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참된 신앙은 변화입니다

김경열 목사 0 2018.07.23 07:31

묵상말씀 : 마 17:1-8

제목 : 참된 신앙은 변화입니다

                                      김경열 목사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2)

 And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and his face did shine as the sun, and 

 his raiment was white as the light.(Matthew 17:2)]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된 

최장기 복역 사형수 김진태 씨가 특별사면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새 삶의 기회를 얻어 

무기수로 감형되었습니다.

 

김진태 씨는 1992년 10월 술을 마시고

걸핏하면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공기총으로 살해하고 시체를 한강에 유기했습니다. 

그래서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1993년 사형 언도를 받고 속절없는 시간을 보내며 

사형 집행의 날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2남 1녀 중 장남인 김진태는 

똑똑하고 착한 아들이었답니다. 

초등학교 때는 반에서 1, 2등을 하던 모범생이었는데 

아버지의 잦은 가정폭력으로 결국 중학교를 중퇴하고 

소년원을 들락거리면서 삐뚤어져 갔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도 마음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살던 어느 날, 

구치소에서 교도소 선교하시는 

목사님의 전도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옥중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완전히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구치소 안에서 수감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옥중 전도자’로 변화되었고, 

수감자들 600여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형 집행 후 안구와 신장을 기증하기로 서약까지 하였고

10년 동안 어머니가 넣어준 영치금 100만원을 모아 

미혼모와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10년 만에 감형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2003년)

 

지금도 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같은 처지에 있는 수감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예수를 영접시키는 전도자로 살고 있다고

서울신문에 기사가 났습니다. 

 

살인자를 전도자로 바꿀 수 있었던 이런 변화의 힘은 

감옥이나 윤리, 도덕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 복음이 가져다 준 변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변화입니다.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과 결심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토록 다짐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옛 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믿음대로 살아 보겠다고 얼마나 많은 결심을 하는데

한주간이 지나고 보면 환경과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죄와 나를 이기지 못하고 떠내려가는 모습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그토록 다짐을 했건만 

빌라도의 법정과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모습을 보고

한결같이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이렇게 연약했던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을 통해 변화받고 나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바로 변화입니다.

 

본문 말씀은 주님이 보여주신 변화산에서의 모습입니다. 

 

세 명의 제자들이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별안간 주님의 얼굴에 빛이 나고 옷이 희어지는 모습을 보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5절)는 소리였습니다. 

 

이때부터 산 아래서 근심 걱정하던 

모든 일들이 사라지고 제자들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고 오직 예수님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변화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세속적인 것들이 

우리 신앙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주님만 보여야 할 텐데 주님은 보이지 않고

환경만 보이고 인간의 냄새나는 모습만 보입니다. 

주님의 변화된 모습을 바라보는 

신령한 눈을 떠야 합니다. 

 

사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다시 보는 눈이 열렸듯이 

우리도 육신의 소욕만 보는 육안이

이젠 영안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경험한 변화의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제자들은 2가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2절)

 

1) 하나는 예수님의 내적인 변화를 보았습니다.

 

얼굴이 해같이 변화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해같이 얼굴이 변화되었다는 말씀은

내적인 변화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얼굴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도록 지었습니다. 

얼굴에서 빛나고 있는 광채는 

이미 마음에서 기쁨과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얼굴도 환해집니다. 

 

반면에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얼굴도 어둡게 됩니다. 

가인이 제사를 실패했을 때 하나님이 

네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냐?고 지적을 하셨는데 

마음의 분노가 얼굴에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올 때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백성들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전하다 붙잡혀

이를 갈며 돌을 던지는 사람들 속에서 있었는데

어떻게 천사의 얼굴처럼 빛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편 보좌에 서신 주님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용서가 되었고 얼굴이 천사 같았다고 했습니다. 

 

얼굴에서 빛은 그 뿌리가 마음에 있습니다. 

매일같이 다듬고 있는 여러분의 얼굴은 어떠합니까? 

밝고 환한 얼굴인가요? 

아니면 어둡고 소망 없는 얼굴인가요?

얼굴에서 빛나는 모습이 변화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이 주님의 얼굴처럼 빛나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외적인 변화를 보았습니다.

 

‘옷이 희어졌다’는 말은 

외적 변화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신앙은 내적인 변화로 멈추지 않고

외적인 변화가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주님도 열매를 보면 나무의 질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따며

가시나무에 어떻게 포도열매가 달리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소금처럼 맛을 내고 빛처럼 어둠을 몰아내는 힘입니다. 

이런 변화가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거룩한 은혜를 퍼뜨립니다. 

