주님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어서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이라 하지만 다시금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과 그분이 누구신가에 대한 말씀들을 다시 듣고 공부할 필요가 있었고, 그런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마침내 주님이 오셨으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 졌음을 일목요연하게 듣고 깨달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성경이 무엇, 누구에 대하여 써놓은 것인지를 모르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목적과 그 담겨진 숭고한 의미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과연 십자가 사건이 갖고 있는 목적과 의미는 그 어느 것보다 귀중하고 거룩하며 숭고하거늘 그들이 깨닫지 못함은 그 이전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성경의 핵심을 다시 찬찬히 그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 누구를 위하며 무슨 목적을 갖고 있나를 비로소 분명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들과 걸어가시며 성경을 풀어 가르쳐 주시다가 마침내 예수님은 저녁자리에서 다시 성찬을 베푸셨는데 비로소 저희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줄 알아보았으나 예수님은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였다.
말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주님도 몰라본다. 말씀이 나를 뜨겁게 하고 어둠과 빛을 구분하게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내 안에서 꿀처럼 달게 느껴질 때까지 늘 묵상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