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사도행전 11장 19-30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1.11.18 08:23

 

본문말씀 : 행11:19-30 

제  목 : 이방인 구원 사역입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20-21) And some of them were men of Cyprus and Cyrene, which, when they were come to Antioch, spake unto the Grecians, preaching the LORD Jesus. And the hand of the Lord was with them : and a great number believed, and turned unto the Lord.(Act11:20-21) 

 

출발은 방향이 됩니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고기는 바다에 가야 잡습니다.

 

목적하는 방향을 바로잡고 노력해야, 그 목적을 제대로 이룰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삼천포로 빠졌다는 이야기는 진주로 곧장 가야 하는데, 곁길로 잘못들 어 삼천포로 빠졌다는 말입니다.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딴 방향으로 잘못된 길을 걷는 비유도 있습니다.

 

괴테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 했습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라는 의미입니다.

 

속도가 다소 늦더라도 방향이 바로 되면 목적지에 도달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잘못되면 빨리 갈수록 불행이 더 빨리옵니다.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도 최선을 다하되, 너무 서두르거나 조급하지 말고, 방향을 주시하여야 합니다. 

 

음식을 만들 때에도 조급하면 편법을 쓰고, 조미료로 맛을 내려고 합니다. 

 

하물며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대로 믿음대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아야지, 인간적인 수단, 방법을 쓰면 쉬운 길 같지만 오히려 방향을 잃게 됩니다.

 

초대교회를 보세요. 고난이 많고 핍박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말씀은 안디옥 교회가 출발하는 과정입니다. 

 

유대교의 박해로 흩어진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에 까지 복음을 전했다고 말씀합니다(19절).

 

여기에서 ‘흩어진’ 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스페이로’ 는 ‘널리 퍼뜨리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흩어진 유대인’ 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 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해 세계 도처에 흩으셨듯이, 예루살렘 초대교회 성도들 또한 유대교의 박해를 통해 그렇게 세계 곳곳으로 흩으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성도들을 흩으신 것은 그들이 범죄 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온 세계에 퍼트리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흩어진 성도들의 고통은 무척이나 컸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디아스포라(이민) 로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고 환난입니다.

 

그것이 자기의 잘못 때문이라면 그래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순전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이러한 고난을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 교회가 위축이 되고 박해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의 발길이 닫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안디옥에는 최초의 이방인 중심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성도들이 모인 안디옥 교회는 아시아와 유럽대륙은 물론 로마까지 복음이 전해지는데 선교 본부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 입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흩어지는 것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불씨가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로 전해졌고, 수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기에 쓰임 받은 한 사람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교회서 안디옥으로 파송한 ‘바나바’ 입니다. 

 

바나바를 통해 안디옥 교회가 부흥했고, 선교의 역사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인 중심교회가 된 것 같이,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중심 교회가 되었고, 율법이나 전통보다 선교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의 출발지가 바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모범적인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러면 안디옥 교회는 어떻게 출발을 했는지 살펴봅니다.

 

 1. 주님의 손이 함께 하는 교회였습니다.(21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1절)

 

여기에 ‘주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축복을 나타내는 구약적 표현입니다.

 

그런데 당시 헬라인들은 헬라철학이 유명하듯이, 스스로를 지혜를 자랑하던, 지적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고전1:22)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수많은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만무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시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우리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9:24)

 

그런데 그 이야기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마19:26)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어떤 일도 능히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백했던 것입니다.(빌4:13)

 

그러므로 지금,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 서 계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1) 주의 손이 함께 할 때, 나타나는 은혜입니다.

 

 (1) 주의 손이 보장해 주신 다는 약속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에도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 행할 때에 타지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니.(사43:2)

 

사업을 해도 주의 손이 함께 해야 보장이 됩니다. 

 

공부를 해도 주의 손이 함께 해야 보장이 됩니다. 

 

가정도 주님이 보장해 줘야 행복합니다.

 

목회를 해도 주의 손이 함께 해야,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2) 주의 손이 함께 할 때 안전합니다. 

 

주의 손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손이 꼭 잡고 있을 때, 아이는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D. L. 무디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있는 예화입니다.

 

어느 날 아이와 산책을 하다가 아이가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아이의 조그만 손으로, 아빠의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걸어 가다가 움푹 파인 곳에서, 또 넘어지면서 아빠의 손을 놓치고 다쳤습니다. 

 

아이가 울면서 아빠가 내 손을 잡아 주세요. 

 

아버지의 큰 손이 아이의 손을 꼭 잡았을 때, 이 아이는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걸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 손을 잡으면 지칠 때, 힘들 때 놓칩니다. 

 

신앙은 내가 주님을 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손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

 

주의 손이 함께 했다는 말은, 주의 손이 보장해 주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3) 또한, 주의 손이 함께 할 때 축복입니다. 

 

신28:12에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리니’ 손을 표현했습니다. 

 

나의 의로운 오른손이 너를 붙들리라. (사41:10)

 

창 49장에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므낫세가 장남인데 에브라임이 차남입니다.  

 

할아버지 야곱이 축복을 하는데, 손을 바꿔서 차남 에브라임 머리에 오른손을 얹고, 므낫세는 장남인데 왼손을 얹고 축복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은 축복을 말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출발할 때 주의 손이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함께 했다고 하는 말은 임마누엘 했다는 표현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인생길에도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2. 안디옥 교회는 주님께 붙어있는 교회였습니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23절)

 

1)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23절)

 

바나바가 안디옥에 도착했을 때, 영적인 은혜가 파도를 타고, 임재하고 있음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신령한 눈이 열렸고,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심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교회여야 합니다.