세상을 밝히는 공동체란 말은 먼저 우리가 변화되어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옷이 희어져야 합니다.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말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보여주신 변화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변화의 모델입니다.

 

2. 변화받은 제자들은 주님의 소리만 들렸습니다.(5절)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들려온 소리가 있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중에 들어야 할 소리가 있고, 듣지 말아야 할 소리도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소리가 있고 죽이는 소리도 있고

희망을 주는 소리가 있고 절망에 빠트리는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5절에 

“너희는 주님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1) 주님의 소리를 들을 때 모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7절)

 

두려움은 혼자라고 생각할 때 

불안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 41: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변화산에서 들려온 주님의 음성은 

두려워 말라는 음성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곳에는 평안이 있고

기도를 해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응답이 있고

봉사를 해도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음성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니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두려운 일도 많고 깜작 놀랄 일도 많습니다.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이런 세상에서 두려움이 완전 사라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에덴동산과 같습니다.

 

2) 에덴동산에는 3가지 소리가 들렸는데

지금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① 에덴동산에는 마귀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유혹하는 소리요, 하와를 넘어뜨리는 소리였습니다. 

마귀가 유혹하는 소리를 들으면 영혼이 죽습니다.  

 

② 믿음을 떠난 하와의 소리도 있습니다.

하와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 믿음을 잃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아담이 넘어졌습니다. 

 

③ 에덴에는 하나님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잘못할 때도 들려왔습니다.

회개하라고 들려옵니다. 하와가 숨었을 때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충성할 때도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은혜와 복 주시려고 들려왔습니다. 

기도할 때도 들려왔습니다. 

응답 주시려고 들려오는 음성입니다. 

 

에덴에서 하나님의 소리만 들어야 하는데

아담과 하와는 듣지 말아야 할 사탄마귀의 소리를 듣고

믿음을 떠난 사람의 소리를 듣다가 

에덴의 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앙의 주파수를 오직 주님의 소리에만 맞춰야 합니다.

 

3. 변화 받은 제자들은 예수만 보였습니다.(8절)

 

1) 오직 예수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요,

변화를 경험한 자의 삶입니다. 

산 아래서 네가 높으냐 내가 높으냐? 

시기와 다툼을 하던 제자들이 아닙니까? 

 

이런 제자들이 은혜를 경험하고 나니

육적인 생각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이들은 추구하는 목적이 달랐고

삶의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고 길이 있고

안식과 능력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수만 보여야 하는데 사람이 먼저 보입니다. 

주님의 향기가 나야 할 곳에 인간의 냄새를 피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진짜 싸워야 할 영적 싸움은 싸우지 않고

싸우지 말아야 할 성도들과 싸우면서 

영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교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받은 자의 모습은 오직 주님만 보입니다.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만 사모하며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문제보다 크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2) 변화를 경험한 제자들은 주님만 사랑했습니다.

 

사랑의 힘보다 더 큰 힘은 없습니다. 

사랑하면 희생하면서도 즐겁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7년을 몇 일같이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집을 빼앗기고 직장을 잃으면서도 

주님 사랑 변치않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해 보세요.

 

순교의 길을 가면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았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지하 교회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약 30만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새로 부임하신 담임목사님께서 정치인 지도자이며 

명성이 높은 장로님 댁에 심방을 했다고 합니다.  

 

과중한 업무로 늦게 돌아온 장로는 부인 권사에게 

목사님이 심방 중에 무엇이라 말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이 집에 그리스도가 사십니까?"

하고 물었다고 했습니다.

2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시는데 

무엇이라 대답할지 몰라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하니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남편은 ‘왜 당신은 우리들은 존경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런 것은 묻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왜 말하지 않았소?’ 그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더 화가 나서 ‘왜 당신은 우리가 

교회에 출석을 잘한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것도 묻지 않았어요. 

 

부인 권사는 목이 메어 울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은 오직 "이 집에 그리스도가 사십니까?

이 집에 진정 그리스도가 살고 계시는가?"만

물었습니다. 

 

부부는 사회적인 명성과 신앙의 연조를 자랑하고 싶었던 

변화받지 못한 겉모습만 신자였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그날 밤

밤새도록 회개를 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질문은 

이 시간 여러분과 저를 향한 질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당신의 가정에 사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정말 나의 신앙과 삶과 

인격 안에 살고 계십니까?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요,

변화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은혜는 

참된 변화에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의 변화는 소금과 빛이 되어서

맛을 내고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춰야 합니다. 

 

또 하나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은혜를 경험한 후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증거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했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왜 십자가를 지셨나요? 

병자를 고쳐주시고

문제들을 해결해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전하세요. 

예수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고백과 함께 

주님의 증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제공

                            (917-963-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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