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가족 여행을 떠났다.
미국 와서 우리 식구들이 줄기차게 여행을 다녔다.
오죽했으면 미국 동부쪽은 더 이상 갈 때가 없지 않은가?
Tennessee 주 동쪽의 남북의 유명한 곳은 거의 다 가 본 것 같다.
남쪽의 플로리다부터 북쪽의 메인 주까지 두번을 왕복했다.
Niagara Falls는 다섯번이나 가서 아이들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간다면 물을 보러 거기 가기 싫다고 한다.
돈이 없고 가난하고 낯선 미국 땅이었지만 GPS도 하나 없이 지도만을 가지고 미국의 북동쪽의 유명한 곳은 다 찾아 다녔다.
아이들은 그 추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차에 밥통을 싣고 쿠폰을 이용하여 싼 모텔을 찾아 다니며 심지어는 캠핑을 하면서 줄기차게 다녔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그리고 운전이 취미인 나는 넓은 미국이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국에서도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나는 예린이를 가슴에 안고 기차 여행을 즐겼고 예찬이가 돌이 지나자마자 아이들의 변기통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전국을 다 누비며 다녔다.
미국 와서도 그 버릇을 버릴 수가 없었다.
금요일 저녁 9시에 올랜드 디즈니 월드에서 출발하여 중간에서 1시간 눈을 부치며 혼자 운전하면서 토요일 저녁 6시에 필라에 도착했다,
그래도 힘든줄 몰랐다.
그러던 우리 가족이 가게를 시작하면서 도저히 시간을 내지 못했다.
뉴욕과 워싱톤을 벗어 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작년에 가게를 시작한 지 9년만에 가게 문을 닫고 서부를 여행하고 나서 이번에 Memorial Day를 계기로 또 문을 닫고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Mexico의 Cancun을 생각했는데 아내가 멕시코는 그리 마음에 내키지 아니하여 Canada Quebec로 방향을 틀었다.
더구나 7월이면 아들이 직장을 다니기 위해 워싱톤으로 이사를 가고 딸은 Law School을 가면 온 식구가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식구가 같이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기회를 만들었다.
오늘 주일 예배를 마치고 Quebec을 향해 떠났다.
3주 전에 캐나다 경계인 미국 뉴욕 주 북부 Plattsburgh에 주일 저녁 호텔을 예약해 놓고 어제 최종적으로 퀘벡 시티에 월요일에 호텔을 예약해 놓았다.
싼 호텔을 찾아 다니며15불짜리 모텔에도 들었었는데 그 10배인 150불이 넘는다.
원래 계획은 Montreal에 둘러 Mont-Tremblant로 갈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에 Quebec City로 가기로 정했다.
퀘벡에 대하여 더 알기 위해서 오래 전에 한국의 KBS에서 방영한 '걸어서 세게 여행' 퀘벡편을 다시 시청하고 인터넷으로 몬트리올과 퀘벡 시티 볼 곳을 정했다.
그리고 토론토에 사는 친구 정림이와 전 캐나다 관광청 한국 지사장으로 있었고 현재 제주 관광 사장으로 있는 동현이에게 퀘벡에 대한 자문을 구하였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오후 2시에 출발했다.
New Jersey Turnpike를 거쳐 New York주의 87번 도로를 따라 North로 달렸다.
Speed Limit 65마일 도로를 75-85마일로 추월선에서 달리다가 주행선으로 들어 섰다.
그런데 주행선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뒤를 계속 쫓아 오는 차를 보니 New York State Police였다.
분명히 나를 속도 위반으로 잡을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그냥 내 차를 지나쳐 간다.
내 차가 뉴욕주가 아닌 타주 차이기 때문에 분명한 타켓이었을텐데 잡지 않았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속도 위반 티켓을 받았으면 여행 기분을 잡쳤을텐데.
