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이사야 61장 1-3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복음뉴스 0 2022.10.04 17:15

제목 : 슬픈 자를 위로하는 복음_ 복음축제5

본문 : 사 61:1-3

 

1절에 “좋은 소식” 이란 단어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good news로 바로 복음이며  구원의 소식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비유적으로 “여호와의 얼굴과 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팔”의 나타내어짐으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사 52:10).

 

“하나님의 팔”은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는 10가지 재앙으로 출애굽시키고 홍해를 가르던 위대한 구원의 능력이었습니다 (시 89:10; 사 51:9, 62:8).

한편으로는 주권적 능력과 부드러운 목자의 긍휼이 결합된 형태이기도 했습니다 (사 40:10-11). 반면에 이사야 53:1에선 주님의 팔이 거부당하고 끔찍하게 부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을 말했습니다. “주님의 팔”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갈보리 십자가에서 세상의 구속을 위해 벌려지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 (눅 24:21) 로서, 또한 모든 인류를 “속량 곧 죄사함을 얻게” (골 1:14) 하시려 대신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 인간들의 영혼육을, 곧 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이 놀라운 복음을 받아 들임으로 기독교인이란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같은 복음은 특히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는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본문 2절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슬픈 자를 어떻게 위로하십니까?

 

1.비통함 대신 아름다움을 주십니다

본문 3절 전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원문의 이 구절에는 멋진 대구법이 쓰여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슬퍼하는 자들에게 epher(재,  ; 에페르)를 대신하여 pheer(아름다움-화관,  ; 페에르)을 주게 하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슬퍼하는 자들에게 “에페르”를 “페에르”로 마치 한 글자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빠르고도 쉽게 비통함을 아름다운 영광으로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악독한 계략으로 인해 온 유다인이 죽음을 당할 형편임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애통해 했습니다(에 4:1). 그러자 결국은 온 유다인의 슬픔이 기쁨으로, 나아가 그는 왕 다음의 2인자로 높힘을 받았습니다 (9:22; 10:3).

 

“화관”이란 말은 은유적 용법으로 영광의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생애가 끝날 날이 왔을 때에 의의 면류관을 언급했습니다 (딤후 4:8). 믿는 우리는 야고보 지도자가 말한 바와 같이 "생명의 면류관"(약 1:12)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가 언급했던 것처럼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벧전 5:4). 그리고 그러한 면류관들은 "충신과 진실한 자"(계 19:11)인 우리 주님에 의해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계 2:10) 주어질 것입니다. 이같은 면류관들을 요한은 하늘의 보좌에서 장로들이 쓰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계 4:4). 

우리 모두 슬픈 자가 되어 하나님께 복음으로 위로받으시길 간구합니다. 오늘의 비통함이 내일의 아름다운 영광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둘째로, 슬픈 자에게 슬픔 대신 기쁨을 주시며 위로하십니다

본문 3절 중반 “...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랑스럽지 못하게 만드는 '슬픔을 대신하여' 얼굴을 빛나게 하는 '희락의 기름'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즐거움의 기름으로" 다른 왕들보다 뛰어나게 되시기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시 45:7).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명은 지상에서 제자들에게 이러한 기름 부음의 축복을 넓히는 것이었습니다. 

 

"희락의 기름"이란 다른 의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성령님의 부어짐을 상징합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요일 2:20) 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기름부음은 사실상 그리스도와 같이 기름부음을 받는 것으로,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을 성화시키는데 본질적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중생, 성화, 위로, 힘, 기쁨 등등을 가져다 주십니다.

우리 모두 복음으로 위로받아 슬픔 대신 희락의 성령님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3.마지막으로 복음은 슬픈 자를, 근심 대신 찬송을 주시며 위로하십니다

본문 3절 후반 “...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

절기에 입는 옷과 같은 아름다운 '찬송의 옷으로' 근심과 어두움과 고통의 영을 대신하게 하실 것입니다. 은밀하게 슬퍼하는 자들을 위하여 근심 대신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도록 할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는 모든 유산의 분깃을 탕진하고,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비참하고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소행을 회개하며 종살이할 각오로 아버지에게로 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뻐하며 그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며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가락지를 끼우며 왕적인 권위와 상속권을 주었습니다. 발에 신을 신기며 자유인이자 주인임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온 집안이 잔치를 벌이며 풍악을 울렸습니다 (눅 15:22-23). 

 

아니 슬픈 자에게 근심 대신 찬송으로 옷 입히신다니 너무나 놀랍고 좋으시지요? 날마다 아니 매 순간마다 우리의 심령과 입술에서 기쁨과 감사의 찬양이 흘러 나오게 하신다니... 할렐루야!

 

나아가 하나님은 결국은 우리 슬픈 자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전시하는 “의의 나무”oaks of righteousness가 되게 하십니다. 

본문 3절 후반 “...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할렐루야!

진실한 사람들로서 계속해서, 그리고 단호하게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선한 생활을 하며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지 않겠습니까? (딛 2:10).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슬픈 자로 슬퍼하되 특히 교회(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이처럼 위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3절 앞부분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

시온에서 나는 축복이 영적인 축복인 것과 마찬가지로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들은 거룩한 애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자신들의 슬픔을 가져오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그의 복음으로 약속하신 위로를 그의 성령님으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서는 슬퍼하지 마십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동정은 받을 지언정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대신에 교회에서 맘껏 슬퍼 하십시다. 하나님 앞에서 맘껏 응어리지고 속쓰린 심령을 토로하십시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위로하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Mourn / be comforted

 

하나님은 위로하되 우리의 마음만 달래주는 것이 아닙니다.

1.비통함 대신 아름다움을 주십니다. 재대신 아름다운 면류관(화관)을 쓰게 하십니다. 

2.슬픔 대신 기쁨을 주십니다. 슬픔 대신 희락의 성령님을 부어 주십니다.

3.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전시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의의 나무”oaks of righteousness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복음 가운데 사시는 복된 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슬픔을 교회로 가져와 하나님 앞에 토로하시어 신령과 진정의 위로를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