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한준희] 종말론적인 감사절

한준희 목사 0 2020.11.1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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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종말론적인 감사절

 

집 건너편 알리파크에는 이제 낙엽이 거의 다 떨어졌다, 특히 어제는 비가 많이 와서인지 떨어진 낙엽들이 땅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너부러져 있다. 낙엽뿐만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 빛에서 힘을 다해 맺어 논 도토리 열매들도 다 떨어졌다. 떨어져서 한쪽 구석에서 썩어져 가고 있는 도토리가 유독 내 눈에 들어온다. 이런 모습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 올 때면 예외 없이 추수감사절이 찾아온다,

 

추수감사절!

뭘 감사해야 할까, 감사헌금을 봉투에 넣으면서 이 정도 금액이면 추수감사헌금으로 최선을 다한 것 아닌가, 스스로 위안을 해 보면서도 진짜 뭘 감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난 10여년전 내 스스로 죽었다고 선언했던 적 있었다. 심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우울증에 빠져있던 당시 난 목회의 의욕뿐만 아니라 삶에 의욕도 상실한 채 종일 집에만 있었었다.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이 오게 되면 모든 것이 끊어진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끊어진다, 친구들이 나와 식사라도 하자지만 식사하러 나갈 자동차에 가스가 없어 움직일 수가 없다. 1불이 없는 현실 앞에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내가 죽었다고 선언한 것은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당장 해결해야 할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할 수가 없다 보니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때 바로 추수감사절을 맞아했고 그때도 알리파크를 걸으면서 처참하게 떨어진 낙엽과 떨어진 도토리를 보면서 추수감사절은 낙엽도, 각종 열매도 그 풍성함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풍성함이 끝났다 라는 신호였다는 것을 난 그때 알았다.

 

추수감사절은 온갖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지만 이제 이 모든 것이 끝났다 라는 경고 메시지도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감사는 지금까지 이렇게 풍성하게 열매 맺는 이땅에 거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라는 것이다, 즉 풍성한 양식을 주셔서 앞으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가 아니라 지금까지이다. 지금까지 풍성하게 살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지막이다. 다음 추수감사절은 없다,

내년에 올해 맺었던 나무 열매가 또 맺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비바람에 나무가 부러질지, 폭우에 나무가 뿌리째 뽑힐지, 태풍으로 열매가 다 떨어져버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내 인생이 그렇다, 올해 추수감사절까지 살게 하신 것에 감사한 것이지 올해 주신 이 풍성함으로 내년 추수감사절까지 살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함이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맞이한 이 추수감사절이 즉 이 땅에서 감사함이, 이 땅에서의 이 풍성함이 내 삶에 없을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내일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종말론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 추수감사절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풍성함을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함에 앞서 이 풍성함을 누릴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이 추수감사 보다 더 앞서야 하지 않을까,

 

풍성함을 맺었던 모든 나무들의 입사귀와 열매는 다 떨어졌다. 이제 차가운 눈보라와 긴 겨울의 추위 속에서 죽어 있어야 한다. 아니 죽은 것이다. 내년 봄 다시 꽃이 피고 잎이 솟아난다는 것은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부활의 상징이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은총을 입은 것이다.

 

내가 죽었다고 여겼을 때 그때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그 차가움이 나를 죽게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다시 살아서 그 풍성한 열매를 안고 추수감사절을 지낸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감사가 아니고 무엇이라 말 하겠는가,

 

여기까지의 시간이었기에 종말론적이다

여기까지 풍성함을 누렸기에 종말론적이다.

여기까지 감사하는 절기가 추수감사절이다.

내일은 또 새롭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만 기다릴 뿐이다.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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