조심하라는 하나님의 경고 같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차들도 80마일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New York주의 Capital인 Albany를 1시간 정도 지난 75마일 정도로 주행선에서 달리고 있는데 추월선에서 또 경찰차가 마치 어떤 차를 추적하듯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아내가 "어떤 차를 쫓아 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채 몇 분이 되지 않아서 그 경찰차가 어떤 차를 잡아서 티켓을 띠고 있었다.
내 앞에 내 차를 추월해서 빨리 달린 차가 없었다.
아내가 분명히 하늘에서 드론을 띠어 속도를 탐지하고 경찰차에게 연락한 모양이라고 한다.
공중에서 헬리콥타가 속도 위반의 차를 잡아 낸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Albany를 지나 Lake George의 표지말을 보니 7년 전, Memorial Day에 우리 교인들과 함께 일박 이일로 이곳에 와서 호수에서 유람선을 탔던 생각이 난다.
어제 마침 유람선에서 용호네 식구들과 같이 돈을 내고 찍은 예쁜 사진을 발견하고 셀폰으로 찍어 용호 엄마에게 보냈다.
Memorial Day만 되면 교인들과 함께 놀러 다녔다.
이민 초장기는 남집사, 문집사를 쫓아 그냥 다녔지만 우리가 장사를 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에는 모든 비용을 거의 우리가 다 대면서 같이 다녔다.
힘든 이민 생활을 하면서 경제적, 시간적, 마음의 여유가 없는 교인들을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천섬에 같이 갔던 현진네는 결국 이민 생활을 비극적으로 마무리 하고 남편은 죽고 아내는 딸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했다.
용호네는 남편은 한국으로 추방되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살고 있지만 교회를 떠난 지 1년이 넘었다.
박집사네도, 규현네도 모두 집을 사고 Delaware주로 이사 갔다.
그 때 같이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재미있게 같이 놀러 다니던 교인들이 이제는 하나도 곁에 있지 않다.
Memorial Day와 Labor Day 그리고 여름철과 연말만 되면 그 때의 일들이 생각난다.
87번 도로에서 북쪽으로 가는 차들을 많지 않고 남쪽으로 오는 차들이 많았다.
캐나다 국경에 가까이 오니 차들이 아주 드물게 있고 북쪽으로 가는 퀘벡 번호판을단 차들이 더 많이 보인다.
미국에서 휴가를 즐기고 캐나다로 돌아 가는 모양이다.
아내는 자기가 이번에 가면 캐나다를 5번째 가는 것이라고 했다.
Toronto, Nova Scotia, Mont-Tremblant, Rocky.
나도 세번째다.
가도 가도 끊없고 잘 정비된 도로에 산들과 나무들만 보인다.
미국은 넓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미국을 여행할 때마다 미국의 고속도로 망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놀란다.
New York Plattsburgh까지 390마일, 6시간에 걸쳐 달려 저녁 8시에 Comfort Inn에 도착했다.
저녁은 집에서 가져 온 밥과 반찬으로 호텔에서 맛있게 먹었다.
오늘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피곤해서 11전에 잠이 들었는데 예린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서 3시 30분에 깨어나서 잠을잘 수가 없었다.
운전을 하려면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데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일어나서 인터넷을 보면서 식구들이 잠을 깰 때까지 기다렸다.
6시 30분이 되자 식구들을 깨어서 7시부터 시작되는 breakfast를 먹었다.
그리고 8시에 호텔을 나와 Canada, Montreal을 향해 출발했다.
Plattsburgh에서 87 North 따라 20분 정도 가니 캐나다 국경이 나왔다.
우리 네식구의 Passport Card를 보여 주니 "어디에 사냐?"고 물어 보고 채 일분도 안 되서 통과했다.
너무 간단했다.
캐나다를 다니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미국과 너무 흡사한데 선입감 때문인지 몰라도 웬지 초라해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이고 부유하다는 자만심과 자부심 때문이지 몰라도 똑같은 도로고 길거리인데도 뭔지 부족해 보인다.
캐나다에서 일차 우리의 행선지는 Montreal Basilica Notre Dame였다.
그런데 어제부터 TV를 통해 이곳의 날씨만 보고 있었는데 점심 때쯤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였다.
