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주영광] 2020년의 성탄절 11 "우리를 공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주영광 목사 0 2020.12.22 09:33

[편집자 주] 성탄절을 앞두고 복음뉴스는 "2020년의 성탄절"이라는 주제의 글들을 연재합니다. 뉴욕, 뉴저지 일원의 목회자들이 쓴 글을 원고가 도착된 순서대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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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를 공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에 일상의 자유를 빼앗긴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근래에 다시 재발된 코로나 대유행으로 감염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연일 갱신되고 있다. 다시 지난 3월의 악몽이 재현되는 듯 병원의 병상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는 다시 재확산을 막기 위해서 여러 형태의 락다운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절망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당연히 기뻐해야 할 크리스마스를 마냥 기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그리고 기쁨 보다는 아픔이 더 어울리는 만만치 않은 환경 속에 갇혀 성탄을 맞이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에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어떠한 믿음으로 기념할 수 있을까? 

 

히브리서4장 15절에는 에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공감’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개역개정 성경에는 ‘동정’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일부 영어성경에서는 ‘Empathize’‘공감’하신다는 단어를 쓰고 있다. 에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 받으시고, 똑같이 느끼시고, 똑같이 공감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가르친다.  

 

철학, 교육학, 심리학, 뇌과학, 경제와 소비를 연구하는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가 ‘공감’이라고 한다. 사람은 공감해야 행동하고 결정하는데, 이 ‘공감’이라는 것 자체에 치유와 회복의 인자가 있다고 한다. 아무리 침울해도 나를 공감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가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공감을 하지 못하면 서로 다른 차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일어나는데, 특히 공감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하여 강요를 받을 때 그 스트레스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쌓여져 간다고 한다. 이것이 본래적인 인간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인간의 몸을 입히시고,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공감’하신 사건이다. 말로만 공감이 아니라, 마음으로만 공감이 아니라, 인간의 삶 모든 것을 공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하나님이 오신 공감으로서 치유가 시작된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던 당시의 상황을 보면 가장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 자들까지도 품으시기 위해서 스스로를 일부러 가장 낮은 곳까지 낮추시는 성자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배척받으신 일이다.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 전에 임신한 사건때문에 예수님은 태어나시기도 전에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의심과 함께 배척을 당하셨다. 

 

베들레헴에서는 무심한 사람들로 인해 배척을 당하셨다. 아무리 여관방이 없다고 해도 배가 많이 불러 진통이 시작된 산모를 마굿간에서 재운다는 것 자체가 베들레헴 사람들이 얼마나 무심한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율법에 고아, 과부, 나그네를 선대하라고 수차례 말씀하시는데도 베들레헴 사람들은 여행객이면서 만삭의 산모를 위한 최선의 배려로서 마굿간을 베풀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결과적으로 메시아는 배척당하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다. 우연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요셉과 마리아에게 보내시고,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소식을 알리실 정도면 아기 예수 탄생이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있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면 마굿간이 출산을 하기 위한 최선의 계획이었단 말인가? 심지어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를 말구유에 누인 것이 최선의 계획이셨을까?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들까지도 체휼하시고 품으시기 위해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의 환경으로 이 땅에 아기 예수를 보내셨다. 

 

나는 지금까지 소와 말의 분변이 널려있는 냄새나는 마굿간이라는 최악의 위생상태에서 그것도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말 먹이통에서 잠재웠다는 이야기를 아기 예수 사건 외에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간혹 길이나 택시에서 혹은 다리 밑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신문에서나 볼 법하지만 외양간 똥이 널려 있는 곳에서 산모가 출산하여 말 먹이통에 자기 아기를 누였다는 이야기는 성경에서나 유일하다. 

 

틀림없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들까지도 품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시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에 비참한 환경에서 배척을 받으시며 태어나셨을 뿐만 아니라 애굽으로 헤롯의 칼을 피해 도망하는 피난민이 되기도 하셨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에도 배척당하시고 최악의 죽음을 맞이하셨다. 제자들의 배척뿐 아니라 3년 동안 따라다니던 수천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에 한 사람도 그 옆을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십자가는 죄인들을 위한 형틀이었으며 그것도 가장 잔혹한 형틀이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그 형틀에서 힘든 죽음을 맞이 하셨다. 

 

이 모든 이야기는 히브리서 4장 15절에 있는 말씀 그대로 우리들의 아픔까지도 안으시고 그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아픈 것을 경험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을 공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태어나셨고, 그렇게 돌아가셨다. 

 

지난 2020년 12월 12일자로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30시간 동안 엄청난 고통을 참고 가슴과 갈비뼈 쪽에 초대형 문신을 한 한 남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캐나다 앨버타주 스토니 플레인에 사는 데릭 프루 시니어 라는 한 남성은 자기 몸에 엄청난 크기의 타투(문신)를 하기 위해서 타투샵을 찾았다. 타투할 범위가 너무 커서 한 번에 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3시간이면 끝날 시술을 9번의 세션으로 나누어 총 30시간 대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그 타투 모양이 예술적 모양이나 형태가 아니라 그냥 커다란 빨간 점처럼 물감으로 몸의 반쪽을 칠하듯 타투를 한 것이다. 그냥 보면 빨간 거대한 점이 몸에 박힌 것처럼 보인다. 이런 무의미한 타투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들 8살 데릭 프루 주니어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커다란 모반 점 때문에 늘 자신감을 일어갔다. 이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붉은 점은 왼쪽 가슴과 갈비뼈 주변 몸의 반을 물감 번진 듯 점이 퍼져 있었다. 어릴 때에는 독특한 점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점점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끄러워하고 의기소침하고 친구들의 놀림을 받기도 하였다. 아들은 필사적으로 가리려고 했고, 수영장에서도 셔츠를 벗으려고 하지 않았다. 

 

의기소침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빠는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아들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길 바라는 아빠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자기도 그만한 크기의 아들의 점과 똑같은 점을 만들어서 아빠가 모범적으로 자신감을 아들이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비밀리에 타투샵을 방문했고, 총 9번의 고통스런 30시간의 대시술을 했다. 

 

아빠는 아들과 함께 수영장을 가서 처음으로 자기 문신을 아들에게 보여 주었다. 

“데릭, 아빠도 너랑 똑같은 점이 있다.”

“아빠 이거 언제 생겼어?”

“이거 어제 생겼지, 데릭,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아빠는 너를 너무나 사랑한단다. 그래서 너랑 똑같아지고 싶어서 타투를 했어. 이것 봐. 정말 멋지지?”

 

아빠가 셔츠를 벗으니까 아들도 함께 벗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들은 혼자 있어서도 셔츠를 벗고 수영을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아빠도 자기와 똑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와 똑같아지셔야 했다. 그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우리가 아파하는 것을 아파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태어나셨고, 최악의 상황에서 돌아가셨다. 우리가 겪는 아픔을 함께 아파하시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회복의 시작이 되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시기 가운데 2020년의 성탄절을 맞이하게 된다. 어느 때처럼 기쁨이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가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분위기 속에 우리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해야 할 시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공감하신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아픔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의 아픔을 안으시기 위해서 그 분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옷을 입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치유와 회복을 주실 수 있으신 유일한 분이시다. 우리가 어떤 아픔과 힘든 경험을 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우리 안에 여전히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계시며 끝까지 우리를 응원하신다. 그리고 회복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그 회복과 치유의 아기 예수를 그 어느 때보다 굳은 믿음과 소망으로 맞이하는 것, 이것이 2020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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