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달리기

조진모 목사 0 2017.07.24 23:31

달리기
저는 어려서부터 비교적 잘 달리는 편에 속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체력장 날에 잰 100미터 달리기 공식 기록이 12.5초였습니다. 평생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있었지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나 교회에서 체육대회에 나가면 반드시 등수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상을 받은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단과대 대항 200미터 달리기에서 동메달을 받았을 때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또래들에 비해 머리 하나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습니다. 그렇지만 긴 다리를 사용하는 기린처럼 껑충껑충 뛴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빠른 속도로 양발을 전환하는 주법을 사용했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이를 악물고 열심히 뛰는 매우 평범한 방법이지요.

달리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체육시간에 학교에서 장거리를 뛰게 되었습니다. 체육 선생님께서 교문 밖으로 나가 큰 길을 따라 멀리 있는 반환점을 돌아오도록 시켰습니다. 밖에 나가 뛰어 노는 것은 꼬마시절부터 해온 일이고, 초등학교 시절 씨름부와 농구부에서 훈련을 받을 때에 운동장 몇 바퀴를 돌아봤지만, 그런 식의 장거리를 달려본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발힘이 남아 있는 듯 했지만, 달릴수록 숨을 몰아쉬다가 결국 숨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습니다. 결국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여러분도 한번쯤은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야, 이렇다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달렸었는데, 완전히 스타일 구기는 날이었습니다.

달리기 흉내
같은 중학교에 양봉기라는 친구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다재다능한 육상선수였습니다. 단거리와 장거리는 물론 투포환과 멀리 뛰기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전국소년체육대회에 나가 메달을 몇 개 받아올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심장이 터진 경험을 설명한 후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한참 듣더니 방과 후에 자기를 따라 훈련을 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다음 날 운동화와 간편한 옷을 가지고 그 친구를 따라 갔습니다. 그 친구가 간 곳은 남대문 시장 바로 앞에 자리한 도쿄 호텔 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호텔 근처 공터에서 몸을 한참 풀었습니다. 제게 몇 마디 조언을 주긴 하는데, 완전 초보였던 저는 그냥 모양을 따라 흉내만 냈었습니다.

그 친구의 훈련 코스는 도쿄 호텔을 출발해서 남산 도서관 앞과 이태원을 지나 장충동 국립극장까지 갔다가 그 길을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거주하신 분들이라면 이 코스를 대충 이해하실 것입니다. 서울역 근처에 살았던 이 친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이 코스를 달렸던 것입니다.

시계를 잠시 들여다 본 후 출발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달리기 훈련을 선수였고, 저는 장거리 한번 뛰었다가 초죽음이 되었던 초보생입니다. 곧 그 친구는 매정하게도 제 앞을 치고 나갔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마치 기계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힘 있게 뛰어가는 그 친구를 바라보면서 더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달리기 훈련을 시켜준다며 이렇다 하게 가르쳐주는 것도 없고, “진모야, 잘 따라와!”라는 한마디 남기고 떠난 그 친구가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혼자 뛰는 것이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달리기 훈련
저는 그 친구가 돌아올 때 까지 주위에서 놀았습니다. 얼마 뒤에 돌아온 친구가 저를 향해 비장한 모습으로 말을 건넸습니다. “야, 누가 널 대신해서 뛰는 법은 없어! 그냥 뛰어!” 약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면서 던지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실 이런 소리를 들어도 변명할 여지가 없었지요.

그 후로 저는 비장한 각오로 달리기 훈련에 임했습니다. 출발선에서 함께 달리기 시작한 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친구와 저의 간격을 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벌여졌습니다. 한참 헉헉 거리면서 뛰다보면, 반환점을 돌아오는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제 반환점이 되었지요.

그 친구의 반환점, 장충동 국립극장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제 반환점은 매일 바뀌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 반환점이 서서히 출발선에서 멀어져갔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가 빨리 달리거나 제가 천천히 달리는 날에는 반환점이 이전에 비해 가까워졌지만, 조금씩 향상되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반환점까지 뛰어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제 반환점이 출발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일종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홀로 달리기
저는 이 일로 인해 단거리와 장거리 달리기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순발력과 지구력의 대조이죠. 남달리 지구력에 약했던 저로서는 좋은 친구를 만나 장거리를 잘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터질 것 같던 심장, 급하게 몰아쉬던 호흡, 후들거리던 양 다리, 그리고 혼미하던 정신… 훈련을 거듭할수록 좋아진 것입니다.

가끔 그 친구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그 친구가 생각날 때 마다, “야, 누가 널 대신해서 뛰는 법은 없어! 그냥 뛰어!”라고 말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충격적이었죠. 그러나 제게는 평생 약이 되는 충고였지요. 그 때 어린 나이였지만 남산을 왼쪽에 끼고 장거리를 달리면서 매번 생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달리기는 홀로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구력은 자기와의 싸움이란 도구를 통해서 키워져가는 것이지요.

바울의 최후 신앙 고백을 기억합니다.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신앙의 길에 서 있기 위하여 지구력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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