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생명을 살리는 소리만 들으세요

김경열 목사 0 2020.09.21 09:27

본문말씀 : 창 3:1-10 

제   목 : 생명을 살리는 소리만 들으세요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과일을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When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a delight to the eyes, and that the tree 

 was desirable to make one wise, she took from 

 its fruit and ate: and she gave also to her husband 

 with her, and he ate.(Genesis 3:6)]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쉴새없이 들려오는 소리 가운데 들어야 할 소리도 있지만

듣지 말아야 할 소리들도 있습니다.

 

진실한 소리가 있는가 하면 거짓된 소리가 있고

생명을 살리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죽이는 소리들도 있습니다.

 

희망을 주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절망에 빠뜨리는 소리도 있고 

따뜻한 사랑을 품게 소리가 있는가 하면

미움과 증오를 일으키는 

소리도 있습니다.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 중에는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소리가 있는가 하면

마귀가 유혹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도의 지혜는 들어야 할 소리를 

분별력 있게 잘 듣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아담과 하와는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으므로 

에덴의 모든 축복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세 가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귀가 하와를 유혹하는 소리가 있고

선악과를 먹고 믿음을 잃은 하와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 소리는 에덴에만 들려온 소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도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도 

마귀는 끊임없이 속삭이며 달콤하게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지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들어야 할 소리와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분별할 줄 아는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들려온 소리 중에는

1. 유혹하는 마귀의 소리가 있었습니다.(4-5절)

 

1) 유혹하는 자는 마귀입니다.(1절)

 

당시 들짐승 중에 뱀은 가장 간교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뱀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며 말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시험에 빠뜨리는 유혹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으려고 

마귀가 속삭이는 소리입니다. 

 

마귀는 천사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가장하여 유혹합니다. 

 

간첩이 내가 간첩이라고 찾아오지 않고 

선한 사람인 것처럼 찾아와 접근하고 유혹하여

포섭하고 정보 다 빼앗고 넘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와를 유혹하여 넘어뜨린 뱀이 

당시에 가장 간교한 자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친구인 줄 착각하게 사귀면서

선악과를 바라보게 유도했고

따먹으라고 하지 않고

따먹을 수밖에 없도록 유혹했습니다.

 

하와는 마귀가 이롭게 하는 친구인 줄 착각하고

다섯 가지 유혹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1) 하와는 사귀지 말아야 할 마귀를 사귄 것입니다.

누구를 사귐이 중요합니다.

 

(2) 보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보았습니다. 

환경이 중요합니다. 

 

(3)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었습니다. 

유혹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람이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으면 

심령에 병이 생깁니다. 

그래서 좋지 않은 소식은 

애써 안 들은 걸로 한다고 합니다.

  

(4)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5) 만지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만졌습니다. 

 

이 다섯가지 유혹에 빠져간 결과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 유혹은 오늘 내 삶의 현장에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써 놓은 성도가 만지지 말아야 할 것

이라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먼저 선악과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

다음으로 십일조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주일날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

 

이곳에 손을 대면 감전되듯 마귀유혹에 빠지고

결과는 에덴에서 쫒겨나는 것입니다.

 

마귀가 유혹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올 때 힘써 싸워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오물이 묻을 곳은 피하는 것이 능사(能事)입니다.

 

오물의 자리에 오래 머물면 자신도 모르게 

그 환경에 물들어가고 동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기 전 

고향땅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팔았고

고향땅 갈데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머문 곳이 죄악의 자리요,

오염의 자리라면 떠나는 것이 

유혹을 이기는 지혜입니다.

 

그리고 네가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하나님 같이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 하나님같이 되기를 원합니까?

 

이렇게 사람이 유혹에 빠지면 

본분을 망각하고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여러분이 매일 머물고 있는 곳이 

유혹의 자리는 아닌가요? 

죄의 자리는 아닙니까? 

 

때론 비겁해 보일수도 있지만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유혹을 이기는 비결일 수도 있습니다. 

 

유혹이 소리는 언제 들려오나요?

2) 유혹의 소리는 말씀에 확신하지 못할 때 들려왔습니다.(3절)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 뱀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3:4-5) 

 

(1) 왜 신앙이 약해지는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지 못할 때 

신앙이 흔들리게 됩니다. 

