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사도행전 10장 3-16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

복음뉴스 0 2021.10.27 10:58

 

본문말씀: 행10:3-16

제   목:  기도할 때 길이 열립니다.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행10 :15) 

And the voice spake unto him again the second time, What God hath cleansed, that call not thou common.(Act10:15)

 

요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한 해에 14,000-15,000명이 자살을 하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자살자의 400배 이상인 자살 예비군이 있답니다. 

 

20배에 달하는 사람은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고 위험군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637만 명이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있다는 충격 보고가 있습니다.

 

특히 20명 중 1명의 청년들이 계속 자살충동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꾸 꿈을 심어줘야 5년 10년 뒤 사회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OECD 국가 중에 대한민국이 자살율 1위입니다. 

 

사람들이 방향감각을 잃었고 꿈을 잃고,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국가가 꿈을 심어 줘야 합니다.

 

5년 10년 뒤에 꿈이 있어야 의욕이 넘치는 건강한 삶이 됩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강도 높은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뒤틀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자신과 환경을 이길 수 있는 확신이 중요합니다.

 

현 시대가 안타까운 것은 이런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확신이 있을 때, 어려움도 인내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가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도 가장 불행한 것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부부, 가족 간에도 신뢰의 대한 확신이 중요합니다. 

 

이웃과의 공동체 생활도 신뢰하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직장의 동료나, 사회 속에서 이뤄지는 모든 관계성이 신뢰에 대한 확신입니다. 

 

국제 관계에도 서로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남북관계도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불확실성 때문에 갈등하는 것입니다.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개인뿐 아니라, 국제관계 질서도 깨지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1) 건강한 신앙은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지금 세상을 떠나도 천국 간다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2) 또한, 믿음도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움에서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을 의지하고 싸우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이름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 때문입니다. 

 

(3) 또한 기도도 응답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풍랑이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갈릴리 바다에도 풍랑이 일었습니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누가 뭐라 한다고 예배가 무너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국가가 뭐라 한다고 주위에서 뭐라 한다고, 예배가 무너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뜻을 알리실 때, 불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확실하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싸인이란 확실한 응답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방사람 고넬료와 유대인 베드로의 만남에서, 성령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숨은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영성이 회복되어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의 만남이 우연히 아닙니다. 

 

고넬료에게 싸인을 주신 하나님이, 베드로에게도 싸인을 주셨습니다.

 

두 사람에게 똑같이 환상으로 싸인을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양쪽 다 싸인을 보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뜻을 전할 때 확신있게 알려 주십니다.

 

한 청년이 맘에 드는 자매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결혼하라고 하신다며, 집요하게 계속 순종하라고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자매는 전혀 마음에 없는데, 고통스러워서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결혼의 대상을 정할 때,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양쪽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랑의 감동을 주던지, 눈에 콩깍지를 씌워 주시던지 할 것입니다.

 

한쪽은 사랑하지도 않고, 꼴 보기도 싫다고 하는데, 자기혼자 좋아하면서 하나님이 계시하셨다고 한다면 이것은 크게 잘못된 신앙입니다.

 

아무 것이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들이 밀면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청년이 이단 신사도운동에 빠진 자 같으니 알아보라고 했더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때 백지연 아나운서에게, 하나님이 계시를 주셔서 결혼하라고 했다가 결국 무산되자 자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단 신사도 운동은 극단적 신비주의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직통계시를 받는다는 자들입니다.

 

하나님한테서 직접 이메일로 온답니다.

 

하나님도 이 메일을 사용하세요?

 

그러면 성경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고넬료에게도, 베드로에게도 환상가운데 모두에게 똑같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혼돈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예리한 영적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영분별 하는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단칼에 잘라야 합니다.

 

사단마귀, 미혹하는 영들이 속삭이며 접근합니다.

 

시대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확신 있는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언제 이런 하나님이 싸인을 주셨습니까?

 

1. 기도할 때 하나님이 싸인을 주셨습니다.

 

1) 기도하는 고넬료에게 주신 싸인이 있습니다.(3-5. 9-11)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3-5절)

 

고넬료는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이방인으로 독실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고, 온 집안이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2절)

 

고넬료가 기도하는 환상중에 하나님이 보낸 사자가 나타났습니다.(3절)

 

그리고 4절에 천사를 통해 고넬료가 드린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응답을 전달받았습니다.

 

행10:31절에도 고넬료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라는 싸인이었습니다. (5절)

 

이 놀라운 역사가 기도할 때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히스기야가 그러했습니다.(왕하19:1-37)

 

앗수르 군대가 백성들에게 히스기야를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들 말을 듣지 않으면 입을 벌려 분비물을 먹이겠다고 합니다.(27)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며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왕하19:3)

 

앗수르에서 온 편지를 가지고 성전에 펴 놓고 간구했습니다.(왕하19:4)

 

기도하던 밤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앗수르 군대의 눈을 멀게 해서, 하룻밤에 18만 5천명이 서로 찔러서 죽게 만들었습니다.(왕하19:35)

 

바로 기도하던 밤이었습니다.

