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이사애 9장 6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복음뉴스 0 2022.12.20 08:33

제목 : 성탄절에 시작된 “나”의 구원

본문 : 이사야 9:6

 

영국왕실의 왕손 출생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혹시 집안에 자녀들이나 자손들이 태어난다면 매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혈육이 태어나니까요. 그러면 예수님의 탄생은 어떠해야 할까요? 더욱 관심가져야 합니다. “나” 영혼의 구원, 나아가 영혼육의 구원에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시기 약 7백 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내용입니다. 이 과거의 예언의 말씀이 2천여년 전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아울러 오늘날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도 잘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 예수님의 탄생이 “나”의 구원과 지대한 상관이 있을까요?

 

1. 첫째로, 예수란 한 아기가 “나”에게 났기 때문입니다 to ‘me’ Jesus a child is born

본문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 (히, 예레드)

 

물론 그 분은 모든 인류에게 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분명히 우리에게(to us)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나와 직결된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기가 아닌, 다 자란 성인으로 바로 이 땅에 오시면 안됐습니까? 이에는 성경의 예언으로도 간단히 답을 줄 수 있습니다 (창 3:15; 사 7:14). 그러나 보다 더 깊이 알아보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기 위한 가장 완벽한 방법이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제정하신 창조의 법칙에 따라 여자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육신 + 동정녀 탄생)

본문에서 '낳다'는 단어는 메시아의 '인성'을 가리킵니다 (박윤선). 또한 메시아의 탄생 과정에서 인성을 갖는 방법으로 인간과 같이 '태어나심'을 취한 것입니다 (Calvin).

 

그런데 그 아기는 다른 아기들과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사람의 욕정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됐습니다 (마 1:20후반). 남자를 모르는 처녀의 태를 잠시 빌려,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마 1:23전반). 

 

이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교인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오셨다는 이 사실을 믿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 것은, 이를 시인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구원 받은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일 4:2-3전반).

 

우리 모두 “나”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아기의 육체로 오신 사실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적그리스도가 아닌, 하나님께 속하시길 축원합니다!

 

2. 둘째로, 예수란 한 아들이 “나”에게 주신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to me Jesus a son is given

본문 “...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  (히, 벤)

'주신 바 되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는 '신성'을 가리킵니다 (박윤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은 인간의 상상을 완전히 초월한 것입니다. 그러나 죄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롬3:10), 죄 없는 인간이 태어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히 4:15후). 예수님이 아담의 혈통으로 원죄를 갖고 태어났다면 절대로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도 죄인인데 누구의 죄를 속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때문에 사람의 아버지의 씨를 받지 않은, 성령님의 능력을 통한 이적으로 동정녀의 몸을 빌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 예수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또한 이 땅에 사시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다 완성하시고 죄를 지으신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천사처럼 영으로 오실 수 없으셨습니까? 이게 두번째 의문입니다. (앞서 첫번째 의문은 아기가 아닌 성인으로 오면 안되었나? 였습니다.)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요? 천사처럼 영으로 오시면 죽으실 수 없지요. 혹시 그럴리는 없었지만, 종된 천사로 오시면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들로 삼을 수 없고 다만 종으로 만들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면 죽지 않으실 수 없었습니까? 통일교에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거짓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둘째 아담, 문교주 자신은 세째 아담이라고 거짓 주장을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부르는 적이 없습니다. 첫사람 아담이요, 마지막 아담 예수님일 뿐입니다 (고전 15:45). 

 

실로 예수그리스도는 하늘 영광을 스스로 버리시고 인간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추악한 죄인들의 형틀인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중의 괴수에게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주셨습니다. 이 시간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려 성탄에 이 세상에 태어나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길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탄생이 “나”의 구원과 지대한 상관이 있는 이유는, 예수란 아버지가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with me Jesus a father is accompanied

본문 “...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히, 아비 아드)

 

이처럼 성경은 예수님을 “영존하시는 아버지” (히, 아비 아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라는 의미는 삼위 하나님의 한 분인 성부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시발자’ 또는 ‘보호자’란 뜻입니다. 내게 생명을 전달하는 시작과 근원이며 보호자가 된다는 의미에서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식 사고에서 아버지는 아들과 상관되는 개념이라기보다 부양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후원자, 보호자 등의 개념과 보다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비 아드”는 그의 백성들, 더 넓게는 피조물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호자는 우리 인간의 죽음의 처절한 고통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아픔을 친히 체휼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지식으로 인간을 이해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몸으로 온 생각과 마음을 인간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죄와 허물로 고통 당하고 있는 인생들의 아픈 현실과 극심한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을 가리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않는 자가 아니요”(히 4:15전반)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인간을 속속들이 체휼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안고 있는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인생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히 2:18). 

그렇습니다. 그분은 한 순간 만의 구주가 아니십니다. 영존(永存)하시는 보호자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보좌 우편에서 간구하시며 보호하십니다 (롬 8:34).

영원한 보호자되신 주 예수님은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에 영속적으로 개입하여 주십니다! 

또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탄식하는 마음을 위로해 주시며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매었고). 

예수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그 이름은 기묘자라). 

예수님은 지혜자십니다 (모사라).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아기 예수가 없는 크리스마스? 성탄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왜요? 아기 예수가 없다면, 아들 예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아버지 예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대속이 없습니다. 하늘 보좌의 중보도 없습니다. 

따라서 아기 예수님이 없다면, Christ (구원주)의 day(날)이, 구원주 (Christ)를 위한 예배 (mass)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인류의 구원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구원이 없습니다. 바로 이 성탄절에 예수님이 탄생하셔서 “나”를 구원하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모든 삶이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이 되신 것입니다.

 

찬양 가사)

1.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구세주의 사랑이야기

영광스런 천국 떠난 사랑 나와 같은 죄인 구하려

2.넓고 넓은 우주 속에 있는 많고 많은 사람들중에

구원받고 보호받은 이몸 주의 사랑 받고 산다네

3.사람들은 이해할수 없네 주를 보낸 하나님 사랑

이 사랑이 나를 살게 하네 갈보리의 구속의 사랑

후렴)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놀랍네 놀랍네 오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나를 위한 그 사랑

 

우리 모두 X-mas를 기념하고 대망하며 환영하십시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구주를 맞이하십시다. ‘나’의 구원이 시작된 날을 기뻐하십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아기 예수님,” “아들 예수님,” “아버지 예수님” 으로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영혼의 구원과 더불어 “나”의 마음과 육체, 더 나아가 일상생활의 구원까지도 받도록 시작된 성탄절을 기념하시길 축원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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