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성탄절을 앞두고 복음뉴스는 "2020년의 성탄절"이라는 주제의 글들을 연재합니다. 뉴욕, 뉴저지 일원의 목회자들이 쓴 글을 원고가 도착된 순서대로 게재합니다.
제목 : 서설(瑞雪)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지금은 차도 없고 또 자동차 운전도 금지된 상태이지만 그러기 전에는 나는 겨울이면 차위에 내려 쌓인 눈을 치우곤 했다. 그 때의 한 가지 회상은 아름답고 귀하게 여겨진다.
추운 겨울 날, 새벽기도회에 가려고 주차장에 내려가 보니 밤사이에 눈이 많이 내려 차들은 고구마처럼 눈 속에 묻혀 있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이른 새벽에 나의 차위에 내려 쌓인 눈을 치우고, 바로 옆에 주차되어 있는 나이 든 미국 꼬부랑 할머니 차위의 눈도 쳐 주곤 하였다.
그 할머니는 평소에 어디를 다녀오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매일 차를 타고 어딘지를 다녀오곤 하는 것이었다. 옆집에 살고 있는 그 미국 할머니의 손에는 늘 무슨 책이 들려 있곤 하였다. 아마 미국 할머니들의 Book club 회원이 아닌가도 생각했었다. 나는 눈이 쌓여 차를 움직이지 못하면 그 할머니는 얼마나 답답 할가 생각하고 그 할머니 차위의 눈도 치우주곤 하였다.
눈을 치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래 체질이 약한 나에게 눈치는 일을 힘이 들었다. 열 (烈, 아내의 애칭)이는 차위의 눈을 다 치고 나면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있다가 내려와서 교회에 가곤 하였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새벽이었다. 내 차위의 눈을 다 추우고 할머니 차위의 눈을 치울 때는 허리가 아프고 등에서 땀이 나, 내의를 적시었다. 그런데 그렇게 보람을 느끼면서 눈을 치던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이렇게 할머니 차위의 눈을 치는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 들키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연약한 이웃을 생각하는 적은 선한 마음이 자기의 (自己義)를 구하는 도심(盜心)으로 전이(轉移)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모두가 잠자고 있는 이른 새벽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고된 작업에 허리가 아파서 눈 치던 삽을 벽에 세우고 늘 아내가 내려다보곤 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아내가 내려다보려니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 창문을 올려 보았으나 아내는 가상한 나를 바라보고 있지는 아니했다.
20분 남짓 눈을 다 쳤을 무렵에 아내가 주차장에 내려왔다. 이 선한 일에 아무도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주차장에 내려온 아내가 " 당신 오늘 새벽에 수고 많이 하셨어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수고는 무슨 수고“하고 시치미를 띠었다. 아내는 “내가 다 봤어요. 내가 보는가하고 한번 들창문을 올려 보던데... 다른 쪽 커튼을 제키고 봤어요”하는 것이었다.
1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강건한 나이도 (80)지나 내일 모래가 90인 나이에 생각하니 그때만 해도 청년의 때요 철부지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코로나 역병이 자자질줄 모르고 확산 일로에 있는 이때에 크개 첫눈이 내리었다. Christmas가 닥아 오는데 이번에 내린 눈으로 온 누리가 하얗고 깨끗하게 뒤덮인 것 처럼 악균(惡菌)도 사라져 없어지고 새해를 맞는 서설(瑞雪)이 되기를 염원한다.
글 : 주진경 목사(주예수사랑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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