 

우중충하고 곰팡이 냄새 가득한 교회가 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들으며 은혜 속에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2)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머물러 있으라. (23절)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23절)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는 말은 주께 붙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생명체는 가지(줄기)에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가지가 1mm만 줄기에서 떨어져도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고 권면을 했습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면, 절대 인생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께 붙어 있으라.’ 는 주의 말씀 안에 거하라. 는 곧 사랑의 열매를 항상 맺으라는 뜻입니다.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4-5)

 

하나님께서 축복할 때에, 내가 반석위에 세우리라. 고 하십니다. 

 

우리를 반석위에 세워준다. 는 약속입니다. 

 

반석은 큰 바위를 말합니다. 

 

이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고전3:11)

 

우리 인생을 큰 바위 위에 세워 주시면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잘 붙어 있는 가지에 좋은 열매가 주렁주렁 잘 맺어지시길 바랍니다. 

 

굳건한 반석위에 서 있는 안디옥 교회와 같은 신앙되기를 축복합니다.

 

3. 안디옥 교회 속에는 잊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24절)

 

안디옥 교회에 충성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서 파송한 바나바를 통해,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1)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이란 인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지. 정. 의를 인격이라고 합니다.

 

바나바는 심성이 본래 착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이란 내면에 쌓인 선한 성품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 곧 바나바는 인격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음에도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일 만큼 인격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양반 나리께서 상놈(머슴)들에게 편견 없이 대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이러한 훌륭한 인격이 결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바로 25- 26절입니다.

 

그는 고향 다소에 가 있던 사울, 곧 바울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목회하는 안디옥 교회로 초청하여 그와 함께 동역했습니다.

 

교회 역사상 최초의 팀 목회를 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당시 바울은 회심한 지 얼마 안 된 초신 자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 파송할 만큼 성도들로부터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두 사람간의 팀 목회는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나바는 직접 바울을 찾아가 그를 자기가 담임한 교회의 목회자로 초빙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바울은 박해자로서의 모든 멍에를 벗고 사도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무리 좋은 인재였다 할지라도 이러한 바나바의 배려가 없었다면, 그는 위대한 사도로서의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바나바는 재능에 있어서는 바울에게 못 미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인품은 참으로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위대한 업적은 남기지 못했지만, 그러나 큰 인품으로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세움으로써 기독교에 큰 위업을 남긴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는 이후에 마가와 같이, 실수와 실패의 사람을 용납하여 돌봄으로 그를 위대한 사역자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행15:38-41)

 

이 마가가 후에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성도는 반드시 재능만으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큰 인격으로 사람을 포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 그것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능은 없어도 되지만 인격은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격언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쌓인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마음에 쌓인 악에서 악을 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마12:35)

 

어떤 사람은 인격의 모가 나고 늘 파괴적인 성격의 결함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본성적인 성품이 불쑥불쑥 나와서 은혜의 불을 꺼뜨리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성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성품이 다듬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경건을 훈련하라.’ 는 말입니다.(딤전4:7)

 

우리는 경건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가 나고 거칠고 울퉁불퉁한데도 불구하고 경건의 훈련으로 다듬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한 훈련을 통해 인격이 다듬어 집니다. 

 

은혜 받았다고 하루아침에 성숙해 지는 것 아닙니다. 

 

경건한 훈련을 통해서 인격과 성품이 다듬어 져야 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성품이 선하고 인격이 잘 갖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2) 또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의 착한 심성에 성령이 충만했으니, 얼마나 좋은 그릇입니까? 

 

좋은 그릇에 좋은 것을 담으니, 이게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지배할 때, 보배가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을 지배해야 됩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게 돼 있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근심이 나오고, 분노가 있으면 분노가 나오고, 평안이 있으면 행복이 나오고, 성령 충만함이 있으면 영적 에너지가 나오게 됩니다. 

 

 바나바처럼 성령으로 충만하길 축복합니다.

 

(3)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행11:24)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믿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66권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을 빼면 아무리 수백 번을 읽고, 성경을 다 암송하고 다닐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히11:6)

 

바로 바나바는 착한 인격뿐만 아니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십자가를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행로가 광야 길입니다. 

 

광야 길을 지나갈 때 홍해 앞에서도 하나님이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여리고성 앞에서도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매일 한 바퀴씩 돌았는데 일곱째 날은 일곱 바퀴를 돌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편한 대로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게 믿음입니다. 

 

자꾸 교회가 세상을 따라, 환경 따라 편리 주위로 나가다 보면 신앙은 세속화 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주일 날 어쩌다 한번 빠지면 마음이 괴롭고 회개를 했는데, 코로나 핑계대고 자꾸 빠지다 보니 아예 마음이 무뎌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환란과 핍박 때문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 교회를 세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매우 인상깊은 말씀이 있습니다.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절)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붙인 것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 스스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이방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주로 이방인이었고, 예수를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이었지만, 예수를 믿는 자로서의 분명한 삶을 살았기에 그러한 별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분명한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

 

우리들도 이들을 본 받아,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며, 이 시대의 안디옥 교회를 세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코로나가 하나님보다 더 무섭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 설 때, 주의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 편에 서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때, 주님의 손이 붙잡아 주십니다.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바나바 한사람을 통해 안디옥 교회가 부흥의 역사를 이뤄가는 것을 보면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성은 의인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렘5:1에도....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용서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바나바와 같은 사람, 하나님이 찾는 한 사람이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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