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삼위일체”-하나님의 신비 [민경수 목사]

복음뉴스 0 2022.06.14 09:10

 

제목 : “삼위일체”-하나님의 신비

본문 : 창 1:26 전반; 딤전 1:17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앙인이라 하면서 사실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채, 신앙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하나님의 절대성과 거룩성 등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은 잘 알지만, 성자 예수 하나님의 육체로 오심, 죽으시고 부활하심 등의 은혜를 잘 모를 수 있고, 더 나아가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도, 나아가 듣기조차 못하고 지내는 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 분이신데 하나님을 단지 부분적으로, 또는 불균형적으로, 그리하여 때로는 잘못된 사설에 빠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해 정확히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를 위한 인간의 시도는 무익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는 분이시기에 인간의 인식 또는 세상의 이론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실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세상을 초월해 계시기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비”인 것입니다! “신비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잘 이해하고, 나아가 체험해서 알며 신앙생활하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신앙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아야, 

첫째 잘못된 이단사상에 빠지지 않고 바른 신앙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삼위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된 신앙을 갖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성령님에만 과도히 치중할 때 신령 내지 신비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만 유독 집중하면 예수주의가, 성부 하나님만 강조하면 율법주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째로 하나님과 폭넓고 깊은 교제가 가능합니다.

 

1.그러면, “삼위일체”는 무엇입니까? 

“삼위일체”란 영어단어 ‘Trinity’는 라틴어 ‘trinitas’(threeness) 에서 유래됐습니다. 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A.D. 180년 기독교 저술가이자 안디옥 교회의 사제인 데오필루스 (Theophilus)이었습니다. 물론 성경에 직접적인 구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세 성품의 한 분 하나님, “삼위일체” 교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삼위일체”의 개념은 신구약 전체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 첫머리인 창세기 1장 1,2,3절부터 보여지고 있습니다. 1절에 (창조주) 하나님, 2절에 “하나님의 신” 곧 성령 하나님 the Spirit of God, 3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And God said ... )” 말씀이 곧 예수님 (요 1:1, 3, 14) 으로서 태초부터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셨던 것입니다. 

 

또한 첫째 본문 창 1:26 전반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세분 하나님인 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세분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고” 라는 뜻입니다. 즉 삼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 본문 딤전 1:17 “만세의 왕 ...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the only God 과 신 6:4, 고전 8:4-6 등은 하나님이 한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이 “삼위일체” 개념이 관계하는 영역은 신앙의 모든 분야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인 성육신, 믿음, 구원, 예배, 축도, 기도, 세례, 성령충만, 그리스도 공동체, 성령의 은사 등등 ... 신앙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후로 이러한 중요한 신앙행위와 개념들에 대해 우리 모두 “삼위일체”의 시각에서 살펴보고 체험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확실히 알아 가시길 축원합니다.

 

2. 한편 “삼위일체”를 혼동케 하는 이론들이 있습니다 

삼신론은 아리우스(Arius 250-336)나 필로포누스(Philoponus) 등이 주장했으나 이단으로 파문당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세개의 전혀 다른 존재일 뿐이란 주장입니다. 

일신론은 유일신의 단일성을 주장할 뿐입니다. 결국 삼위를 인정치 않기에 삼위일체를 부정합니다.

양태론 (Modalism)은 사벨리우스(Sabellius)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럴싸한 이단적 주장으로 하나님은 세가지로 표현되고 있는 단일체일 뿐이라고 격하시켰습니다. 가령 한 존재가 창조자로, 대속자로, 성화시키는 자로 역할을 달리함으로써 가면을 바꿔쓴 것이란 주장입니다. 

사례) 아버지, 목사, 남편인 남자 / 온도에 따라 상태가 고체, 액체, 기체인 물분자(H2O) / 삼각형(세개의 변이지만 한 삼각형) 등등.

 

우리 모두 이와 같은 그릇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주장을 분별하고 배격하여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심으로 영원한 생명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하나님을 제대로 잘 아셔야 영생, 곧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3. “삼위일체” 신조가 있습니다

381년 제 2차 교회공의회였던 콘스탄티노플 공회(the Council of Constantinople)는 유일하신 하나님과 세 신격을 공표했습니다. 이 교리는 아타나시안 신조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 신격을(the Persons) 뒤섞거나 하나님(the Divine Being)을 나누지 않으면서 “삼위일체”속의 한 하나님을, 그리고 단일체(unity)속의 삼위를 숭배합니다. 한분의 성부이신 하나님, 다른 한분의 성자이신 하나님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의 성령이신 하나님이 계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모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각각 세분이시되 또한 오직 한분이시다” (three persons, one God)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는 물론 (창 1:1 태초에), 영원 전부터 (요 1:1 태초에) 삼위가 함께 계셨습니다. 또한 종말과 영원 후까지도 삼위가 함께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삼위일체”를 인간이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이해하고, 언어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특히 피조물인 자연과 사람에 비유하며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나님을 잘못 아는 이단으로 끌고 갑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삼위일체” 신조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실제로 성삼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체험으로 알게 됩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성령충만 받을 때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권능”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 셋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의 모든 활동에 이같은 세 분의 존재와 활동이 함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본성을 “삼위일체”적인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도 “삼위일체”의 시각에서 보고 체험해야 합니다. 

 

가령 예배를 드리러 올 때 무조건 하나님을 뵈며 예배드리러 온다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의 3가지 시각을 가집시다. 그리고 이 셋이 하나로 합쳐지는 놀라운 현장을 체험하십시다! 

“이는 저[예수님]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성부하나님]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8)

비유) 야곱의 사닥다리 (창 28:12-13) / 스테반의 환상 (행 7:55-56, 삼위 하나님의 등장)

 

우리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도록 하십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과 삶의 모습을 구현하며 사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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