그래서 노트르담 성당은 실내이기 때문에 비가 와도 보는데는 지장 없을 것 같아서 먼저 몬트리올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Mount Royal Park으로 행했다.
GPS를 보고 간신히 찾아 갔는데 TV에서 보던 넓은 광장이 아니었다.
TV에서는 몬트리올 시내를 한 눈에 본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 헤매도 그런 장소는 없었다.
몽루아알 공원에서 몬트리올 시내 전체를 볼 수 없어서 실망을 했지만 나무 사이에 가린 부분을 뚫고 일부의 몬트리올 시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Basilica Notre Dame 성당으로 향했다.
그 곳에 오니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길거리 유료 주차장도 그리고 유료 사설 주차장도 꽉 차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성당 주위를 몇 번 맴돌다가 내가 주차는 할 수 없는 곳이지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길거리에 주차하고 운전석에 앉아 있고 식구들이 먼저 구경하고 오라고 보냈다.
얼마 후에 아들이 와서 나보고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입장권이 6불이라고 나에게 6불을 준다.
들어 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렸다.
성당 안으로 들어 가니 화려하고 멋있었다.
미국에 와서 몇몇 성당 내부를 보고 요란함을 알기는 했지만 한국의 모자이크만 주로 대하던 나에게는 충격적이라고 할만큼 아름다웠다.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만큼 너무 화려했다.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 유럽의 성당이나 교회에 가면 저런 모습이겠지!
'이런 아름다움을, 더구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라면 굳히 입장료를 받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성당을 지으고 만든 사람들은 단지 신앙심으로 그리고 건축자로서 만들었을텐데 그것이 이제 돈벌이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루에 천명이 들어 오면 하루 6천불이다. 엄청난 수입이다.
그 돈을 어디에 쓰나? 교회 자체로 쓰나? 아니면 바디칸으로 들어 가나?
그 돈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거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쓰나?
아무튼 멋있고 신기하면서도 감동과 함께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성당을 나왔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몬트리올에 들어서니 간판도 다 영어가 아니고 불어다.
예상 밖이었다.
퀘벡은 불어를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영어와 불어를 같이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전부 불어만 사용한다.
영어를 볼 수가 없다.
이제서야 퀘벡 사람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고 불어가 공용어고 오히려 영어가 공용어인 캐나다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영어로 대화가 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한나라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민족도, 풍습도, 문화도 같아야 하지만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
중남미 사람들은 전부 스패니쉬를 사용하기 때문에 민족과 나라가 달라도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은 우리 한국 사람들도 중국과 일본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줄 알고 동질로 보고 있다.
예린이는 길을 물어 보거나 무엇을 물어 보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난체 하면서 불어로 말을 한다.
자기는 불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퀘벡에 가야 한다고 그 전에 말을 했다.
예린이가 불어로 물어 보다가 예찬이가 그 사람에게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고 영어로 말을 하니 너무 쉽고 모든 것이 수월하다.
바실리카 성당을 나와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장으로 향하였다.
1972년 우리 나라 양정모 선수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첫 금메달을 탄 올림픽 주 경기장이 있는 곳이다.
그 곳에 가니 그 곳에서도 주차할 곳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겨우 찾아 들어 가려고 문에서 물어 보니 일, 월요일은 경기장을 closed하고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open한다고 한다.
가는 날일 장날이라고.
할수 없이 내일 집에 가다가 다시 둘러기로 하고 퀘벡 시티로 향했다.
몬트리올은 생각보다 별로 였다.
구경할 것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물론 하루 반나절 남짓하게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도시를 다 알수는 없지만 신시가지, 구시가지를 다 통과하면서 바실리카 성당 외에는 구경할 것도 기억에 남는 것도 없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몬트리올에서 퀘벡까지는 약 220 km가 되었다.
아내에게 내일은 비가 오고 오늘은 아직 비가 오지 않으니 오늘 Montmorency Falls로 가자고 했다.
두시간을 달려 폭포에 가니 여기는 주차장비도 입장료도 없었다.
