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애가 1:1-9
제 목 : 눈물의 선지자를 주소서
[슬프다 이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강제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애가 1:1)
How doth the sit solitary, that was full of people!
How is she become as a widow! she that
was great among the nations, and princess
among the provinces, how is she become tributary!
(Lamentations 1:1)]
이번 주간은 6.25전쟁
70주년 맞은 주간이었습니다.
지난번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알링톤 국립묘지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6.25때 한국으로 날아와
꽃다운 나이에 우리 민족을 위하여
전사한 수많은 병사들의 묘입니다.
그곳에는 이름도 찾을 수 없어
‘무명용사의 묘’라고만 적혀있는 탑도 있습니다.
그리고 참전 기념비 밑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라를 위하여
전혀 만나본 적도 없는 백성들을 위하여
우리는 부름을 받았노라.’
(We Serre for people we have never met
and countries we have never visited)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에 와서 전사했습니다.
이런 비문을 읽으며,
대각선으로 길게 뻗어 있는 묘지들을 바라보면서
당신들이 이렇게 죽었기에
지금 내가 살아있다고 고백하면서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었습니다.
올해는 동족끼리 피를 흘리며 전쟁한
6.25.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대치되어 있는 곳이 남북입니다.
바벨론 포로 70년에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회복되었듯이
우리 민족에게도 복음통일이 오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미국에는 곳곳에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의 기념탑이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 부조형식의 조형물로 된 탑에는
미국의 전사자 수와 피해자 명단이
빼곡이 적혀 있습니다.
6.25때 한국군과 유엔에서 죽은 사람과 부상자가
776,360명이고, 민간인들의 사망과 부상자와
실종자가 990,960명입니다.
약 2백만명이 죽거나 부상자가 되었고,
1천만의 이산가족이 생겼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없는 평화가 오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가 우리 힘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손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통일을 말할 때도
복음통일 이란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통일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내 나라 내 조국이 있음을
무엇보다 감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의 기도용사들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암울한 조국의 앞날을 바라보면서
노구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주저앉아
슬피 울고 있는 예레미야의 애가는
오늘 이 시대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와야 합니다.
지금도 끝이 나지 않은 전쟁의 휴전 속에서
북한에서는 수없이 미사일을 쏘고 있으며
언제 핵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지구상에 가장 전쟁의 위험이 높은 곳이
우리나라 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설마설마 하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남의 일처럼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와 경제라고 생각합니다.
안보와 경제는 나라를 지탱하는 두 기둥입니다.
세상은 경제의 논리로 움직여집니다.
안보가 무너지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습니다.
경제와 안보는 여야가 따로 없고
보수 진보가 따로 없습니다.
나라가 없이는 개인의 행복도, 기업의 번영도,
신앙의 자유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나라를 위해 어느 때 보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할 때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수난사를 재현해 놓은 '야드바셈'이란 박물관이 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막상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답니다.
눈물없이 관람할 수 없을 만큼 유대인이 당했던
지난 역사의 수난사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전시관 맨 끝에 가면 이런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용서는 해 주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라는 글입니다.
유대인들은 히틀러에게 6백만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들은 그 후 6백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으면서
눈물로 민족의 혼을 간직하며 그리고 후손들에게
“그들을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라.”
역사를 이렇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실제 이스라엘 본국에는
유대인이 610만 밖에 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민족정신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 살고 있든지
수입의 몇%를 본국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변의 300대 1의 아랍국가들 속에 둘려 싸여 있지만
감히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민족정신입니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유대인들처럼 민족의 혼을 심어 줘야 하는데
역사를 왜곡하며 6.25노래 가사도 변경시켰습니다.
오늘 말씀에 예레미야 애가라는 책은
슬픈 노래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군대에 함락되면서
눈물로 고백하는 5번의 슬픈 노래를 지었습니다.
내용은 하나님의 징벌을 초래한 죄악을 회개하고
또한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가운데
다시 회복될 날을 기대하는 소망의 노래입니다.
1. 예레미야는 나라 잃은 슬픔을 고백하고 있습니다.(1-3절)
1) 슬프다 이 성이여(1절)
슬프다는 히브리어 원문은 ‘에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우리나라의 ‘아이고’와 같은 말로 사용하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란
비극적인 상황을 뜻하는 언어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장례식에서 조문을 낭독할 때
이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즉, 예레미야의 심정은 마치 초상을 당한 상주의
비탄한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이
이처럼 멸망하게 된 비참한 현실을 강하게 전달함으로
백성들로 죄책감을 느껴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1절에 전에는 이란 단어가 3번이나 나옵니다.
