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얕은 묵상 - 로마서 2장 23-24절

Caleb 0 2017.03.16 01:55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 You are so proud of knowing the law, but you dishonor God by breaking it. No wonder the Scriptures say, "The world blasphemes the name of God because of you."” (로마서 2:23-24)
율법과 할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으로서 자존심과 자랑을 가진 유대인을 향한 뼛속까지 찌르는 바울의 예리한 훈계이다. 이런 지적은 또한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구원을 값없이 은혜로 받았다고 안도하며 자긍하는 기독인들을 향한 뼛속까지 찌르는 교훈이기도 하다. 혹은 동일하게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사역의 현장에 섬기는 것으로 인하여 선교사라, 혹은 기름부음을 받은 목회자라는 칭호를 들으며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찌르는 말씀의 검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 당시에나 지금이나 영적 지도자나 복음의 현장에서 일하는 자들은 과분한 대우를 받는다. 다 그렇게 되지못하고, 다 그렇게 헌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까? 앞서서 분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도라고 다 그렇게 열심을 보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자격을 인정받는 교육과정이나 훈련과정을 이수한 증명서가 주는 권위 때문일까? 어떤 희소성 때문에 귀하고 값지게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용납이 되리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귀하게 취급받고 존경과 배려를 받을수록 더욱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라고 예수님은 거듭 강조하신 것이다.
바울 사도는 계속 구체적으로 지적을 한다.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하느냐?”
사람들로부터 어떤 이유에서든지 귀한 취급을 받고 존경을 받고 박수와 칭찬을 받는 여건에서는 누구나 교만에 빠지기 쉽다. 그것은 격려의 채찍으로도 작용하여 더욱 충성스럽게 사명에 임하게 하는 작용도 하지만 그것이 또한 자기가 마땅히 그런 존경과 박수와 칭찬을 받을 만하니 받는다고 여기게 만드는 중독성도 가지고 있다. 만약 내가 마땅히 그럴만한 위치에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교만으로 변질되어 버린 증거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모든 열매와 성과는 하나님이 받으시기를 소망하며 맺는 것들이 되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쌓아가며 갈채의 박수소리가 더 커지게 만들고자 일부러 열심을 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범하는 것에는 관대하여 뉘우칠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죄 된 모습에는 엄격하여 가르치고 훈도하는데 더욱 열심을 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가 이미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가 버렸다는 증거이다.
특별히 타 문화권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자인 나를 이 말씀이 더욱 깊이 찌르며 반성하게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전한다고 가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독을 받게 하는 경우를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하는 점이다. 복음적으로, 경제적으로, 개인적 경험과 배움의 수준으로, 혹은 부러움을 받는 외국인이라는 것으로 내가 교만을 떨고 있어 존귀함을 받아야 할 내가 높이 받들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오히려 욕되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할 때 온몸이 굳어지는 경직을 느낀다. 비단 선교현장의 사람들에게 뿐 아니라 조국의 많은 후원자들과 교회에 나는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고 반성하게 하는 말씀이 오늘 아침에 묵상하는 로마서의 말씀이다. 나라이름만 들어도, 혹은 지리적으로 기후나 환경이 힘든 지역에서 섬긴다는 것으로 동정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는가? 여러 가지 생활필수품들을 구비하고 살만치 살면서도 일부러 힘든 척 엄살을 부리며 후원과 기도를 이끌어 내는 짓은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볼 때 부끄러운 점이 많다. ‘누구나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 거짓말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만큼이라도 해보라고 해!’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넘어가려고 한다면 이미 깊은 침체에 빠져있다는 증거이리라.
어제는 선교지에서 세상을 떠나 유골로 돌아온 어느 여 선교사의 천국 환송예배와 장지를 다녀왔다. 수목 장으로 나무 밑에 비석도 없이 그냥 사각형 돌판 하나가 다인 무덤, 잊혀 질 이름, 언젠가는 가족 외에는 찾는 이도 없을 참으로 외진 야산 숲속 나무 밑 돌판 밑의 한줌의 유골, 비라도 많이 오면 쓸려 내려가 흔적도 사라질 것 같은 유택, 그러나 그곳은 주 예수님 다시 오실 그때에 나팔소리나면 가장 먼저 부활하여 일어날 그 보증과 언약으로 덮여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 선교사는 잊혀 질 존재이다. 때론 쓸데없는 낭비를 하며 외국에 나가있다가 괜스레 자초하여 죽어 돌아오는 한심한 존재이라 비판을 받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잊혀 지고 이 땅에서 비판 받아도 우리가 해야 할 회피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간 사람으로 하나님께 기억될 것을 믿는 것이다. 박수가 없어도, 칭찬이 없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다만 주님을 높이 받들어 그 이름이 최고의 존귀함을 받고 경배 받도록 자신을 살펴 가다듬고 낮으나 굳건한 자세로 계속 발걸음을 내 딛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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