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2:1-33 말씀 묵상(10/14/2018)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열왕기상 12:33).
"On the fifteenth day of the eighth month, a month of his own choosing, he offered sacrifices on the altar he had built at Bethel. So he instituted the festival for the Israelites and went up to the altar to make offerings."(1 Kings 12:33).
1) 왕이 된 르호보암(1-5)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로호보암은 다윗 때부터 있어 왔던 남북간의 갈등이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유서 깊은 언약의 중심지인 세겜에서 왕의 즉위식을 갖고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막 돌아온 여로보암을 앞장세워 세금 감면을 르호보암 왕에게 청원하였습니다. 그러자 르호보암은 3일 간의 생각할 여유를 요구하였습니다.
2) 르호보암의 모사들(6-15)
왕은 두 그룹의 모사들에게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첫째는 솔로몬 때에 왕의 관리들로 봉직했던 노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세금을 경감시키라고 조언하였습니다. 두번째 그룹은 자기 또래의 젊은 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노인들과 정반대로 백성들에게 더 무거운 멍에를 지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이들의 조언에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6-11).
약속대로 백성들은 3일 만에 르호보암 앞에 나아왔습니다. 르호보암은 선한 정치를 원하는 민심을 파악지 못하고 포악한 말로 소년들의 조언대로 내 부친은 채찍으로 다스렸으나 나는 전길로 다스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2-15).
3) 왕국의 분열
백성들은 분노하여 우리가 다윗되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며 12지파 연합에서 탈퇴하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사태를 수습하고자 역군의 감독 아도니람을 북이스라엘에 파송했으나, 아도니람은 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르호보암은 남쪽의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고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16-19).
백성들은 즉시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지만 유다 지파는 다윗의 왕가에서 난 르호 보암을 좇았습니다(20).
왕국의 분열을 르호보암은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고자 18만 명의 용사를 이끌고 싸우러 나가고자 할 때 선지자 스마야가 형제와의 싸움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설득하여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왕국 분열의 원인이 솔로몬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상기시켰습니다(21-24).
4)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립과 여로보암의 우상숭배(25-33)
여로보암은 세겜을 북왕국의 수도로 삼고 요새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요단 강 동편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부느엘도 건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로보암은 왕국에 필요한 적절한 도읍지와 군사적인 요충지도 마련하게 되어 어느 정도 왕국의 기틀을 잡아갔습니다(25).
인간적인 고뇌에 깊이 빠진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언약도 잊어버린 채 백성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다 보면 결국은 자신을 배신하리라고 생각하고 벧엘과 단에 금 송아지를 세워 백성들로 하여금 경배케 하였습니다(26-30). 그리고 레위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로 제사장을 삼았고(31), 초막절 절기를 7월 15 일에서 8월 15일로 임의적으로 변경하고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는 우상숭배를 저질렸습니다(32-33).
주께서 주신 주일! 자신의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을 망각하여 우상숭배의 죄를 범치 않고 오직 주님만을 섬기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