폭포 위를 건너는 다리를 보니 위험스럽다.
아내는 다리를 건느면서 무서워 벌벌 떨면서 잘 건너지 못한다.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모양이다.
나도 TV에서 볼 때에는 무서울 것 같았는데 막상 보니 그리 무섭지가 않았다.
요새 나도 고소 공포증이 생기는 지 조금만 높은 곳에 가면 겁부터 나고 밑을 보러 다가가지 못한다.
Colorado, Denver에서 로키 산맥의 높은 골짜기를 건너는 다리를 지날 때 겁이 나고 아찔했던 생각이 난다.
그 위로 차가 지날 정도로 튼튼한 다리지만 나무 사이로 수백미터의 아래가 보이고 무서워서 그 다음부터는 고소 공포증이 생겼다.
군대에서 무장 간첩을 잡으러 헬기를 타고 GOP안으로 투입될 때 헬기문을 열어 놓은 채 의자에 앉아 백,이백 M 상공을 날아 다녀도 하나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신났는데.
다리를 건너면서 폭포 밑을 보니 무섭기도 하다.
다리를 건너 옆에서 밑으로 내려 가는 계단에 서니 폭포의 전경이 전부 잘 보인다.
수백개의 계단을 내려 와서 중간 정도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 오려고 하니 다리에 알이 막히는 것 같고 너무 힘들었다.
아내가 이제 등산을 못하겠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등산은 식은 죽 먹듯이 쉽게 생각하고 잘하던 내가 등산을 못할 것 같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홀삼토라고 해서 두달에 한번 모여 같이 등산을 가고 나도 한국에 가면 같이 참석하려고 했는데 내가 낙오될 것 같고 친구들에게 짐만 될 것 같아, 이제는 생각을 접어야 겠다.
폭포에서 한시간 정도 머물다가 숙소로 향하였다.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Ambassadeur Hotel이었다.
사진에서는 멋있었는데 별로 라는 생각이 들었다.
check-in을 하는데 카운터에 있는 남자가 우리에게 호텔비 99불과 만약 물건을 파괴하면 물어 낼 돈을 100불 deposit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미 돈을지불했다고 하니까 아니라고 하면서 199불을 charge 한다.
100불은 check-out 할 때 돌려 주겠다고 한다.
room에 들어서니 기분이 상하고 사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좋았던 기분과 마음이 상하고 모든 것이 엉망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오늘 예약 안하고 그냥 집으로 갈 걸 그랬다고 말을 한다.
속은 것 같아서 예찬이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다.
이미 지불 되었다.
예찬이가 인터넷으로 우리가 돈을 이미 낸 것을 확인하고 카운터에 가서 따지니까 자기네 컴퓨터에는 안 나타났다고 Expedia에서 잘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Expedia를 통해 그 회사에서 소개해 주는 곳을 골라 예약을 하고 돈을 지불했다.
예린이는 동양인이라고 우습게 여기고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분개한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오늘 아침에 호텔에서 나올 때 한 밥과 집에서 준비해 온 반찬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도 이제 시간이 4시밖에 되지 않았다.
아내가 호텔에거 그냥 쉬겠다고 한다.
내가 여기 와서 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퀘벡 요새를 가자고 했다.
모든 식구들을 할수 없이 나에게 이끌리어 나갔다.
퀘벡 시티로 들어서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멋있었다.
신시가지를 지나 구시가지에 들어서니 너무 멋있었다.
호텔도 거리도 완전 유럽풍이다.
프랑스를 여기다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너무 아름답고 예뻣다.
지금까지 여행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여기에 오자 모든 것을 보상 받은 느낌이다.
'퀘벡 시티에 단지 Montmorency Falls 하나 보러 왔나?'하는 자조가 나왔는데 이제 그 말이 아내나 나에게서 쏙 들어 갔다.
여기를 보는 순간 그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
앞에 있는 멋있는 호텔이 한국의 '도깨비'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호텔이라고 한다.
멋있는 고전풍의 호텔과 강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40대 초반의 어떤 5,6명의 남자가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면서 한국말을 한다.
