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학에 대하여
글자 그대로 신학이 하나님에 대한 학문을 말한다면, 이는 오해 중의 오해이다. 하나님은 학문의 대상일 수 없다. 구태여 말하려면, 성경학이란 말은 가능할 것인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의 책이다. 그런고로 신학이란 엄밀히 말해 예수학이 될 수밖에 없다. 조직신학에선 이를 기독론이라 하는 바, 바로 이 기독론이야말로 성경을 보는 눈이요,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유일한 관문이다.
안타까운 일은 기독교 내의 유식자들이 이런 점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복음을 물타기 한다. 이는 하늘이 무너져도 용서 받지 못할 일이다.
유식자들의 대부분이 성경을 윤리 도덕의 교과서인 줄 안다. 심지어는 과학 교과서로 말하는 학자도 있다. 물론 엄밀한 과학적 잣대로 밝혀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나 성경은 상기한 바 예수님을 증언한 책이지 과학 교과서는 아니다. 물론 윤리 도덕서도 아니다. 윤리 도덕책은 세상에도 많다.
성경에 보면 주께서 심한 욕을 당사자들 면전에 퍼붓는 장면이 많이 있다. 예수님은 당시의 정치가 헤롯에게 여우같은 놈이라 하셨다. 이는 돈으로 권력을 산 후 요리 조리 유대인 피를 빠는 교활한 놈이란 뜻이다. 회칠한 무덤 역시 이중 인격자의 더럽고 치사함을 드러내는 심한 욕이다. 욕도 언어 이다. 하여 욕을 하면 비성경적이란 말은 애시당초 성립되지 않는다. 이 말은 욕을 하라는 의미가 아님은 누구나 알 것이다.
한국에는 기독교 실천 협회 <기윤실>이 있어 기독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정의와 도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여 수많은 애국단체와 정치적 발언을하는 목사님들을 거스린다. 나는 양쪽 분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디테일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윤실이란 단체의 주장은 성경의 말씀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밝힐 뿐이다.
성경엔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 윤리, 정의, 철학, 사상이니 하는 따위의 인문학적 개념이 전혀 없다. 유식자들은 잘 듣고 이해할 일이다. 이들 가운데는 유명 신학교의 석좌 교수도 있다.
하나님은 학문의 대상이 아니듯 성경은 인문학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믿음이 있을 뿐이다. 이 때 말하는 믿음이란 모든 것 위에 있으며, 모든 것의 존재근거이며 , 모든 것을 포함한다. 윤리와 도덕이 조그만 촛불이라면 믿음은 태양과 같다. 믿음은 전체이다. 어디다 대고 도덕 윤리 타령이냐?
솔직히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성경을 끝까지 읽어낼 사람은 많지 않다. 끔찍한 장면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시아를 고대하는 유대인 여성은 자기로 인해 대가 끊긴다는 것은 차라리 지옥불에 던져짐만 못하다 하여 시아버지와의 동침도 결행한다. 이는 도덕인가, 철학인가, 아니면 윤리인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의 믿음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는 그것이 믿음의 행위인 고로 정당화되며 마침내 의가 된다 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의로 여겨진다 .
세상 살아가는데 윤리 도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잣대를 함부로 성경 말씀에 들이대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기독교 유식자들의 잘못은 비록 그들이 옳고 좋은 말을 하는듯하나 실은 복음을 물타기하는 천벌의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천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믿고 아니 믿고만이 문제이지 결코 인문학이 아니란 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영국의 스펄젼이란 큰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복음의 철학화다."
철학은 인문학이 아니냐? 우리가 기도하며 믿음안에서 확신하여 행한 행위는 곧 예수님이 행하신 것이다.
글을 맺으며 한 마디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말씀하며 우주의 운행이 그 분의 손에 있음을 말씀한다. 그러니 믿음의 사람들이여 말하라! 그러면 지구는 돈다. 만유를 포함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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