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사도행전 1장 1-8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2022.04.30 09:13

 

제목 : 그리스도가 살아계심을 나는 안다

본문 : 사도행전 1:1-8

 

우리는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내신 하나님의 힘의 위력을 보았습니다. 죽음은 절망케 합니다. 하지만 부활은 희망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 부활의 권능을 입고 살도록 희망, 그 놀라운 힘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절, 부활절이 하루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예수의 길을 걷는 자들이 보여 주어야 할 영적 태도는 분명 합니다. 일회성 행사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부활을 경배하며 기뻐했던 시간이 일회성 대일밴드처럼 붙였다 떼어내는 격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어져야 합니다.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효과가 있고,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회성 사건으로 그친다면 매년 돌아오는 연중 행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확실한 희망을 주셨습니다. 오늘 여기 서 장차 올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활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옷은 나를 알리는 신분 입니다. 일상 속에서 부활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며 살겠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부활 후에 사십 일을 지상에 계셨습니다. 이유는 분명 합니다. 

첫째, 여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에 파묻혀 사는 자들에게 예수 부활이 사실임을 알려 주셨다

행 1:3에 보면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그들에게 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교제 합니다. 같이 음식을 나눕니다. 교제를 통해서 다시 사신 예수를 확신케 합니다. 

 

다시 사신 예수의 확실한 많은 증거가 고전 15:5-8에서 나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나타나심,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심, 동시에 오백 명의 남녀에게 나타나심, 야고보에게 나타나심,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심, 마지막으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바울 자신에게 나타나셨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증거” 라는3 단어를 (테크메리언) 사용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명백한 사실임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부활은 헛된 생각도, 헛된 망상도, 한 사람의 의견도 , 한 번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의심하는 자들이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입니다. 바로 예수의 부활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보여준 삶의 변화 입니다 .

 

예수의 부활을 믿고 사는 사람은 뭔가 다릅니다. 일상의 삶이 부활을 경험하며 삽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신 힘의 위력을 자신도 느끼며 삽니다. 불신과 불안의 시대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희망을 노래 합니다. 의도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데 내 삶이 기쁘고 소망을 즐거워 합니다. 

 

의심이 변화여 부활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삽니다.

예수님은 서둘러 하늘로 돌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시간을 내어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가장 중요한 복음을 잘 전하도록 준비시켰습니다.

 

행 1:3에 보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나요? 하나님의 왕권,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권 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확신입니다. 

 

시 103:19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셨고 그의 나라가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라고 말씀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역사에서 어느 한 곳도 제외된 땅도 없고, 나라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보다 위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위에 어떤 통치자도 없고 그의 손이 닿지 않는 죄인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 못했더라면, 준비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좋은 소식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째, 성령을 내 삶의 영적 엔진으로  정착 하라. 

행 1:4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분부한.. 이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사느냐 죽느냐 입니다. 내가 부활을 입고 사는 사람으로서 미래의 삶을 승리로 이끄느냐 아니면 실패로 가느냐 입니다. 

 

여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며..기다리라

왜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고 했을까요?

다시 사신 주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이는 인간은 쓰러지기 쉬운 아주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돕는 손길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어수선하고 박해가 심한 시대 속에서 견뎌낼 수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 힘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불안 속에서 기다렸던 성도들은 마침내 성령을 경험 합니다. 

요한복은 16:13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이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미래를 계시해 주는 임재 입니다. 

장래 일을 알면 그만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주님은 자신이 승천하시면서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은 늘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성령을 경험하고 난 후에 고백한 말이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바울 안에 사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자신 안에 계심을 확신 하니까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결코 조바심을 낼 이유가 없습니다. 미래를 앞당겨 미리 걱정,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고통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도망갈 이유가 없습니다. 늘 성령님은 말씀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주인이 되어 삶을 결정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부활을 입고 사는 사람들은 성령을 엔진으로 정착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난 후에 험난한 박해 시대를 뚫고 나갔던 제자들의 삶의 보십시오.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가졌던 파워플한 삶을 성경을 말합니다. 행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 합니다. 

 

여기 권능은 하늘로 부터 임하는 권능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힘입니다. 지혜 입니다. 세상이 주는 권능하고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 위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어야 할까요? 자아를 의지하면 할 수록 남는 건 실패 뿐입니다. 철저하게 자기의 힘이나 경험을 의지했던 제자들은 철저하게 실패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권능을 통해서 불신과 박해를 꿰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그렇습니다. 권능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죽은 자를 살려내신 하나님의 힘의 위력이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권능을 허락하십니다. 어수선한 시대를 꿰뚫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바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권능입니다. 

