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 렘29:11-14
제목 : 하나님의 생각을 아십니까?
김경열 목사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And you will
seek Me and find Me, when you search
for Me with all your heart.(Jeremiah29:13)]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이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해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가고
가정의 행복이 파괴되고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끔찍한 사건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을 때가 있고
거짓을 말해도 속을 때가 있습니다.
오해는 대부분 내 주관적인 입장에서만
상대를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해와 이해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면 오해가 되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면 이해가 됩니다.
미국 초창기 때는 요금 1달러에
기차를 먼 거리도 다닐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차에 어떤 젊은 남자가 아이를 안고 탔는데
아이가 계속 울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달래도 아이는 더 웁니다.
피곤해서 잠을 좀 자면서 가려던 승객들은 짜증을 냅니다.
그중 성질이 급한 승객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엄마가 데리고 다녀야지
엄마는 어딜 가고 시끄럽게 아이를 울리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이 젊은이는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사실은 제 아내가 세상을 떠나서 시신을 싣고
지금 장례를 치루기 위해 고향으로 가는 중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사과를 했습니다.
모든 승객들은 숙연해 졌습니다.
엄마가 죽어서 우는 아이를 데리고 가야만 하는
이 젊은 아빠를 오해했던 승객들은
오히려 위로하며 이해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내 기준에서 생각을 할 때 오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운 벌을 내리는 하나님으로 생각하여
벌을 받을까봐 주일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안 드리면 물질을 거둬가지 않을까
하면서 무서운 하나님으로 드립니다.
충성을 해도 기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서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굉장히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는 신앙의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습니다.
한 분이 교회를 처음 왔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가장 싫었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자신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너무 아픈 상처와 나쁜 인식으로만 각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식구를 괴롭히고
어머니를 이유도 없이 구타하고 생활을 전혀
책임지지 않는 무능하고 무서운 아버지였답니다.
어릴 때 아버지에 대한 나쁜 생각과 가치관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나서 아버지란 인식이 바뀌었고
하나님 아버지란 이름을 부를 때
지금은 행복함을 느끼고 따뜻한 손길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책임지시고
돌보시고 양육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의외로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나 가치관 때문에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상실하고 신앙생활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채찍을 맞았고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죄를 짓고 잘못된 길을 가고 우상을 섬기며
자꾸 뒤돌아 볼 때마다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사랑의 징계요, 채찍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생각이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서운 하나님, 벌을 주고 재앙을 내리는
하나님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에
희망을 주는 것이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벌이나 주고
재앙이나 내리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11절)
1)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과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안 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고 인도하심이 있고
함께 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낙심하고 근심하며 절망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나의 생각은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래 생각이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도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러 왔다고 하셨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첫 말씀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도 항상 평안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면 환경과 조건을 초월해서
성령 충만할 때 평안을 누렸습니다.
행 8:1에 예루살렘의 핍박으로 흩어진 제자들이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평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평안주시길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려운 시련을 만나고 고난이 있을 때
어떤 하나님으로 각인되어 있습니까?
평안의 하나님, 아니면 재앙의 하나님인가요?
생각을 바꾸어 보세요.
인생의 행복은 마음과 생각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요,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재앙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면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며 평안을 주십니다.
반면에 마귀는 끊임없이 근심과 불안과
부정적인 생각을 줍니다.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지배할 때
가장 큰 특징은 마음이 번뇌하였다고 했습니다.(삼상16:14-15)
번뇌란 마음이 복잡한 것입니다. 뒤엉킨 마음입니다.
근심 걱정 불안 염려 오해가 얽혀서
스스로 영혼이 황폐해지는 영적인 질병입니다.
번뇌하는 마음 속에는 안정이 없습니다.
평안한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불안한 마음을 해결하려고
사울왕은 변장을 하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인생의 진로를 묻다가 망신 당한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번뇌는 언제 생길까요?
삼상 16:14에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사로잡을 때라고 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혀 번뇌하는 마음은
시기와 질투심으로 나타납니다.