언제 하나님이 죽을까 하노라 했습니까?(불확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습니다.(창 2:17)

 

(2) 진리는 확신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불확실한 신앙으로 대답할 때

마귀는 더 가까이 접근해 결코 죽지 않는다고 유혹하면서

네가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 같게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3) 사람이 유혹에 빠지면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결국 하와는 마귀(뱀)의 유혹에 넘어졌습니다. 

 

불확실한 신앙을 통해서 마귀는 항상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확신있게 믿음(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2. 신앙을 떠난 하와가 유혹하는 소리를 분별해야 합니다.(6절)

 

1) 육의 소리를 분별해야 합니다(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6절)

 

(1) 믿음을 떠난 자의 소리를 거절하세요.

 

하와는 이미 믿음을 상실한 자였습니다.

 

지금 하와는 이미 유혹에 빠졌습니다. 

가치관이 무너졌습니다.

정체성과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믿음을 떠난 하와의 소리는

육에 소리요, 사람의 소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소리를 들으면 죽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아담은 믿음을 떠난 하와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1) 성도는 믿음을 떠난 자의 소리에 주의해야 됩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고

가장 믿었던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에 든 성도가 치료를 받으려면

자기보다 믿음이 더 좋은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꼭 먼저 시험 든 사람을 찾습니다.

 

마귀는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지옥같이 갈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2) 적이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대개 유명인들, 정치인들이 

치명적으로 무너질 때가 언제입니까? 

 

가장 믿었던 기사, 보좌관들, 비서, 

가장 믿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인생이 무너지는 통로가 되는 것을 봅니다.

 

아담도 가장 가까이 있던 하와의 소리에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믿음을 떠난 자의 소리를 들었고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육의 소리가 들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2) 세 가지를 끊어야 합니다.

 

(1) 인정을 끊어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 사건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으면서 우리가 지키겠다. 

절대로 십자가 지게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도, 섭리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하면서 

한 번에 거절하면서 단호하게 끊어 버렸습니다. 

 

행 20장에 성도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을 말렸습니다.

 

예루살렘에는 핍박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지 말라고 울면서 붙잡을 때

바울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마음을 약하게 하느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행 20:24)

 

나는 예루살렘에서 결박뿐만 아니라

죽음도 각오했다고 했습니다.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순교의 길을 걷겠다는 것입니다.

 

사명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겠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겠다는 각오입니다.

 

인정을 끊어버리고 사명을 따라갔습니다. 

 

(2) 또 하나 애정도 정리해야 합니다. 

 

법궤를 메고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는 

새끼 송아지가 어미를 부르면서 울고 있는데

그걸 떼어놓고 가는 사명을 말씀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성애라는 것은 굉장히 강합니다.

 

시골에서 송아지가 자라면 우 시장에 내다 팝니다.

 

그러면 어미 소는 잠도 안자고 여물도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새끼를 찾으며 음메 음메 하며

일주일은 웁니다.

 

새끼 소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벧세메스로 가는 소는 

(1) 뒤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2)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3) 벧세메스 길을 향해 곧장 끝까지 갔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살아가는 진정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인정에 매여서 사명을 끝까지 못가는 것은

쟁기를 잡고 뒤 돌아보는 자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3) 사정도 뛰어 넘어야 합니다. 

 

때때로 어쩔 수 없었노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변명할 때부터

신앙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주일 날 어쩔 수 없이 빠졌습니다.

회식자리에 상관권유를 뿌리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마셨습니다.

 

십일조에 정직하지 않고 내 형편 하나님이 아실거야.

스스로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변명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환경을 뛰어넘고 조건을 초월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강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수혈하는데 피가 모자란다고 물을 섞을 수는 없습니다.

 

환경과 타협하며 동화될 때부터 세속화되는 것입니다. 

 

믿음 떠난 사람의 소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제 신앙을 잃고 하나님을 떠난 육의 소리가 들려올 때 

단호히 거절하시길 바랍니다.

 

성도는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합니까?

 

3. 성도는 하나님의 소리를 분별해야 합니다.(8-9절)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8)

 

1) 혼돈된 시대에 하나님의 소리가 언제 들려옵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소리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생명이 삽니다. 

복을 받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살면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은 언제 들려옵니까?

 

(1) 하나님의 음성은 기도할 때 들려옵니다. 

