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히브리서 11장 32-40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2.02.13 20:26

 

본문말씀: 히11:32-40

제   목: 세상이 감당치 못한 믿음의 사람.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7-38) They were stoned, they were sawn asunder, were tempted, were slain with the sword: they wandered about in sheepskins and goatskins; being destitute, afflicted, tormented;(Of whom the world was not worthy:) they wandered in deserts, and in dens and caves of the earth.(Heb 11:37-38)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 합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의 빛나는 생애와 저들의 신앙의 역사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신앙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론적으로 11장은 1-3절에서 믿음의 본질을 말하고, 4-7절에서 아브라함 이전의 세 사람 아벨과 에녹과 노아의 믿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8-19절까지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20-31절에는 아브라함 이후 네 사람, 곧 이삭, 야곱, 요셉, 모세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마지막 부분으로 사사시대 이후의 믿음의 선진들을 종합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은 이 사람들의 위대한 삶과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그 능력은 인간의 의지나 열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세상을 이긴 힘이 바로 ‘믿음’ 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의 신앙의 위대함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죽음도 불사하는 삶에서 나타났습니다.

 

죽음을 두려워않는 이 순교적인 신앙은 저들의 삶에서 믿음으로 산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너희가 죄와 더불어 싸우되...(히12:4) 라 했습니다.

 

우리 뉴욕영안교회 성도들도 이들의 믿음같이 세상을 이기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시길 축복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32절)

 

첫째로 저들의 믿음은 아름다운 승리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33절) 라고 하였습니다. 

 

1) 이방나라들과의 접전에서 이긴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라들’ 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여러 이방국가들을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한 이래 바락 앞에서 하솔 왕 야빈의 군대장관인 시스라를 이겼습니다(삿4:15).

 

기드온은 3백 용사로 미디안 군데를 물리쳤습니다(삿7:22).

 

입다는 암몬자손을 항복시켰습니다.(삿11:33).

 

다윗은 블레셋과 여부스와 아말렉, 에돔족속을 정복하였습니다.(삼하 5장, 8장).

 

이들은 전쟁에서 용맹이 되어 이방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했다고 하였습니다.(34절하) 

 

무수한 전쟁을 이겼다는 말은 바로 죽음을 이겼다는 말이 됩니다.

 

2) 의를 행하기도 하였습니다(11:33).

 

이것은 개인적인 공명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 의를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사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의를 행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나라를 세우고, 자기 뜻을 이루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의를 행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의가 숨겨져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구속사역 의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뜻인 의를 이룰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3) 약속을 받기도 하였습니다.(11:33)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는 길입니다.

 

언약신학이란 하나님의 관계가 약속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약(Old Testament), 신약(New Testament)의 약속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았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무엇을 믿느냐? 첫째: 그가(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둘째: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예컨대, 아담,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바울, 등 믿음의 선조들이 다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을, 도무지 이룰 수도 없는 것들을, 바랄 수 없는 약속이지만 믿음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빛나는 미래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그 약속 성취를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저들의 삶을 용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4)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였습니다(11:33)

 

 그것은 마치 사자굴속에 들어간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봉해 주심과 같은 것입니다. 

 

죽음을 이긴 순간이었습니다.

 

5)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였습니다(11:34)

 

이는 느브갓네살 왕이 만든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음이 죄가 되어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들어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두고 한 말이 됩니다. 

 

우리가 섬기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단3:17)

 

그들이 불에 들어간 것은 의지(신념)의 담대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저들은 그 죽음의 불꽃 속에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산채로  불꽃 속에서 다시 나오고 말았습니다. 

 

죽음을 이긴 믿음의 능력입니다.

 

6) 믿음의 사람들은 칼날을 피하기도 하였습니다(11:34)

 

 다윗은 사울 왕의 칼날 앞에서 살아남았습니다.(삼상18:11).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칼날 앞에서 살아남았습니다(왕상19:1) 

 

 엘리사는 아람왕의 칼날 앞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습니다(왕하6:12-19)

 

 모두 죽음을 이긴 자들입니다.

 

7)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11:35)

 

그 외에도 기드온(삿8:24-27), 바락(삿4:12-16), 삼손(삿16:4-22), 입다(삿11:34-40), 이들은 용맹한 사람들이지만, 실은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연약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믿는 믿음 안에서 용맹을 떨쳐 죽음을 이기는 신앙생활로 영웅의 삶을 치루었습니다.

 

둘째로. 저들의 믿음의 능력은 고난을 감수하는 인내의 삶에서 나타났습니다.(11:35-38)

 

1) 죽음을 이겼습니다.

 

남자들 뿐 아니라. 믿음으로 여자들도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였습니다.(11:35). 

   

예컨대, 사렙다의 과부는 엘리야를 통하여 죽은 아들을 되살림 받았습니다.(왕상17:23). 

 

수넴의 여인은 엘리사를 통하여 죽은 아들을 부활로 선물 받았습니다.(왕하4:35-37).

