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예수님의 부활

민경수 목사 0 2019.04.24 07:16
예수님의 부활
본문: 고전 15:20-22; 55-58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뜻깊은 소식이 될까요?

1.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다시 살기 때문입니다
첫째 본문 22절 후반 “...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우리 모든 인생들은 태어날 때부터 영혼이 죽어 있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한 원죄를 유전받기에, 창조주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지요 (엡 2:1-3). 이같은 인생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해 구원받고 새사람으로 다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4). 이는 이미 구약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일입니다 (사 53:10).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에 직접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요 12:24). 그런데, 이 예언과 말씀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거듭 확증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됨으로써, 예수님의 대속으로 은혜받아 거듭 난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그에게 붙어 영생의 삶을 천국에서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시기만 하였다면, 우리는 속죄는 받았을 지는 모르지만,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영생을 누림은 보장받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그에 대한 예언과 자신의 말씀대로, 씨를 보게 되고 영원을 살고,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끌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있을 우리 몸의 변화를 보증하는, 놀랍고 뜻깊은 소식인 것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 3:21)
우리 모두 하늘의 시민권을 받은 신령한 자임을 알고, 그 날에 예수님의 영광의 부활의 형체와 같이 변화받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육의 몸”이 있는 것처럼 “영의 몸”도 확실히 있을 것임을 확신하시길 생명의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이 왜 가장 뜻깊은 소식이 되냐 하면, 이 부활의 진리가 우리 신앙인들의 담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본문 15:55-57).
부활신앙을 가진 신앙인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의 용기는 만용이나, 또는 자학으로 말미암는 객기와는 다릅니다. ‘만용’은 상대를 과소평가함으로 자만이란 덫에 빠지는 거짓 용기입니다 (가령 그깟 놈 한주먹도 안돼! 식은죽 먹기야). ‘자학’은 자신의 파괴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자기포기입니다 (죽기밖에 더 하겠어? 죽으면 죽지 뭐!).

“신앙의 용기”는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그리고 두렵지만), 부활하신 강하고 능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롬 8:34-37). 나아가 혹 육체의 죽음이 있더라도, 후에 죽음을 이기고 영생하는 부활이 있을 것을 믿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앙인은 위기를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기를 사모하고 기뻐하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순교가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기회가 됨을 알기에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기”란 단어는 “위험한 고비”란 뜻으로, 위험과 기회란 두 단어가 합친 낱말입니다. 危 (위태할 위)와 機 (베틀 기), 즉 위험이 있을 때 또한 기회 (機會)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위기를 뜻하는 히브리어가 있습니다. 이는 “mash-ber” (매쉬버) 란 단어인데, 출산용 의자, 즉 고대에 산모가 출산시 앉았던 의자를 가리킵니다. 산모와 아이의 생명이 위험한 고비에서, 생명을 탄생시키는 창조의 순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위기의 바로 그 때가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이 부활의 진리로 인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담대하시길 다시 사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교 박해가 한창이던 AD 190년에서 236년까지 살았던 히폴리투스 (St. Hippolytus) 감독은 이렇게 부활절과 성도를 정의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성도의 부활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개의 부활절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사이에 살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믿음의 능력을 갖고 우리의 부활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절과 우리 각 개인의 부활절, 이 두 개의 부활절 사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이제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둘째 본문 마지막 58절은 이에 대해 확실하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견고하십시오. 흔들리지 마십시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십시오.
왜요? 우리들의 수고는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수고는 영생과 면류관으로 보상되어집니다! 이 현세에서도 평안과 기쁨, 생명과 축복으로 함께 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다시 사는, 부활의 진리를 확실히 믿으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아가 매사에 담대하게, 죽음 앞에서조차 두려워 하지 않고 돌진해 나가는 우리 모두 되시길, 그리하여 승리의 삶을 사시길, 부활과 생명의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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