 

하나님 손길을 움직이는 역사의 순간이 언제 일어나느냐?

 

기도할 때 일어납니다.

 

목사가 들볶으니까 하는 게 아니고, 기도 없이는 살수 없다고 고백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천사가 나타나 옆구리를 쳐 깨워서 옥문을 빠져나간 사건이 있었습니다.(행12:5)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던 시간에 옥문이 열리고, 베드로를 끄집어냈습니다.

 

베드로는 정신없이 천사를 따라가 보니, 그 시간에 온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에 나타난 수없는 역사들이 기도할때 였습니다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고넬료도 기도할 때 눈을 열어주셨고, 천사를 통해 응답을 알려 주셨고, 베드로를 만나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넬료만 그런 것 아닙니다.

 

2) 기도하는 베드로에게도 똑같은 싸인을 주셨습니다.(9-11절)

 

9절에 베드로가 정해진 기도시간에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다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에 지붕은 기도하는 처소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붕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는 기도하는 사람은 내려가지 말라는 영적인 말씀입니다.(마24:17, 막13:15)

 

베드로가 기도할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11절)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중에 하늘에서 보자기에 그릇이 내려오는데 그 안에 각종 짐승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이것을 잡아먹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순간에 이런 부정한 것을 먹을 수 없다고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굽이 갈라지지 않은 것이나, 비늘 없는 고기나, 새김질 하지 않는 고기는 먹지 않습니다.(레11:2-8, 신14;3-8)

 

그런데 주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10:15)

 

하나님이 주신 것을 네가 왜! 부정하다고 하느냐?

 

내가 깨끗케 하였는데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10:15)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정한음식과 부정한음식에 대한 구별이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이 없어졌다는 뜻입니다.(엡2:15-16)

 

그 증거로 하나님은 고넬료 가정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행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랐다고 했습니다.(45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 하셨습니다,((엡2:15-16)

 

베드로에게 똑같은 싸인을 세 번씩이나 주셨습니다.(16절)

 

베드로가 무슨 뜻인지 생각하고 있는 동안,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베드로의 문을 두드렸습니다.(17절)

 

이 모든 일들이 기도할 때,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싸인을 주셨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공통점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성도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새벽기도를 많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너를 도와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시46:5)

 

하나님이 새벽에 도와주신다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거세요.

 

하나님께서 새벽에 너를 도와주리라 하시잖아요.?

 

새벽예배는 한국교회를 일으킨 원동력입니다.

 

사실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스트레스 많은 문화권속에 새벽예배는 힘이 듭니다.

 

그러나 그런 삶속에서 한국교회는 새벽기도의 힘을 통해서,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새벽에 도와주시겠다고 하는데, 이런 저런 핑계하지 마세요.

 

새벽에 도와주겠다며 ‘새벽을 깨우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시57:8)

 

일본사람은 모이면 회사를 만들고, 중국 사람들은 식당을 세우려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2-3명만 모이면 교회를 세운답니다.

 

그리고 새벽부터 교회에 와서 기도합니다.

 

왜! 한국 사람들은 그 시간에 그렇게 기도 할까요?

 

그토록 새벽에 목숨거는 것일까요.?

 

맛을 알기 때문 아닐까요?

 

새벽기도가 좋아 보이기도 하고 호기심도 있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새벽기도라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디아스포라/조국의 뿌리가 옮겨와서 이민생활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교회와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려도 전보다 은혜가 없고 밋밋하다면 새벽기도에 목숨을 거세요.

 

지금 영성에 목마른 상태는 아니신지요?

 

무엇에 갈급한 심령이 아니신지요.?

 

물질로, 건강 문제로 목말라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목말라 있습니까?

새벽기도의 단을 쌓으세요.

 

왜 특별히 새벽기도의 단을 쌓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 하리니, 새벽에 내가 너를 도우리라“(시46:5)

 

전쟁터와 같은 이민의 삶에서는 강력한 변호자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강력한 변호사가 되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벽에 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출14:21에 홍해가 갈라진 시간이 새벽이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 밤새도록 사선을 넘는 기도를 하다가 동틀 무렵 하나님의 응답이 떨어졌습니다.(창32:22-30)

 

요나가 니느웨성을 끝까지 피하려다가 새벽에 박넝쿨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12만 명을 구하였습니다.(욘4:1-11)

 

여호수아는 새벽미명에 일어나 여리고를 점령하였습니다.(수6:8-21)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하고 병을 치유하시는 중에도 늘 새벽기도가 있었습니다.

 

새벽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한적한 곳에 기도 하시더니.(막1:35)

 

새벽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문제를 내 놓고, 도움을 구하세요.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것임을 확신하시길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은 양쪽으로 응답의 싸인을 주셨습니다.(19-22절)

 

1) 일방적인 응답이 아닙니다.

