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사도행전 1장 12-14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2022.05.14 06:52

 

제목 :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본문 : 사도행전 1:12-14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흰 옷을 입은 천사가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라는 말씀 합니다. 승천하시는 주님을 본 사람들은 굳센 다짐을 합니다.  더 이상 눈으로는 주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내면은 확신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뿔뿔이 흩어져 각기 길로 가는 자가 없습니다. 이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함께 모여서 주님께서 주신 명령에 순종 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

 

주님은 위기와 어려움이 닥쳐 올 때에 아주 유용하고 쓸만한 습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닙니다. 120명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락방에 모여 시작된 기도는 10일 정도 지속됩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지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하나, 무리들은 각자가 부활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부활하신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순간 영적으로 이미 부활했다고 믿었습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사실을 엡 2:4,6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영적으로 이미 승천했다는 말까지 덧붙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에 일어나는 변화가 얼마나 심오한지를 보여 줍니다

 

둘, 회심의 모습은 다 다르나, 하나같이 속속들이 변화 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

13절을 보라. 여기에 주목할 만한 사람들 몇이 있습니다.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보입니다. 가장 깊은 의심꾼에서 가장 고귀한 신앙 고백의 소유자로 반전을 이룬 도마가 보입니다.

 

14절에는 예수의 아우들도 참여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의 메시아 되심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막 3;21에 보면 미친 자 취급을 합니다.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님이 생존시에는 의심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과 승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난 후에 다락방에 모여 함께 기도합니다. 

 

셋, 이전의 자기 중심적인 신앙에서 더불어 함께하는 마음을 소유 합니다.

한 방에 같이 있다고 모두가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치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마음으로 일치하여 하나님을 향해 간구 합니다.  

 

언제 공동체가 강력한 힘을 발휘 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마음을 합할 때 입니다. 마음들이 갈라지면 터진 풍선처럼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기도로 함께 마음을 모을 때에 엄청난 힘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승천 이후에도 주변은 여전히 박해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모였던 시점은 결코 평온한 상태가 아닙니다.박해가 점점 더 심해지는 열악한 환경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위협 당하는 환경에 얽매이기 보다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더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한 마음으로 기도 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울은 롬 12;12에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힘쓰는 “이라고 말씀 합니다. 

 

둘째, 기도는 변화를 이루는 첫 걸음입니다

기도는 무엇을 하든지 제일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먼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사모 합니다. 기도는 성도들이 무엇을 하든지 제일 우선 순위에 두는 첫 걸음입니다.

 

기도할 때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 합니다 

행 2;3에 보면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여기 각 사람 위에 라는 구절 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각 사람 위에.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 입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시는 권능 입니다. 기도의 능력은 남녀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배운자와 못 배우자나 구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었지만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을 믿을 때에 권능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성령의 임재, 곧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가능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응답 하십니다 .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성취 하십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때론 눈에 보여지는 결과물들이 적거나,  실현 가능성이 적어 보이면 실망하여 기도의 열심이 식어지곤 합니다. 이들이 보여준 인내의 결실이 있었다는 점 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다는 사실 입니다.

 

다락방에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이들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 한 이후에도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행 2;42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고 말씀 합니다. 계속 반복되는 구절이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부활을 믿는 예수 공동체의 정상적인 삶은 뭘까요? 

행 2:42에 예루살렘의 초기 개종자들은 ..기도하기를 항상 힘쓰니라.힘쓰니라 는 의미는 지속성, 용기 , 불굴의 인내의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행 2;42에도 사도들이 오직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 힘쓰겠다고 말합니다.

골 4:2에는 바울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에 전념하고 감사하는 태도로 깨어 있으라 말합니다.

이 말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은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기도에 전념하는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기도에 전념하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가” 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진 공동체가..

교회 일 수 있습니다. 사업체 일 수 있습니다. 국가 일 수 있습니다. 지구촌 일 수 있습니다.가정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도 함께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초장기엔 형제간에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찼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부활을 확신합니다. 부활을 믿는 자녀들로 어머니와 함께 성령을 사모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듣는 귀가 끊임없이 발달되어 세상을 향해 기도로 걸어하라 

부활을 믿는 제자들의 삶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두 가지 면에서 확실하게 달라진 성도들의 삶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 2:42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전에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진 패러다임을 갖고 살아갑니다.

 

기도는 막연한 자기 뜻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기도는 말씀을 따라 기도하는 삶입니다 .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게 기도 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 안에 도사리는 적들을 버리는 게 기도 입니다 .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내 안에 꿈틀 거리는 것이 기도를 통해서 밖으로 표출 됩니다. 자기를 위한 기도에 머물 뿐입니다. 자기가 기도한 내용이 응답이 없거나 뭘 반응이 없어 보인다 생각하면 기도를 멈춰 버립니다. 이게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자기를 꺾는 기도를 했습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우리는 종종 자기를 꺾는 기도를 주저 합니다. 

왜 주저할까요? 기도는 자기 소망이나 바램을 하나님께 알려 드리는 게 기도라고 믿고 왔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나의 의지를 꺾는 기도 입니다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게 진정한 기도 입니다 .

42절에 가르침을 받아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가르침을 받아 내 의지를 꺾는 겁니다. 가르침을 받아 내 생각을 꺾는 겁니다. 내 욕심을 꺾는 겁니다 .

 

기도가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기도 한 후에 말과 행위가 일치 하는 게 아주 중요 합니다.

행 2;4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42-47에 나오는 더불어 나누는 삶의 모습 입니다. 서로 떡을 뗍니다. 서로 배려 합니다. 사로 도와 줍니다. 기도의 실천은 타인을 위해 베푸는 행위들입니다. 