 

신약에서 나인성 과부는 죽은 아들을 예수로 말미암아 부활로 다시 받았습니다.(눅7:11-14).

 

베다니의 마르다, 마리아 자매는 예수로 말미암아 죽은 오라비를 부활의 은총을 받았습니다.(요11:17-44).

 

모두 믿음으로 죽음과 싸워서 승리한 자들이었습니다.

 

2) 고난을 이겼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치 아니하였습니다(11:35). 

 

더 좋은 부활....(35절)은 둘째부활 곧 마지막 부활입니다. 

 

예수 재림 시에 받을 영화로운 부활을 말합니다.  

 

악형을 받되... 란 말은 ‘북을 치듯이 죽도록 때린다’ 는 뜻입니다. 

 

이 형벌은 죄수를 형틀위에 누인 후, 사지가 팽팽해지도록 말뚝에 맨 뒤에 사지의 연결부분을 창으로 찔러 피를 내고, 배와 가슴을 북치듯이 쳐서 죽이는 비인간적인 극형을 가리킵니다. 

 

이천년 기독교 박해사(迫害史) 는 사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러 유형의 악형이 기독인들의 죄목이 되어 무차별 가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이런 죽음의 고난 속에서도 예수를 배반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부활은 다 같이 하지만, 그 부활의 영광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을 받고자 하는 자는, 고난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배교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더 좋은 부활의 영광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과는 너무 다른 것 아닙니까?

 

3) 그들은 희롱과 채찍도 받았습니다(11:36).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만 충성되이 증거한다는 이유 때문에 제사장 바스훌에게 매를 맞고 착고에 채웠더니.(렘20:2).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습니다(렘29:7-9).

 

예수의 사도들은 새 술에 취한 자들로 오해를 받았습니다(행2:12). 

 

바울은 염병 같은 놈으로, 미친놈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행26:24).

 

수없는 굶주림과 목마름, 매 맞음과 헐벗음이 계속되었습니다. (고후11:16-33) 

 

4)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11:36).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 감옥에 갇혔다고 했습니다(렘20:2, 37:15) 

 

복음을 전한다고 베드로가(행12:3-5), 사도바울이 갇혔습니다(고후11:23)

 

미가야 선지자가 그 곳(감옥)에서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셨습니다.(왕상22:27).

 

결코 이 세상 감옥이라고 하는 장소가 악인들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의의 사람, 경건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믿는 다는 죄목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들어갔던 고난의 가시밭길 이었습니다.

 

귀신을 쫓았다고 감옥에 갗이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5) 돌로 침을 받았습니다(11:37).

 

 선지자 스가랴는 하나님의 진실을 말하다가 백성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대하24:20-22).

 

나봇은 조상들 전래의 유업인 포도원을 지키려 하다가 아합 왕과 백성이 함께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왕상21:13).

 

스데반 집사는 예수를 증거 하다가 동족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행7:59).

 

6) 톱으로 켜서 죽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11:37).

 

이사야는 므낫세 왕의 우상숭배 강요에 불복하고, 오히려 그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다,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 왕의 톱에 의해 그 몸이 두 동강이로 쪼개어져 죽었다고 합니다.(전승)

 

7)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했다고 하였습니다(11:37)

 

이세벨은 그의 칼로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왕상18:13) 

 

예레미야 시대 우리아도 그렇게 죽임을 당한바 되었습니다(렘26:23)

 

8) 양과 염소의 가죽옷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11:37). 

 

 엘리야가 그러했고(왕하1:8, 왕상19:9), 엘리사도 그러했고(왕하2:8),세례 요한도(막1:6)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역대 환난시대를 살아가던 앞서간 모든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저들은 죄악된 세상에서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떠돌이 인생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이라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만났고, 은혜를 받고 보니 무엇이 진짜 멋지게 사는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죽음도 핍박도 무섭지 않고, 광야와 암혈과 산중과 토굴이 저들의 거처가 되었습니다(히11:38)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생활을 하였습니다.(삼상19-30장)

 

엘리야는 이세벨의 박해를 피하여 호렙산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왕상19:1-18)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였도다.’ 고 하였습니다.(38절)

 

이 세상과 마귀가 이들을 유혹해도 생명을 가지고 협박을 해도 절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못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가 타고 있는 고난의 현실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이 그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교만으로 다시한번 기회를 주어서 그들을 회유하려 했습니다. 

 

그 때에 그 청년들의 대답은 어떠합니까? 

 

‘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우리들에게 절하라고 말하지 마옵소서, 우리들은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저 극렬히 타는 불에서 건져내실 능력이 있고,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단3:17-18)

 

얼마나 담대한 믿음입니까? 

 

어떤 고난이나 유혹이나 죽음이나 세상이 가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보았지만, 이들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누가 꺾을 것입니까?

 

우리가 심히 큰 이 하나님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4:7)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8-11)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만이 승리합니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로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 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니이라."고 하였습니다.(히11:39-40)

 

저들은 믿음을 따라 확실하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상급도, 명예도 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놓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여기에 ‘더 좋은 것’ 을 우리들이 받아야 합니다. 

