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
본문 : 마태복음 5:14-16
예수님은 산상수훈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씀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의에 주린자가 되어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될 것을 강조 하셨습니다.
하지만 심령이 복잡해 졌습니다. 온통 계산적이고, 철저한 자기 중심적인 자아로 가득차 버렸다. 온유한 자가 되기 보다는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었다 . 의는 거덜나고 긍휼은 사라지고 ,화평은 없고 불협화음만 가득할 뿐이다. 어느새 세상은 모두가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세상으로 변했다.
어느새 아름다운 관계 보다는 살벌한 관계속에서 산다. 이웃을 향한 사랑과 배려 보다는 탐욕과 욕심이 익숙한 삶을 산다. 이런 상태를 보시고 주님을 아주 중요한 단어로 세상을 평가하신다.
그 두 단어가 바로 소금과 빛이다. 소금 하면 연상 되는 게 부패다. 썩음으로 인해 풍기는 사악한 냄새다. 왜 소금을 언급하시는 걸까? 더 이상 부패나 타락이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막자는 의미 입니다. 왜 빛일까? 빛은 어둠을 밝힘으로 밝고 건전한 정신을 갖고 살기를 기대 하시기 때문이다.
변화를 위한 삶을 위해서 주님은 성도들에게 영적 명령을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용되어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 희망을 준다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다. 내가 타인을 위해 쓰여짐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이야 말로 인생 후반전을 사는 성도들의 목표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어둠의 현상들 중에 하나가 깨어짐 이다. 가정이 깨지고 관계가 깨지는 아픔들을 경험 합니다. 너무 힘들고 어렵다 보니까 인내도 식어진다. 절망적인 상황이 삶을 고통속으로 몰아 갑니다.
예측치 못했던 자연 재해로 인해 부닥치는 가족과의 깨어짐을 본다. 지진으로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함께 대화하며 밥 먹던 친구와 가족이 영원한 이별을 해야 했다.
어느 누구도 어두움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이런 관점을 갖게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세상의 빛이다 라고 말씀 합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어두움의 시대는 삶을 절망케 한다. 두려움과 공포로 몰고 간다. 이런 시대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라는 말씀은 우리를 통한 이웃에게 빛을 전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빛의 특징은 밝음입니다. 환하게 합니다.어둠은 정신 못차리고 살게 합니다 .뭐가 옳은 길인지 분간을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밝음은 건강한 생각을 갖게 한다. 어디가 길인지 알게 한다.
빛은 어두움을 밝음으로 바꿔 놓게 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물론 우리는 빛이 아니다. 빛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의 빛을 받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뿐이다 .
빛은 밝음이다. 빛은 치료 하는 광선이다. 내 속에 빛이 비췸으로 내 속에 하나님의 영이 나를 꿈틀 거리게 합니다. 어둠에 사로 잡혀 있던 나를 새롭게 깨우신다. 온통 부정적인 생각들이 치료하는 광선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기억한다. 병든 마음을 고치신다. 쓰러진 나를 세워 세상으로 빛이 흘러 가도록 나를 사용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빛을 비추는 빛의 방향이 중요하다. 빛인 우리가 어디를 향해 비추어야 하는가 가 중요하다.
바로 세상을 향한 빛의 방향이다.
오늘 본문 15절을 볼까요..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방향이 말 아래에 가 아니라 등경 위에 두나니..
하나님이 비추시는 빛을 스스로 차단함으로써 등경 위에 두어야 할 빛을 말 아래 두어서는 안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빛을 비추는 반사경이 흐릿 흐릿 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반사경이 훼손되거나 때가 끼지 않도록 늘 점검하고 청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방향을 잘 잡았다고 하여도, 반사경 자체가 잘못되면 빛을 제대로 반사시킬 수가 없다. 늘 깨어 기도하며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의 볼 수 있다(마 5:8).
둘째, 올바른 방향을 향해 비추는 삶의 행실을 보게 하라
어둠속에서 살다가 빛이 들어와 변화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바울이다.
행 22;6에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 사울에게 비춰진 큰 빛은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꾸셨다.
사울이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나요? 철저한 교만 덩어리였다. 그저 입만 열면 자기 자랑뿐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생명을 죽이는 것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사울의 삶은 온통 훼방, 훼손, 훼파 뿐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사람에게도 주님의 빛이 비춰 진다. 빛을 통해서 눈이 멀어지고, 새로운 영적 탄생을 경험 한다.
심령이 가난해졌다. 겸손과 낮아짐으로 모든 사람에게 대한다. 이웃을 향한 섬김의 마음이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 바울이 가는 곳곳마다 주의 빛이 바울을 통해서 전달된다 .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셨다.
16절에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세계의 엘리트 들이 아니다. 상당히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다. 별로 눈에 띄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12명의 제자들의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하라고 하신다.
마지막, 네가 있는 곳에서 당신의 빛을 비추십시오.
16절에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춰 ..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여전히 어두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 빛을 비추는 성도가 되자. 노아 홍수 후에 노아의 세 자녀들중에는 여전히 죄악의 길로 가는 형제가 있습니다. 함의 족속입니다. 이미 홍수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악의 길로 갑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이전과 동일한 부패와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청난 홍수를 경험했던 자녀다. 세월이 지나가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전에 경험했던 것을 잊어버린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합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산 위에 있는 동네.. 다른 말로 표현해 본다면 언덕 위에 사는 자 입니다. 높은 곳에 있다면 모든 사람들의 눈에 띄기 마련 입니다 .
우리 가 보여 주어야 할 착한 행실의 질을 높이자.
우리의 선행을 좋은 품질로 해야 합니다. 매력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어둠 속의 빛입니다.착한 행실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귀한 일군들입니다. 언덕위의 도시와 같습니다.
빛 가운데 에서 주님과 사귐을 갖자
빛 가운데 에서 이웃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자
요일 1:6-7에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는 자기 만을 위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할까요? 살전 5:5 에 너희는 다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임이로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않습니다 “ 라고 강조 합니다 ..
우리 또한 빛을 비추는 자로서 희생과 헌신이 멸망의 길로 가던 자들이 발길을 옮기는 역사를 기대하자. 우리가 비추는 강력한 빛에 고꾸라지는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면서 빛을 비추는 십자가의 길을 오늘도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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