그래서 내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말을 하자 한국 사람이냐?고 반가워 한다.
나는 필라델피아에서 왔다고 하니, 50살 정도 난 사람이 자기들은 본토에서 왔다고 한다.
내가 세미나 참석 왔냐?고 물어 보니 그렇다고 한다.
자기들끼리 김박사라고 부르는 것을 보이 교수들 같기도 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는 오타와에서 왔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 여동생이 템플 의대 교수로 있다고 하면서 이름을 말한다.
퀘벡 요새 위로 올라가서 구경을 하려고 하는데 은영이가 자꾸 상점이 있는 유럽풍의 거리로 간다.
아내를 따라 old Quebec city시내를 한참 걸으니 발이 아팠다.
한시간 넘게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고 차에 와서 튜우립으로 장식된 건물을 찾아 갔다.
Quebec City Parliament Building이었다.
이 곳에 올 때 그곳을 보고 너무 예쁘다고 아내가 사진을 찍겠다는 것을 주차할 수 없어서 그냥 왔다.
내가 그 곳을 반드시 찾아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차로 조금 가다 보니 그 곳에 도착했다.
좀 늦은 시간이라 한가해서 차를 그 곳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다.
정말 멋있는 곳이 Quebec City였다.
그냥 호텔에 있었다면 후회할 뻔 했다.
이곳을 구경하는 것으로 이번 여행의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 것 같았다.
8시쯤 되어 호텔에 들어서서 오늘까지 이번에 구경할 것은 거의 다 한 것 같으니 내일 아침에 출발해서 여유있게 집에 가자고 했다.
원래 계획은 내일 폭포를 보고 3시쯤 출발하면 집에 12 넘어서 새벽에 도착할 각오를 가졌다.
그런데 오늘로서 모든 것을 마치면 내일 일정이 편했다.
이틀동안 잠을 잘 자지 못해서 9시가 조금 넘어 잠자리에 누워 10시 전에 잠이 들었다.
나는 5시 30분이 되니 잠에서 깨어나서 식구들이 잠이 깰까 봐 조용히 침대에서 기도를 했다.
그리고 7시가 되어 갈 때 식구들을 깨웠다.
지금까지 모든 호텔은 아침을 주었는데 여기는 안 준다.
그래서 짐을 싸고 전기 밥통에 밥을 해 가지고 8시에 호텔을 나왔다.
원래는 호텔에서 불고기를 해 가지고 먹으려고 했는데 카운터에서 담배를 피면 charge한다고 해서 부르 스타를 키고 불고기를 하면 혹시 화재 경보기가 울리고 문제가 생길가 봐 밥만 해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Tim Hortons에 가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식구들은 그곳에 있고 나는 차에 가스를 넣으러 갔다.
그런데 주유소의 모든 것이 불어로 되어 있어서 카드를 넣고도 어떻게 하는 줄을 몰랐다.
여러번 카드를 집어 넣고 미국에서 하는 것처럼 하려고 해도 불어로 글이 나와서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신학 대학원 3학년 때 프랑스로 유학 가려고 준비하기 위해서 학원을 다니며 불어를 2년 배웠다.
그 때 불어를 조금 했는데 30년동안 불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더니 다 잊어 버렸다.
독일어도 10년을 열심히 공부하여 고급 독일어까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는데 이제는 초보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언어라는 것이 그렇다
휘발유 하나 넣기 위해 헤매다가 기름을 넣으러 온 손님에게 도와 달라고 하자 그가 도와 주는데도 잘 안된다.
그러자 그가 주유소 상점안으로 들어 가서 점원에게 말을 하자 점원이 나와서 미국 카드냐고 물어 본다.
그렇다고 말을 하자 먼저 그냥 기름을 넣고 안에서 결제하라고 말을 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 기름을 넣고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Tim Hortons의 햄버거와 크로와쌍의 맛이 산듯하고 부드럽고 깨끗하고 너무 맛있었다.
미국에서 이런 햄버거는 맛 보지 못했다.