 

바울은 고후 12:9-10절에서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내가 지금 가장 약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성령을 의지할 때에 강함을 경험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모순 투성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나를 통해서 역사 하십니다. 

 

불안한 시대에 확실한 희망이 바로 권능의 삶입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생각을 변화시키는 보혜사 성령과 동행해야 합니다. 

성령과 동행하면서 오늘 여기서 장차 올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내가 결코 주인이 아닙니다. 팬더믹, 불안의 시대에 어떻게 예수를 따를 것인가? 유일한 희망은 바로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의지하면서 예수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마지막,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다시 사신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행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 합니다. 

 

예수 부활에 가장 의심이 많았던 사람이 바로 도마 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의심 많은 도마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자상하게 도마로 하여금 손과 옆구리에 넣어 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고백 합니다 .

가장 깊은 의심에서 가장 고귀한 신앙 고백으로 옮겨 갑니다 

도마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은 우리 삶에 인내로 역사하여, 우리를 그분께서 연약함을 이끌어 주심을 확신하게 합니다. 

 

도마는 증인으로 복음을 전파 합니다 .

복음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시 사신 부활 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 해 주었습니다. 지금의 무덤 인생이 부활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인 희망을 갖게 합니다 .

 

여전히 도마 같은 믿음의 연약한 사람들이 주변엔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을 향한 변질되지 않는 인내로 영적 파장을 불러 일으켜야 합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고 사는 까다로운 자들에게 부활의 복음이 증거 되도록 해야 합니다.

벧전 2:18에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향합니다.

 

불의한 자에게도 부활의 복음이 증거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마 5;45에 하나님이 ..비를 외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차별이 없는 외침으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도마처럼 의심많고 까다로운 자라 할지라도, 불의한 자라 할지라도 연약함을 끌어 당겨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살지만 피할 수 없는 박해의 아픔도 많습니다. 

엔도 슈사쿄가 쓴 침묵이라는 소설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일본에 간 신부가 붙잡힙니다. 로드리고 신부에게 관원들이 예수 믿다 잡혀온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싶으면 후미에를 밟으라고 제안을 합니다. 후미에는 일본의 에도 시대에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했던 예수님의 형상이 있는 목조 혹은 금속제의 판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밟으면 잡아온 사람들을 살려 주겠다고 제안 합니다. 물론 밟지 않으면 잡혀온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죽게 될 것임을 또한 강조 하는 겁니다. 

 

딜레마에 빠진 신부는 고민을 하다가 후미에를 밟으려고 합니다. 차마 발이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에게 소리가 들려 옵니다.

 “밟아라,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안다.나는 밟히기 위해 내가 이 세상에 왔다고” 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계심을 우리는 압니다. 

다시 사신 예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과 불안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리가 소유한 유일한 희망 곧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을 기억 해야 합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인 메시아를 보면 예수의 탄생, 예수의 수난 과 속죄 그리고 예수의 부활과 영생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할렐루야는 어느 부분에서 나올까요? 바로 수난의 끝 부분에 나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때에 할렐루야로 화답하는 신앙입니다. 

수치와 고통의 십자가 지심에서 할렐루야로 화답합니다.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그리스는 살아계신다 는 인식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희망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수 많은 일들 앞에서도 그리스도가 살아 계시다는 확신은 삶의 반전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인 부활을 입고 앞으로 전진해 가는 겁니다. 

 

한 사람의 변함없는 인내가 누군가에게 엄청난 믿음의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가장 의심 많던 도마는 가장 고귀한 신앙 고백의 소유자로 바꿔 주셨습니다.

 

시몬처럼 조약돌 같이 변덕스런 삶에서 베드로인 반석처럼 굳건 신앙의 삶을 살아가도록 변화 시켜 주셨습니다. 

 

사울처럼 예수 없이 큰자로 살던 자를 바울처럼 예수 안에서 작은 자로 살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거짓 희망과 불안이 뒤엉킨 세상을 표류하는 수 많은 사람들

다시 사신 예수는 거짓과 불신의 시대를 사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다시 사신 예수는 그동안 익숙했던 삶에서 탈피하게 합니다. 부활을 입은 사람들에게 삶을 구조 조정 하게 합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게 합니다. 구조 조정이라는 말은 틀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부활 이후는 뇌를 다르게 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박해에 대한 경직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의 기쁨 입니다. 

 

바울의 말로 표현해 본다면 심장이 바뀌어졌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한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삽니다.

 

어둠 속에서도 우리의 눈은 언제나 다시 사신 예수 안에서 안식을 얻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두려운 현실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가 필요한 자들에게 부활의 희망을 전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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