나라가 흥할 때는 사람도 많았고
열국 중에 큰 자였고 공주같이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과부같고 이제는 강제노동자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 탄식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은
나라를 잃은 슬픈 조국의 모습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백성들이 잡혀가고
유다왕 여호야긴 까지도 사로 잡혀 갔습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나라가 망하고 나니
그토록 절친했던 이웃 나라도, 많았던 친구도 떠나고,
돌아보는 자가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할 당시 가장 믿은
동맹국이었던 애굽은 전혀 도와주지 않았고
동맹을 맺은 에돔 족속은 오히려
유다 성읍을 약탈을 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리에 주저앉아 처절하게 흘리는 눈물입니다.
나라가 부강하고 힘이 있을 때는
주변국들이 모두 친구인 줄 알았는데
나라가 망하고 빼앗기고 나니
모두가 등을 돌렸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될 때 인사하는 사람도 많고
찾는 사람도 많고 친구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려움 당하고 실패하고 병들었을 때
내 곁에 남은 친구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망하고 나니 친구도 떠나고, 이웃도 떠나고,
자기 형제도 외면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망하고 추락할 때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이 생각납니까?
나라도 국력이 있어야 힘이 있고 당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내 조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개인의 성공도, 가정의 행복도, 기업의 발전도
나라가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동족끼리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 민족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최악의 비극이 됩니다.
반면에, 일본, 중국, 러시아 주변국들은 대박이 터지는 것이
된다는 글을 보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일본이나 미국은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없이 똘똘 뭉쳐 하나가 되어 대처하는 것을 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의 상처가 치유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남남갈등을 치유하고
복음으로 남북통일을 이루는 날,
세계 민족들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거리에 주저앉아 처절하게 고백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오길 축복합니다.
2) 또한, 사랑하던 자가 원수가 되었다는
슬픈 탄식입니다.(2절)
이렇게 슬퍼하고 있지만 누구도 위로자는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였습니다.(2절)
사랑한다고 하던 자가 오히려 원수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힘의 원리, 쩐의 원리입니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나라를 잃은 슬픔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국가관을 분명히 하고
애국심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사회주의가 되면 종교자유가 없어
신앙생활을 할 수 없어집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존재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애국심이란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지키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 대한 애착입니다.
이 땅을 지켜내려고 하는 마음이 애국심입니다.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는
조국을 사랑하며 흘리는 눈물입니다.
이 시대에 조국을 사랑하는
눈물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나라가 없으면 교회도 없습니다.
안보 경제 국방이 튼튼해야 합니다.
2. 예레미야는 예배가 무너진 슬픔을 고백하고 있습니다.(1:4-6)
1) 제사장들의 탄식을 보세요.(4절)
왜 제사장들이 탄식을 합니까?
거룩한 성일이 되어도 성전 문이 닫혔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 3차 침공으로 솔로몬 성전과 제단은
불에 타서 파괴되어 없어졌습니다.(왕하 25:9)
유다백성을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으니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 절기를 지키려고
나가는 사람이 없는 비통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주일이면 예배드리러 오는 곳인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절기를 지키러 나오는 자들도 없습니다.
예배드리러 오는 시온의 도로가 슬퍼한다는 말은
예배드리러 오는 성도들과 절기가 되면
순례객들로 항상 붐비던 곳이 시온의 도로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성문들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코로나를 통해 예배의 문이
닫히는 것을 우리가 경험했습니다.
국경이 막히고, 하늘길이 막히고, 교회 문이 닫혔습니다.
예배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마음껏 기도하고, 선교하는 것이
이렇게 복된 줄 막히고 나니 알았답니다.
거룩한 성일이 되어도 성전 문이 닫혀있고,
제사할 곳이 없는 제사장들은 탄식을 하며
바벨론 강가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슬픈 노래를 불렀습니다.
딸 시온의 딸 영광이 떠나감이여....
모세의 선언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이스라엘의 최고의 영광과 축복을 이제는 모두
다 빼앗겨 버리고 수치만 당한다고 한탄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음으로..(1:5)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8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으므로 일어난 결과입니다.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하였으니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라 했습니다.
(레 26:14-17, 신 28:36, 63-68)
하나님의 언약과 규례와 법도 계명을 중시 여겨야 합니다.
WCC, 다원종교, 동성애, 이단, 영적간음,
우상숭배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이름이 없어졌습니다.
미사일 핵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 밖에 두려울 것이 없고, 죄가 부끄러워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 밖에 자랑할 것이 없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수단 방법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아닌
맘몬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배당이 문 닫힌 것에 눈물 흘리며 회개해야 합니다.
