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 마21:28-31
제목 : 셋째 아들이 되세요
김경열 목사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냐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21:31)
Whether of them twain did the will of his father?
They say unto him, The first. Jesus saith unto them,
Verily I say unto you. That the publicans and the harlots
go into the kingdom of God before you.(Matthew21:31)]
북한 사람이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으로 왔는데
그는 80세 할아버지였습니다.
선교사가 삐쩍 마른 그 할아버지에게
"왜 나오시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찬송이나 마음놓고 한번 불러보고 싶어서 나왔다."
고 하더랍니다.
선교사는 "도와 드리겠으니
남한으로 갈 준비를 서두르세요." 했더니
할아버지는 "그래도 결정하기 전,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지요."
그리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신 한참 후에 돌아오셨는데
눈가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답니다.
“하나님! 선교사님이 돕겠다고 하는데
따라 갈까요?” 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북조선에 남겨 두는 줄 아느냐? 해야 할 일이 있다."
는 음성과 같은 감동을 주시더랍니다.
이 할아버지는 흐느껴 울면서
"선교사님,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굶는 것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남조선으로 가서 찬송이라도 목이 터져라
부르다가 하나님 앞에 갈려고 했는데,
저 북한 땅에 남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하시면서 흐느껴 우시더랍니다.
그때 공안이 오는 것 같아 선교사는 급한 말로
할아버지 빨리 같이 가자고 하니까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나도 자유가 무엇인지 잘 압니다. 나도 예배당
종도 쳐봤고, 주일학교도 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조선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시니
자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지요."
할아버지는 강한 어조로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요."
하시면서 흐느껴 울더랍니다.
선교사님도 울면서
"예! 천국에서 꼭 만나요." 인사를 나누고
이 할아버지는 다시 이북 땅으로 들어 가셨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자신의 안일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처럼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본문 말씀은 순종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놓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처음에는 순종을 했는데
그러나 나중에 불순종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불순종하며 거부했으나
후에 뉘우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아비의 뜻을 따른 자는 둘째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순종은 철저히 내 생각과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순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순종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왕상 17장에 사르밧 과부가
엘리사의 말대로 하였더니(17:15-16)
3년 6개월의 기근 속에서도 밀가루 독이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눈에 진흙을 바르고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할 때
그대로 순종하였더니 눈이 떠졌습니다.
나아만은 아람나라의 장군이었으나 한센병자가 되었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자기 교만도 체면도 다 내려놓고
요단강에 7번 들어갔다 나왔더니
한센병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요단강 물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치료의 능력이었습니다.
순종은 어리석은 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순종은 내 생각에 맞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결과가 순종이고
순종의 결과가 축복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큰 아들은 순종이 불순종으로 끝나고
둘째 아들은 불순종에서 뉘우치고
순종으로 돌아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아들의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셋째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도 순종이 되고, 나중도 순종이 되는 아들입니다.
오늘 이 두 아들을 통해서 우리의 역할을 찾고자 합니다.
1. 첫째 아들의 모습을 보세요.(28-29절)
1) YES에서 NO로 돌아선 아들입니다.
순종을 약속하고 후에 불순종했습니다.
아버지가 포도원에 일하라고 할 때
처음에는 순종했으나 나중에는 불순종한 아들입니다.
말만 해놓고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중심의 사람입니다.
앞에서는 ‘예’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그렇지 않고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앞에서는 순종을 표현하고 충성을 맹세하고도
돌아서서 배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공동체나 조직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동업하며 믿었던 친구가 이런 경우도 있고
정치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충성을 맹세했던 자들이 정권이 바뀌면
배신하고 돌아서서 비수를 꽂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성경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사울 같은 사람입니다.
사울이 아말렉과 전쟁하기 전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내가 아말렉을 네 손에 붙이리니 전쟁을 이기고 나면
아말렉에서 잡아온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조리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악의 뿌리를 남겨놓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과 언약대로 전쟁을 이기고 났을 때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딴짓을 했습니다.
사울은 왕궁 뒤뜰에다 아말렉에서 잡아온
양과 짐승을 감추어 두었다가
하나님의 음성이 사무엘에게 들려 왔습니다.
“사울의 왕궁 뒤뜰에 짐승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어찜이냐?”