 

평생 기도를 실천하는 발걸음이 되기 위해서는  듣는 귀가 발달해야 합니다 .

롬 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합니다. 믿음은 보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 귀는 말씀을 듣는 일에 즐거워 하는 귀 입니다 .듣지 않기에 기도가 자기 뜻에 머물고 밖에 없습니다 .

 

듣는 귀는 순종입니다. 순종은 audire 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들음이 중요 합니다.

왜 기도할 때에 순종이 중요할까요? 기도를 이용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말씀이 없는 기도는 모양은 기도라 하지만 하나님이 들어 주시나 안 들어 주시나 시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버립니다 .

 

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매일 날마다 구해야 할까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일용할 믿음, 일용할 지혜, 일용할 용기, 일용할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부족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는 얼마든지 극복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에 등장하는 수 많은 기도들을 보십시오.

시편의 기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만한 이유가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영원한 기쁨을 베푸신 것도 몰랐고, 그 기쁨을 확보해 주시고자 친히 죽으신 것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그분께 갈급했습니다. 평생 성전에 살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늘 바라보는 게 그들의 소원이었습니다.(시 27:4)

 

그 분을 만나지 못하면 영혼이 물 없는 땅처럼 메말랐기에 (시 63;1) 늘 앙망하고 갈구 했습니다 .

이들이 추구했던 갈구는 하는 수 없이 하는 갈구가 아닙니다. 이들의 갈구는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앙망하는 자체가 즐겁고 유쾌 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경험은 온전히 하나님 중심이고, 하나님의 임재라는 선물을 늘 구하는 기도의 자리를 즐거워 했습니다. 

 

현대를 사는 자신들의 기도의 자리는 어떠한가요?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은 순수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첫번째 아쉬움이 바로 기도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필요를 이미 다 아시는데 굳이 왜 구해야해..기도를 마치 무거운 짐으로 생각합니다. 시시콜콜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염치 없는 일처럼 생각 합니다. 더 큰 문제는 끈기가 사라진 기도 입니다. 세상에 너무 탐닉되어 있다 보니까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을 인내하지 못합니다. 

 

지금의 처지가 광야라 여겨 집니까? 듣는 귀가 발달되어 영적 기운으로 걸어가십시오.

자녀들과 갈등이나 어려움속에 놓여 있습니까? 먼저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기도로 걸어가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걸으면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걸으면서 가르치셨습니다. 걸으면서 다양한 환자들과 사람들과 나눔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걸으면서 새 생명을 창출해야 합니다. 걸으면서 나눔을 즐겨야 합니다. 걸으면서 모임을 하러 가는 겁니다. 이런 걸음은 막연한 걸음이 아닙니다. 이미 기도를 통해서 확신을 갖고 나아가는 희망찬 걸음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한 후에 박해자들이 우굴거리는 박해자들 속으로 걸어갑니다 

언제든 돌을 들고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베드로는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놀라워 합니다 .저들이 술취했나.. 

아니 저들은 어부들이 아닌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해 보이던 이들이 보여주는 영적 변화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설교를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회개하라.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도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어떻게 베드로가 겁먹지 않고 담대한 걸음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영적 비밀을 성경에서 찾아 본다면 ..행 3:1에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이게 비밀 입니다. 기도는 영적 무장을 하게 합니다 .기도는 내면을 하나님이 주시는 요새로 만들어 주십니다. 기도는 세상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방패요 요새가 됩니다.

 

저는 다윗의 고백.. 시 23:5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고백을 좋아 합니다 .

 

특별히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라는 말은 내게 할 일을 주셨음을 확신 합니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할 일을 주셨다는 다윗의 고백 입니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할 일이 뭘까? 그것은 사울이라는 원수 앞에서, 암놈이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행동 앞에서, 압살롬이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겠다는 불효 막심한 아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 하는 삶입니다. 

 

그것은 아쉬움과 후회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는 것을 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먼저 추구 합니다. 위협 앞에서 내게 할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요새가 되어 주십니다. 시 28:8에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며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라고 고백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베드로는 먼저 행 4:31에 빌기를 다하매 …..먼저 하나님께 기도 합니다. 

바울도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고백 합니다. 

 

기도가 메말라 버린 신앙인들.. 이제는 기도의 자리를 즐거워해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세상의 조류에 밀려 듣지 못했던 베드로의 닭 울음 소리를 들어야 할 때입니다. 듣고 깨달아 통회와 자복하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오로지 기도해 힘쓰더라

기도는 자아를 꺾는 시간이라 했습니다. 자아가 꺾이지 않으면 반드시 부닥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 갈라지게 될 뿐입니다. 

서로 짜증을 내거나 인상을 찌푸리게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서로 부닥쳐요 왜 그럴까요..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있다 할지라도 자기를 깎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

 

오로지 기도에 힘썼던 성도들은 자아를 깎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부닥치지 않습니다. 같은 방향을 향해 서로 협력합니다. 서로 위로와 격려가 쉬워 집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기도하고 걸어가야 합니다. 

길이신 주님을 향해 직접 자기 발로 걸어 가야 합니다. 걸으면서 나누고, 걸으면서 교제하고, 걸으면서 전도해야 합니다 .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세상 곳곳에 복음을 들고 걸었습니다. 

 

부활을 믿고 사십니까?

그렇다면 이전에 갖고있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

 

부활을 믿는 다는 것은 나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한 새로운 몸을 입은 자 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기도의 행진으로

부활의 일상이 되기를 소원 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