 

기도는 혼자 하는 독백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삽니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말씀이 950여회 나옵니다.

 

분명한 사실은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계시록 8장에 천사가 금향로에 기도를 담아

하나님 보좌에 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2) 또한 하나님의 음성은, 잘못 살았을 때도 들려옵니다.

 

성도가 잘못 살았을 때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들려줍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도 

하나님의 음성은 회개하라고 들려옵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 숨었을 때,

"아담아 어디 있느냐?"

고 부르셨습니다.(9절) 

 

아담처럼 숨거나,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 안에 피할 곳, 

숨을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변명하지도 마세요. 

 

하나님 앞으로 나와 잘못했노라고 고백하세요. 

잘못했다고 두 손을 들고 용서해 달라고 엉엉 우세요.

 

이것이 사는 길이요, 승리하는 길입니다.

 

(3) 또한 충성할 때도 들려옵니다. 

 

때로는 평안함으로 기쁨과 위로로 들려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곳곳에서 봉사로 섬기는 성도들을 보면 

기도가 저절로 되어 집니다.

 

육신이 피곤한데도 온종일 수고하는 마음은

기쁘고 즐겁습니다.

 

전도하러 나가서 한 영혼을 구원해 보세요. 

 

온 천하를 얻은 기쁨이 얼마나 큰 지 

날아갈 듯 기쁘고 뿌듯합니다.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되고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뉴욕실버미션도 선교지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역을 하면 

녹초가 됩니다.

 

환경도 여의치 않은 곳에서 주로 사역을 하게 되는데 

우리를 만나러 새벽부터 멀게는 

한 나절을 걸어서 모여듭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힘이 납니다. 

적지도 않은 나이들인데 하루에 

천 여명을 케어하고 나면 힘이 들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음성 들려주시고 위로하시니

피곤한 줄도 모르고 감사로 섬깁니다.

 

모든 피곤과 수고로움이 다 사라지고

한없이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 주시는 

행복과 위로를 감사한다고 간증합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에 또 가고, 자식들이 말려도

순교한다는 마음으로 선교지를 찾아갑니다.

 

세상 일은 지치는데 주의 일을 하고 나면

행복하고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의 일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58)

 

2)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이 어떤 방법으로 들려오는가요?

 

(1) 말씀을 통해서 들려옵니다.

 

어려운 일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감동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요즘엔 설교준비를 하면서도 

말씀에 감동되어 엉엉 울기도 합니다.

 

말씀이 깨달아 질 때도 그런 뜻이 있었구나 울고, 

말씀을 전하다가도 울컥할 때도 많습니다.

 

카톡으로 설교를 읽고 응원을 해주고 

리플을 달아주고 기뻐하는 모습에 

눈물 짓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닭울음 소리에 주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요나는 풍랑 속에서 주의 말씀이 생각나서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했습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은 이사야 40장을 읽다가 회개했고, 

어거스틴도 로마서 13장의 설교를 듣고 

말씀 한 마디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에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생각나시길 축복합니다.

 

(2) 또한 양심을 통해서 들려옵니다.

 

양심은 인간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양심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내 양심이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힘쓴다고 했습니다. 

 

양심과 믿음은 새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한쪽 날개가 부러지면 그 새는 날지 못합니다. 

 

믿음이 신앙이라면, 양심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과 삶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굴러가야 됩니다. 

 

교회 안에서만 믿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당당하게 양심의 소리를 듣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또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리를 들려주십니다.

 

요한 계시록에 일곱 교회를 향해 

성령이 하시는 음성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롬 8:26)

 

성령에 감동될 때에 절제하지 말고

환경과 타협하지 마세요.  

성령은 기뻐도 하시지만 탄식도 하십니다.  

 

성령께서 마음 속에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민감하게 들을 줄 아는 성도가 축복입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의 임재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신령한 성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영적생활은 더욱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에 들린 세 가지 소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들어야할 소리가 있고 

듣지 말아야 할 소리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갑니까? 

 

가짜가 너무 많습니다.

 

영적 생활은 더욱 그렇습니다.

 

마귀가 유혹하는 소리에 

하와처럼 빠져 있지 않습니까? 

빨리 나와야 합니다.

 

육에 소리에 빠져서 

신앙이 무너져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아담아! (직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신앙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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