 

이들은 요즘같이 이렇게 밝은 진리가운데서 믿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실 메시야를 소망하면서 가진 믿음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들의 소망하던 것들을,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심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아벨, 노아,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다니엘...바울, 폴리감 말틴루터, 어거스틴, 칼빈 웨슬레 웰리암케리 허드슨테일러 토마스 언더우드 아펜젤라 등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만날 이 분들이 지금도 우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아니면 저희의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저희들 보다, 더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성취하셨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성경을 주셔서 복음을 받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자들이, 그 모든 예언들이 다 이루어진 것을 증거로 보고 있는 때입니다. 

 

또 우리는 이방인들이지만, 우리가 아니면 천국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방인의 수가 다 들어오기까지 세상은 잠깐 보존되고 있습니다.(롬11:25-32)

 

오늘 우리들 믿음이 얼마나 좋아야겠습니까?

 

그리스도도 나타나지 않으셨고, 계시도 희미한 구약시대에도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이렇게 담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우리들은 구약성도들 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많이 받았는데, 그러나 너희가 죄와 더불어 피 흘리기 까지 싸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히12:4)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는 현실에서 믿음 지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어리석은가요?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를 살펴 보아야합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했습니다.(히12:1)

 

왜 이 사람들을 보여줍니까?

 

우리들로 경주 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이 한 번 달리듯이 다시없는 이 세상에서 어리석게 살지 말고 믿음의 사람들 같이 더 좋은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기회지난 후에 후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껄껄하지 말고 기회가 있(왔)을 때, 영혼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나은 본향(히11:16), 곧 하늘에 있는 본향, 더 좋은 부활(히11:35), 더 좋은 것이 예비 된 곳(히11:40) 을 향하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나아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저들은 이 세상에서 외국인이요, 나그네라고 생각하였습니다.(히11:13). 

 

그래서 저들은 이 세상에서 받은 사는 날 동안의 시간과 살고 있는 활동의 공간(장소)을 우거하는 자로 여겼습니다(히11:9). 

 

저들은 이 세상을 잠깐 동안 외국에 거류하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 세상에서 외국인이며, 거류자(居留者)이며 나그네요, 길가는 순례자였습니다.

 

기독교가 이 세상과 관계가 없다거나, 동떨어져 있다던가, 이 세상에서의 시민(국민)의 의무가 소용없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이 쉬지 않고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선교의 무대요, 복음 전파의 장소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들이 지나갈 교량(브릿지)과 같은 곳입니다. 

 

현명한 자는 그 교량 곧 다리를 지나 건너갈 따름이지, 그 교량 위에 결코 자기 집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대상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입니다.

 

믿음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과는 구원입니다. 

 

성도들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믿음입니다.

 

왜!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우리들이 더 믿음을 지키려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더 좋은 부활이 약속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같고 들어갈 천국은 같은 것이지만, 부활의 영광은 다릅니다. 

 

더 좋은 부활이 있습니다. 더 나은 본향이 있습니다.  

 

그들이 악형을 받고도 구차히 면치 않은 것은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사망을 이긴 생명의 영웅들입니다. 

 

그리고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세계, 곧 천국을 믿음의 기업으로 받은 승리의 영웅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소망과 불사의 세계, 곧 천국의 실존에 대한 그 환상과 소망의 약속을 잃지 않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 소망을 성취하는데 어떠한 고난이 오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생명행군에는 멈춤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계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은, 무엇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애굽으로(세상) 되돌아 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는 개나, 더러운 곳에 뒹구는 돼지같이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에게는 피곤함이 없습니다.  

 

이 세상 건너편에 있는 것은 천국입니다. 주님의 나라입니다. 

 

영생의 세계입니다. 완전하고 거룩한 세계입니다. 

 

바로 주 예수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스러운 거룩한 약속입니다. 

 

신앙생활의 영웅들에게 약속된 길 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히15:55-56)

 

바로 순교자 주기철목사, 손양원목사, 박관준장로 조만식장로 한경직목사 한상동목사 조용기 목사 같은 우리 선배들의 감사였습니다. 

 

사망을 정복한 생명의 영웅들입니다.

 

순교자의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순교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 사람’ 입니다.  

 

돈으로도 명예도 부모도, 처자식도 이기지 못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여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약한 사람 같아 보이나 천하가 쥐고 흔들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주님의 인격을 닮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잘난 사람들입니다.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금 보다 귀한 믿음은 하늘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내 평생소원 주를 위해 살다가 주를 위해 죽을 결심과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왜요? 이 세상에는 영구한 도피성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천국을 준비하고 꼭 올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할 영원한 처소를 만드시고, 주님이 천국에서 우리를 꼭 기다리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히11장의 믿음의 용장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믿음의 동역 자들 주님께서 사랑하셔서 십자가고난 받으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그 사랑 함께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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