사울은 사랑의 관계로 살아야 할 자기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지고 미친개처럼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칼을 세워놓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번뇌는 절망과 좌절, 미움과 분노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경은 사울의 이런 마음을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지배했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평안을 빼앗고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안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성숙한 신앙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릴 줄 아는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은 미래의 희망을 주시길 원하십니다.(11절)
사람이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희망이 생기면 의욕이 생기고 삶이 소생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희망을 잃으면
의욕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사업에 실패했더라도 나는 실패자라며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고
병들었을 때에도 나는 병든자라 하며
희망의 끈을 놓는 것이 더 무서운 병입니다.
하노이 병원에서 두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한 사람은 경환자인데 죽었고
한 사람은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인데 살았답니다.
원인을 조사 연구해 보았더니 어떤 의술보다도
환자의 마음에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살게도 만들고 죽게도 만들더랍니다.
경환자인데도 입원을 하면서 의사를 만날 때마다
의사선생님 나는 며칠 정도 더 살 것 같아요?하고 묻고
당신의 병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믿지를 않고
아닙니다. 나는 곧 죽습니다.
우리 집안에 장수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면서
절망에서 헤어나질 못하더니 결국 죽더랍니다.
그런데 중환자는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오히려 콧노래를 부르면서 나 언제 퇴원합니까?
제가 이런 병 갖고 죽을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집안은 아주 장수하는 집안입니다.
입원하는 날부터 퇴원하는 날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지내더니 정말 현대 의학을 뛰어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서 퇴원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희망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민들도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불안하고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현실을 아시고 하나님은 내 백성들에게
미래의 희망 주시길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미래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시간입니다.
많은 점술가들이 미래를 예측한다지만
진정한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평안과 희망을 주신다는 약속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도 미래를 책임지시고 꿈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2.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2-13절)
1) 부르짖어 구하라. 응답하신다(12절)고 했습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다윗도 시 118:5에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고 했습니다.
렘 33:3에도 “너는 내게 나와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시리라.” 하나님은 평안만 주시고
미래의 희망만 주신 것이 아니라 내게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기도는 개인을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역사를 움직입니다.
지금 세계의 미래를 여러가지로 예측하고 있지만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우리 남북통일도 무력이 아닌 기도가 앞서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낭비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바쁜 시간이면
기도시간을 더 늘렸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돌아가는 길을 곧게 만들어 주십니다.
황폐하고 구부러진 인생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독일의 통일을 가져온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것도 기도였습니다.
얼마 전까지 독일도 한국의 남, 북한처럼
동, 서독으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이 통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통일이 되었던 원인이
기도의 힘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동독에서는 5년 동안 라이프찌히 광장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7명의 성도들이 기도 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의 제지로 인해 광장에서 모이지 못해
성 니콜라이 교회로 옮겨 개최되었습니다.
이 기도회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1989년 10월 23일, 라이프찌히 평화기도회에
30만 명이 운집하였고 11월 4일에는 무려
50만 명이 모여 기도하면서 하나된 독일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후일 동독 비밀경찰의 최고 간부 진더만은
이렇게 실토했습니다.
“통일을 막을 만반의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일어난 기도운동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라이프찌히 광장에서 시작된 7명의 기도 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28년간 막혔던 철의 장막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한 것입니다.
독일은 정치나 문화나 다른 것으로 통일이 된 것이 아닙니다.
전문가들도 20-30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다고 했던 통일이
복음과 기도로 철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지도 모르는 남북통일도
무기나 군사력만 의지하면 모두에게 불행일 수 있습니다.
독일 통일처럼 복음과 기도로 이룰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으라. 그러면 만나리라(13절)
고 하셨습니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고 나를 찾으라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구하고 찾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주신다고 말합니다만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역할이 있습니다.
공부는 안하고 시험볼 때 답안지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만 했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은 돌문을 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해야 할 역할과
주님이 하시는 역할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돌문은 우리가 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요 2장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을 떠오는 것은 하인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물이 포도주가 되게 변화시키는 것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역할입니다.
하나님도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역할에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 일, 믿음으로 사는 일,
성경을 읽는 일, 충성하는 일, 전도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으로 마음에 각인되어 있습니까?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시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재앙이 아닌 평안을 주실 길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미래에 희망 주시길 원하시며,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들어주시고,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주시리라 약속 하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평안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며,
응답이 보장되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축복합니다.
평생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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