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요새,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
본문: 시 91:1-16 (요절: 1-2, 15-16)
“1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2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 15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캘리포니아주의 그늘 / 유대광야의 땡볕을 피해 서늘한 폭포 아래 그늘에서의 시원함과 평안, 안식 ... 우리 모두 진정한 그늘인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시길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분이십니까?
1.나의 피난처이십니다 my refuge (2, 9절)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 블레셋 등의 적국을 유랑하다, 유대 광야로 피신한 다윗왕. 그러나 그의 온전한 피난처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시편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refuge”란 고백이 무려 44회입니다 (“피난처”란 한글 번역은 17번).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한 후, 요단 동편(게데스, 세겜, 헤브론)과 서편(바산-골란, 길르앗 라못, 베셀)에 도피성 6곳을 마련했습니다. 도피성은 짐짓 실수하여 사람을 죽인 사람이 피살자의 가족을 피하여 도망가 살 수 있는 피난처였습니다. 제사장이 그 오살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나의 피난처”라 일컬음은 온당합니다.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모든 죄와 죄의식으로부터 구원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예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죄를 대신 용서해 주셨습니다.
2.나의 요새이십니다 my fortress (2절)
우리 인생살이에는 시공을 가리지 않는 온갖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위험은 밤과 낮이 없습니다. “5 너는 밤에 놀램terror(히, 파하드, 공포)과 낮에 흐르는 살arrow과 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pestilence(히, 데베르, 전염병, 페스트)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plague ...” 부주의함으로 사냥꾼의 올무(3절)snare와 같은 원수의 모함에 걸리는 경우도 있고, 코로나 19와 같이 극한 염병deadly pestilence(3절)처럼 불의에 엄습하는 사고도 있습니다. 원수들에 의해 참담한 공격을 당하는 위기 일발의 사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화나 재앙이 미치지 못합니다. “7 ...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원수와 극심한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 새나 병사의 방패처럼 우리 신앙인들을 지켜 주십니다.
“10 화harm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disaster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뿐만 아니라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13절) 눌러 물리치게 하십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요새”가 되시기에, 모든 사악한 자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my God (2절)
이는 신앙고백중 가장 고차원적인 경지입니다. 이 안에는 이전에 언급한 모든 것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하나님을 나의 요새로 아는 축복받은 신앙인은, 참으로 주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갖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아무리 사소한 선물이라도 자기 소유가 된다는데 기뻐합니다. 이는 성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유는 가치를 더하며 "내 것"에 더욱 긍지를 갖도록 해줍니다.
야곱은 에서의 복수의 칼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는 도중에, 돌베개를 베고 길에서 잠을 잤습니다. 꿈에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고 들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 28:21) 라고 맹세했습니다. 그 후 20년이 지나 얍복강을 건너 쌍동이 형 에서로부터 보호 받았습니다. 그는 세겜에서 단을 쌓으며 감격하여 하나님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습니다 (창 33:18-20).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 외쳤던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자 모세와 미리암과 이스라엘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출 15:2) 라고 노래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공사를 행할 때나 그후 개혁을 할 때나, 하나님을 “내 또는 나의 하나님” my God 이라고 계속 일컬었습니다 (느 13:22).
십자가상에서 우리 주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 소리쳤습니다 (마 27:45-46). 우리가 절망하거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고 있을 때, “나의 하나님”이란 이 보배로운 진리는 우리 심령의 안식에 있어 얼마나 견고한 반석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나의 요새가 되십니다. 나의 의뢰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면 언제 내가 이렇게 전능자의 그늘에 확실히 거할 수 있습니까?
본문 1절 서두에 내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할 때”라고 말씀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은 어떤 곳입니까? 지존자의 보호처소shelter는 어디입니까?
여기에서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는 바는 하나님의 덮개가 있는 곳, 즉 성막이나 성전의 가장 거룩한 지성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기에 기거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 깨끗이 도말하셨기에,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보혈에 힘입어, 십자가에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을 좇아,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 10:19-20). 때문에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은 언제든지 지존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보호처소에 거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추격하는 죄와 죄의식에서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위협이나, 흉계, 염병, 테러, 죽음 등이 우리를 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아래 하나님을 의뢰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할 때, 지존자요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보호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까?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함께 하여 건지고 장수하게 하십니다. “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특별히 성령님 안에서의 기도야말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비결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 (엡 6:18).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두려움과 염려, 걱정, 불안, 초조, 공포가 엄습하십니까? 마음대로 나다니지도 못할 텐데, 먹고 마시기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곳곳에 문을 닫기에 직장을 잃을까봐, 나아가 건강을 잃을까봐, 결국은 목숨을 잃을까봐,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 등등 앞날이 불안하십니까?
그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 하나님께 더욱 기도하십시다! 그리하여 지존자의 은밀한 보호처소에 거하시길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보호받으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