짜지도 않고 아무 부담이 없는 깨끗한 맛이었다.
커피를 좋아 하는 아내는 여기 커피가 너무 깨끗하고 좋다고 커피를 한통 샀다.
그 곳을 출발하여 집으로 행했다.
그냥 집에 오면 6시면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집에 일찍 갈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가는 도중에 87번 도로 근처에 있는 우드 베리 아울렛에 둘러 가자고 하니 아내가 좋아한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 그냥 집에 가기가 아까워 Ottawa로 가자고 말을 바꾸었다.
예린이는 너무 좋아 한다.
오타와가 캐나다의 수도이기 때문에 자기는 꼭 가 보고 싶었다고 했다.
아내가 별로 내키지 않아 하지만 여기까지 왔다가 몬트리올과 퀘벡만 구경하고 가기는 너무 아까워서 오타와도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오타와까지 가면 다시는 캐나다 동부쪽은 안 와도 되지 않냐?고 꼬셨다.
투덜되는 아내의 불평을 애써 외면하면서 몬트리올을 지나 미국쪽이 아니라 오타와로 방향을 틍었다.
Quebec주를 지나 Ontario주에 들어서자 이제부터는 불어가 아니라 영어로 되어 있었다.
영어가 너무 반가웠다.
마치 한국말을 만난 것처럼
Ontario Information Center에 들어가서 온타리오 지도를 얻고 그 곳에서 아들과 딸의 캐나다 티셔츠를 사고 오타와로 행했다.
오타와로 가면 거리만 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았다.
가는 도중에 비를 만나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아내의 잔소리가 커져 간다.
그래도 그냥 강행이다.
오타와에 들어서니 길이 막힌다.
1km를 가는데 10분이 걸린다고 GPS에 나온다.
그래서 원래 나갈려고 하던 출구 전에 빠져서 가는데 길을 헤맨다.
전혀 모르는 곳에 와서 감에 의해 도시의 거리를 달린다.
정비된 강가가 너무 멋있다.
꼬불꼬불한 골목실로 들어 서면서 아내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GPS가 가르쳐 주는 곳을 겨우 찾았다.
GPS가 가르쳐 주는 것은 캐나다 Parliament Building이었다.
그 건물을 보는 순간 감탄이 나왔다.
너무 멋있었다.
여기 안 왔으면 후회할 뻔 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멋있는 건물을 본 적이 없다.
벨기에 브뤼셀의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Grand Place를 사진으로 보니 그렇게 멋있었는데 이 건물이 그에 못지 않다.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주차할 곳을 찾으러 다녀도 주차할 곳이 없었다.
국회 의사당 주변과 주차장을 헤매면서 여기라도 잠시 멈추고 사진이라도 찍자고 하니 아들과 아내가 안 된다고 여기서 하다가는 큰일 난다고 난리를 친다
그런데 도시 블럭을 몇 번 돌아도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겠다
할수없이 천천히 차를 몰면서 차 안에서 건물만 사진 찍으라고 말을 하면서 그냥 가자고 했다.
가면서 도시를 구경해도 그냥 멋있다.
건물들이 내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보지 못한 건물이다.
길을 잘못 들어서 골목에 들어서니 마치 한국의 남대문 시장 같은 먹자 골목과 노점상 비슷한 곳이 있었다.
인천의 신포동에 온 느낌과 같았다.
옆에 성당이 있는데 그 곳에 주차할 수 있을 까 보니 그 옆 골목에 유료 길거리 주차가 되었다.
그 곳에서 카드로 결제를 하고 1시간 넘게 티켓을 뽑고 주위를 구경하러 갔다.
성당에 가니 몬트리올 바실리카 성당과 이름도 똑같고 내부도 거의 비슷하였다
The Notre-Dame Cathedral Basilica이다.
그곳보다는 조금 덜 화려했지만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여기는 돈을 안 받고 무료 입장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이 성당에는 금년 4월에 교황이 방문하여 미사를 드렸다고 한다.