 

베드로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행10:19-20)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20절 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내가 그들을 보내었노라..

 

그 짐승이 이방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피로, 예수를 믿으면 깨끗해 졌느니라.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10:15)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정한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이 폐하여 졌다는 뜻입니다.(엡2:15-16)

 

그 증거로 이방사람 고넬료 가정에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랐다고 했습니다.(행10:45)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셨도다.(행11:48)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이라.(엡2:15-16)

 

목회를 하면서 보면 도대체 분별이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매일 싸우는 부부를 보면 “화성에서 온 사람, 금성에서 온 사람” 같이 만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일 때는 반드시 양쪽에 싸인을 주십니다.

 

창24장에 이삭이 40세에 리브가를 만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창24;7)

 

하나님은 우물가에 있는 리브가를 만나도록 이미 주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싸인입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16:14)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셨고, 훗날에 루디아를 통해 빌립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바울과 루디아 양쪽에 주신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하나님은 중요한 일을 하실 때 반드시 양쪽으로 싸인을 주십니다.

 

친구 목사님에게 선교사라면서 돈이 필요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목사님을 찾아가라고 하더랍니다. 

 

자기에게 돈을 도와주라고 하나님이 말씀 했다고 찾아 왔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하는 말이, 선교사님! 더 기도하시죠. 

 

왜! 내 마음에는 당신에게 돈을 주라는 응답이 전혀 없지요? 

 

내게도 당신과 같은 응답이 와야 할 것 아닌가? 돌려보냈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습적 사기 전과범이더랍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일 때에는, 고넬료와 베드로처럼 양쪽 모두에게 동일한 하나님의 싸인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의심하는 베드로에게는 3번씩 동일한 싸인을 보내셨습니다. 

 

만약 고넬료에게 만 응답을 주셨다면 베드로가 거부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집에 갈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도 같은 환상을 통해 싸인을 주셨기 때문에 기쁨으로 맞이한 것입니다.

 

고넬료와 베드로 양쪽 모두에게 똑같이 응답하셨습니다. 

 

똑같은 환상이 3번씩이나 더블 싸인으로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이상해서 환상에 대해 생각하는데 문밖에 찾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의심하지 말고 그를 만나라는 하나님의 싸인을 받게 되었습니다.(20절) 

 

베드로에게 고넬료가 보낸 그 사람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정확한 하나님의 방법이요 응답입니다.

 

성경에 이런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행8장에도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갈급해 하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빌립을 만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아프리카 복음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전도할 때도 당장 복음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만나게 합니다.

 

양쪽의 만남을 주선하신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주신 사실에 놀랍다는 것입니다.(행10:45-46)

 

3. 하나님이 두 사람에게 사인을 주신 목적이 있습니다.(36-38절)

 

1)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36절)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십자가를 통해 원죄, 자범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을 통해 죽음문제를 해결하신 복음이 전파하시길 위해서입니다.

 

2)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산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심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42절)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어 천국 백성이 되고, 믿지 않으면 멸망 받는 다는 사실입니다, 

 

  영생과 영벌의 재판장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3)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전할 때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셨습니다.(44절) 

 

예수를 전할 때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방세계에 복음이 전파됨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런 영적세계를 깨달을 수 있을 때, 이 은혜를 깨달아야 영적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국속담에 “내일의 꽃은 오늘의 씨앗에 근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새벽은 하루의 씨앗이며, 1년의 씨앗이며 평생 희망의 씨앗입니다.

 

새벽은 꿈이 없는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는 씨앗이며, 게으른 자는 받을 수 없는 씨앗입니다.

 

새벽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새벽예배가 얼마나 엄청난 역사를 불러 오는지 잘 압니다.

 

새벽은 눈물의 단비가 내리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되는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벽이라는 사실입니다.

 

영적으로 깊은 어두움의 시대에 역사의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이 되셔야 합니다.

 

새벽은 치유받는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도 살 수 있는 새 힘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벽재단을 쌓습니다.

 

마귀사단은 새벽의 소중함을(마27:21) 알고, 새벽을 이용합니다.

 

6.25 사변이 새벽에 전쟁을 일어났습니다.

 

미국이 가장 수치스러워 하는 진주만 공격을 새벽에 공격했습니다.

 

새벽에 기도하시면 아이디어와 지혜가 샘솟게 됩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드리는 찬양과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흔드는 것입니다.

 

기도가 살면 사막이 물댄 동산이 됩니다.

 

새벽기도에 도전해 보세요.

 

하나님은 신실한 고넬료와 베드로가 기도할 때 만나도록 환상을 통해 싸인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싸인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한쪽에만 응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개입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혼란하고 어려운 시대일수록 기도 줄을 놓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확실한 신앙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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