하나님은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한다고 하실 때
사무엘은 근심하며 밤을 새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삼상15:11)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어찌하여
왕궁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립니까? 하니
사울은 선지자여, 이것은 나를 위해 남겨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남겨두었다고(삼상15:15)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왕이여 망령된 일을 행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이 번제보다 낫고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을 알지 못하였나이까?(삼상15:22)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렸나이다."(삼상15:23)
이때부터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사울이 버림받는 불행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합니다.
앞에서 충성을 다짐하면서 뒤에서 딴짓을 하는
사울의 모습은 앞에서 순종하고
뒤에서 불순종하는 맏아들의 모습입니다.
2. 둘째 아들의 모습을 보세요.(30절)
1) NO에서 YES로 돌아온 자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처음에는 거부하며 불순종을 했으나
그러나 후에 뉘우치고 순종하면서 돌아온 아들입니다.
이 둘째 아들은 즉흥적이고
환경과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자의 유형입니다.
일을 저질러 놓고 나중에 후회하며 돌아온 사람입니다.
심리적 굴곡이 심한 사람이고
아버지 집을 떠났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후회하며
돌아온 탕자와 같은 모습입니다.
성경에 변화받기 전 베드로는
3년간 제자로 따르던 주님을 빌라도 법정에서
한순간 배신하고 돌아섰을 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을 하면서 뉘우치며 돌아왔습니다.
그 후 오순절 성령을 체험한 후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제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불순종의 삶에서 순종의 삶으로 변하는
터닝포인트였습니다.
교회사 가운데 나오는 어거스틴은
말할 수 없이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끊임없이 아들을 위해
기도했으나 그는 점점 더 타락해 갔습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는
왜 재수없이 집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냐며 비웃었습니다.
그는 매달리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이탈리아로 떠나버렸습니다.
몇 년을 기다려도 돌아오질 않습니다.
모니카는 목사님께
우리 아들을 하나님이 버리셨나 봐요,
기도하며 울부짖습니다.
그럴 때마다 포기하지 말고 더 기도하세요.
그 세월이 2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라 성경을 폈습니다.
롬 13:13-14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지금까지 자신이 어둠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20년 만에 돌아와서 한 시대의 영성을 깨우친
성자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둘째 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둘째 아들처럼 내 감정과 기분을 따라
아버지의 말씀에 NO 했을지라도
다시 뉘우치고 YES로 돌아오는 둘째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두 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YES로 시작했다가 NO로 끝나는 첫째 아들과,
NO로 시작했다가 YES로 돌아온 둘째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러면 우리는 어떤 아들이 되어야 할까요?
3. 셋째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1) YES로 시작해서 YES로 결산하는 아들입니다.
처음부터 순종을 하고 나중에도 순종하는 아들입니다.
이것을 셋째 아들의 모습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처음도 순종이고
나중에도 순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셋째 아들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아들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들입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고향 갈데아 우르를 떠나라 하니 떠났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버리라 하니 브엘세바 광야에 버리고
아들 이삭을 드리라고 할 때 지체없이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3일 길을 가면서도 처음 먹은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아들이란 처음도, 나중도 순종의 삶을 말합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서도 하나님과 함께 했고
감옥에 있을 때에도,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도
하나님과 함께했습니다.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성공을 했을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처음과 나중이 변함이 없으니
이것이 셋째 아들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특별히 왕의 사랑을 받을찌라도 왕이 내린
산해진미를 거부했고 사자 굴속에 넣을찌라도
하루에 세 번씩 드리던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는 것을 거부하고
불속에 던져졌지만 끝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니엘을 지켜주셨고,
보호하셨고 높여 주셨습니다.
사자의 입을 봉하셨고 불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책임지셨습니다.
이들은 모두 YES로 시작해서 YES로 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셋째 아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순종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내 생각에 맞지 않을찌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앞에서 예하고
뒤에서 딴짓하는 큰 아들의 모습은 아닌가요?
또는 둘째 아들처럼 불순종하며
아버지의 속을 썩이다가 뒤늦게 깨닫고 돌아온
탕자의 모습은 아닌가요?
우리는 처음도 '예'가 되고 나중도 '예'가 되는
셋째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꼭 필요한
축복의 통로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드림
(917-963-9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