성당에서 나와 앞에 있는 미술 박물관을 보고 그 앞으로 가니 국회 의사당의 뒷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앞면보다 더 멋있다.
뒤에는 강이 흐르고 국회 의사당의 뒷면은 절벽이다.
천연의 요새다.
풍경과 경치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타와에 너무 잘 왔다.
이것을 보지 못했으면 후회할 뻔 했다.
여기는 도시 자체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귀품이 있어 보이고 여유가 있다.
그리 붐비거나 복잡하지도 않고 미국의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흑인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거기 park에서 나와 신포동과 명동 같은 거리에 갔다.
그곳에 미국의 flea market이나 남대문의 노점상 비슷한 곳에서 과일과 꽃들을 팔고 있었다.
아내가 토마토을 사고 아이들과 함께 아이스 크림 가게에 둘러 아이스 크림을 사 먹었다.
오타와가 너무 좋고 마음에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방문한 도시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다.
미국에도 이런 도시는 없다.
다시 오고 싶다.
아내에게 다음에 여기에 2박 정도 머물면서 자세히 구경하자고 했다.
어떤 도시에 가서도 다시 한번 더 오겠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여기는 또 오고 싶었다.
이번 여행 가운데 가장 High light 였다
너무 좋았다.
3시 30분 정도에 아쉬움을 남기면서 오타와를 떠났다.
남쪽으로 계속가면 미국의 Jamestown으로 갈 수 있지만 강가를 타라 Toronto방향으로 가서 미국의 천섬 근처 국경을 통과하여 Watertown 쪽으로 81번 도로를 타고 올 예정이다.
천섬은 이미 세번이나 와서 배를 타고 구경하고 캐나다로 가는 다리를 보면서 한번 건너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통과하게 된다.
캐나다와 미국 사이의 강을 가로 지르는 두개의 다리를 통과하니 미국의 입국 검문소다.
그곳에서 경찰 두명이 검문을 한다.
우리 가족의 passport card를 주자 여권을 보고 이름과 사람을 확인하고 "얼마나 캐나다에 있었느냐?" "그 곳에서 무엇을 사가지고 오냐?"고 물어 보고 그냥 통과다.
1분 밖에 안 걸린다.
아마 가족이니까
미국 시민권이 좋기는 좋구나.
이렇게 쉬우니 브로커들이 사람들을 밀입국 시키는 모양이다
아내는 미국에 들어서자 마치 집에 온 것 같다고 한다.
여기서 부터 집까지도 400마일, 6시간이 걸리는데.
캐나다에 있으면서 마치 남의 나라, 남의 집에 있는 것처럼 불안하고 불편했는데 미국에 들어서니 안도하고 좋다고 한다.
미국이 이제 내 나라가 되어 가는 모양이다.
미국 땅에 들어서서 간이 휴계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5시가 거의 다 되었다.
부르 스타로 불고기를 해 먹으려고 했는데 오래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불이 나와도 세지 않아서 잘 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불고기를 먹는 것을 포기하고 밥과 김치와 김과 밑반찬으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하고 차를 타니 GPS가 집에 도착 시간을 11시를 가르킨다.
집에 까지 6시간을 안 쉬고 올 작정이었다.
80마일 정도의 속도를 내어 빨리 달렸다.
빨리 차를 모니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아마 10시 50분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날이 어둡고 비가 오고 공사를 해서 81번 도로에서 476으로 들어서는 도로의 입구를 놓쳐서 밖으로 나가서 헤매다가 다시 돌아와서 10분이 지체 되었다.
그리고 미국 오기 바로 전에 기름을 넣었는데 집에 까지 갈 기름이 간당간당하다.
그래서 Pocono, Allentown 휴계소에서 기름을 넣기 위해 잠시 멈췄다.
그리고 11시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총 1450마일의 여행이었다.
운전할 사람이 아들과 딸이 있는데도 내가 혼자 운전했다.
무사히 아무 사고 없이, 집도, 가게도, 교회도 큰 어려움과 기분을 상하는 일이 없이 다녀 와서 감사하다.
좋은 여행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