예배가고 싶어 울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맘껏 기도하고 찬양하고 싶어 몸서리치는
성도들의 모임이 부활되어야 합니다.(선교와 구제)
이것이 예레미아 애가입니다.
마음껏 찬양하며 기도하며 예배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졌습니다.
마음껏 찬양과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성경책을
소지만 하고 있어도 큰일 납니다.
제2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이
회복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지하교회서 예배드리다가 잡혀서 감옥에 가고
처형당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자유가 있고,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는
신앙 자유가 있음을 감사하시길 축복합니다.
2) 포로가 되니 지도자들은 백성을 버리고
힘없이 달아났습니다.(6절)
왜 지도자들이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힘없이 달아났을까요?
나라가 포로가 되어도 싸울 힘도 없고
막을 힘도 없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싸울 힘도 있어야 하고
지킬 힘도 있어야 합니다.
사실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힘(면역)이 있으면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암 세포가 떠돌아다녀도 건강하고
면역이 있는 사람은 괜찮습니다.
요즘 이단들을 무서워 할 것이 아니고,
내 교회가 교육과 훈련으로 건강하면 빠지지 않습니다.
육체도 힘이 있어야 건강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경제도 힘이 있어야 하고 국력도 힘이 있어야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힘이 없으면 협상이 안 됩니다.
대화도 안 됩니다. 굴종입니다.
북한이 왜 핵을 목숨 걸고 집착하고 있습니까?
힘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탈 원전을 하고 있습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우리의 자원은 사람과 기술입니다.
우리는 경쟁력 있는 사람을 잘 키워야 합니다.
세계에 가장 뛰어난 원전기술은 앞으로
1000조의 가치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시 우리 민족은, 두 기둥 안보와 경제로
국력이 일어나야 합니다.
버트랜드 러셀은 인간의 힘을 3가지로 분류했습니다.
(1) 하나는 칼을 상징하는 ‘물리적인 힘’이 있고,
(2) 또 하나는 돈을 상징하는 ‘경제적인 힘’이 있고,
(3) 그 다음은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3가지의 힘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힘을 균형있게 유지하고 지혜롭게 분별하는
제 3의 힘이 있는데 그것이 영성입니다.
영성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다윗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시 18:1)
모든 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힘을 얻어 신앙도 일어서고
가정도 일어서고 나라도 일어서길 축복합니다.
3.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습니다.(9절, 11절하)
1) 지금은 나라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나의 환란을 감찰하소서.(9절 하)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11절 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애절하게 눈물로 호소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위기가 기회일 수 있습니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나는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말 못하는 어린아이의 가장 큰 무기는 눈물입니다.
울면 다 해결됩니다.
배고파도 울고, 아파도 울고, 괴로워도 웁니다.
아이가 울면 엄마는
아이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1) 우리도 하나님 앞에 울어야 합니다.
눈물은 진실을 말합니다.
진실한 감정이 눈물로 나타납니다.
슬플 때도 울고, 지칠 때도 울고, 그리울 때도 울고,
외로울 때도 울고, 기쁠 때도 웁니다.
(2) 눈물은 거룩한 전염을 시킵니다.
눈물은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감동을 전합니다.
눈물 자체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눈물이 메마를 때 삶이 삭막해 집니다.
(3) 하나님도 눈물을 보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병들어 살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홀로 통곡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준다고 알려주라고 했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왕하 20:5)
진실한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은 감동하셨습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절망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확진자들이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고
가족을 잃은 이들은 슬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여호와 라파 치료의 광선이 임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임하시길 간구합니다.
6.25 사변 70주년을 보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70년 만에 해방되었던 것처럼
우리나라로 하루 빨리 완전히
복음통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기도의 뜨거운 눈물이 필요합니다.
민족을 가슴에 앉고 기도하던 모세와 에스더,
바울과 같은 애국의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울면 해결됩니다.
하나님이여 눈물을 주소서.
이 민족을 위한 눈물을 나에게 주소서.
예레미야처럼 나라를 위하여 눈물을 달라고
기도하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6월 애국의 달을 맞아 동족의 상잔(相殘),
비극인 6.25가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내 나라 내 조국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던
예레미야나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눈물의 선지자가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엘란 패튼의
“조국이여 울어라”는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 울어본 적이 있는가?
두 동강 난 내 조국을 위해 희생당한 애국자들,
전쟁의 폐허 속에 허리띠 졸라매고
오늘의 근대화를 이룬 조상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애국의 선지자들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귀사탄 흑암의 권세를 예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물리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