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본문: 막 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람에게 계시함으로 시작됐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세전에 죄로 인해 자격이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려 계획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이 구원의 계획을 다 이루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구원 얻으려 시도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성자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시어 십자가에 우리 대신 못박혀 죽게 하시는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 분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이 먼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요 1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그런데 이 계시하신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자동이 아니라 수동입니다. 각 개인마다 반응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14절 본문대로, “...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할 때 그 당시 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구원받았나요?
오늘날 우리 각 개인이 예수님의 복음을 들을 때, 그 은혜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되겠습니까?
1.먼저 회개하십시오
본문 15절 전반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
회개는 기독교신앙의 현관과 같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려면 우리들은 반드시 회개의 관문을 먼저 통과해야 합니다. 회개없는 믿음은 부자 청년의 경우처럼 변화없는 지적 동의에 불과합니다 (막10:17-22).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한 평생 멋지게 살다가 죽었고, 그 집 대문 앞에서 한 평생 거지로 살았던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왜 지옥에 갔고 나사로가 왜 천국에 갔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단적으로 부자에게는 ‘회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줍니다.
(눅 16: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여 천국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우리는 먼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한 것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혹 돈을 더 사랑했다면, 명예를 더 사랑했다면, 건강을 더 사랑했다면, 혹은 가족을 더 사랑했다면, 남과의 관계를 더 사랑했다면, 골프를 더 사랑했다면, 드라마를 더 사랑했다면, 학위를 더 사랑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보다 위에 있는 것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 개인들이 숨기거나 드러내기 싫어하는 죄를 회개하기 원하십니다. 지체하면 할수록 우리의 신앙 양심은 무디어지고 영감이 없어지며 우리의 신앙생활은 형식으로 흐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내려 놓아야 합니다. 주님은 바로 나 때문에 십자가 지셨습니다. 머리의 가시관의 고통이, 채찍으로 찢기신 살과 창으로 인해 흘리신 피가 모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회개는 오던 길에서 돌아서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재창조의 시작입니다. 회개를 통해 우리들은 새생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된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죄를 자각하고, 자신의 추악함에 울부짖으며, 결단하여 돌이키는 회개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둘째로 구원을 받고 새생명 가운데 사실려면, 복음을 믿으십시오
본문 15절 후반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회개한 후 우리들은 반드시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회심을 유발하지 못합니다. 믿음없는 회개는 가롯 유다처럼 순간적인 양심의 가책에 불과할 뿐입니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에 대한 자책이며 자기 연민에 지나지 않습니다.
괴로울 때, 술과 담배로 위로하려 하면, 후회와 회개가 술에 떠내려가고 담배연기와 같이 순간에 사라집니다. 구원을 이루려면 회개와 함께 반드시 복음에 대한 믿음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앞서의 회개는 소극적으로 죄에서 돌이키는 결단이고, 믿음은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결단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비로소 “의롭다 함”(칭의) 의 경험으로 인도됩니다.
교회생활에서의 공적이 믿음인양 착각해서도 아니됩니다. 혹자는 세례를 받았기에 구원에 이른다고 착각합니다. 혹자는 교회에서 부여하는 직분 때문에 구원받는다고 오해합니다. 혹자는 교회에서 행하는 봉사 때문에 의에 이른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혹자는 어떤 기적을 체험함이 마치 구원에 이르는 양 여깁니다. 어떤 교인은 사도신경과 같은 신조를 암송하고 믿기에 구원받는 것으로 잘못 해석합니다.
우리는 죄인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에 대한 전인적 체험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대속으로 인해 우리의 죄가 모두 용서받았음을 지식적으로 믿으십시오. 감정적 믿음을 가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그 사랑의 희생에 대해 감격하며 고마워 하십시오. 의지적 믿음을 가지십시오. 구원에는 자신의 노력이나 의를 의지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만을 찾으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인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음을 전인적으로 믿으시어 구원받고 영생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는 본문 말씀처럼 “정말로 때가 찼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죄악들을 절감하십시다. 회개하십시다. 복된 소식을 믿읍시다. 그리하여 구원받고 하늘의 생명과 축복을 누리시길 예수님 구원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