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칼럼은 제목부터 이상합니다. 오늘은 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우리 교인들과 만난지도 이제 6년이 되었습니다. 6년동안 동고동락을 같이하면서 같이 울고 같이 웃었습니다. 그동안 서로를 많이 알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번도 저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말로는 듣고 서로를 체험하면서 많이 알고 느꼈지만 저를 구체적으로 소개한 적은 처음 만났을 때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있었던 분은 한 분뿐이고 모두들 그 이후에 만났습니다. 서로 만난 지가 짧게는 수주부터 길게는 수년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를 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엘림 교회의 성도들이 저를 앎으로 목사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 목사를 말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저를 소개하면 일반적으로 못난 부분이나 단점은 숨기게 되고 장점만 부각하고 자랑거리만 늘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랑거리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우리 교인들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하고 나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몇번에 걸쳐 '저 이런 목사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저의 이력서인 나의 자란 환경과 학력과 경력을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1959년에 서해의 섬인 백령도에서 오남매 중 네째로 태어나서 5살때 인천으로 이사 와서 인천에서 자라오며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제 시대에 황해도 장연에서 신학교를 다녔고 그 후에 장로 임직을 받고 6.25 직 후에 황해노회에서 조그만 섬인 대청도에 전도사로 파견하여 장로로써 3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교회가 설립된 황해도 장연에서 110년 전에 일찌기 복음을 받아 들인 부모님들은 단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하였기 때문에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셨습니다. 하루일과는 아침에 가정 예배로 시작하여 저녁에 기도와 성경 읽는 것으로 마치도록 어머님으로부터 매일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 신앙 교육 밑에서 자란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 가기 전부터 목사가 되어 주의 복음을 전하며 주의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였고, 지금까지 한번도 그 결심을 변한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새벽 기도회에 다녔고, 중학교 때에는 인천에서 부흥회 하는 곳은 다 쫓아 다니며 은혜를 받으며 전도에 힘썼습니다. 학교 공부는 거의 1등을 했지만, 저의 마음에는 주님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몸 바치고 싶은 열정이 항상 넘쳤습니다. 그래서 총신대 특차 장학생 선발고사를 치러 장학생 선발고사 종교 교육과 수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대학교 재학중에 군대에 입대하여 소대, 중대 생활을 거쳐 상병 때 연대 군종병으로 발탁되어 1년간 최전방에서 군종 생활을 했고,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면서 제가 유치부 때부터 신앙생활하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인천동부교회 교육전도사로 임명받아 유초등부를 맡아 2년간 봉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총신대 신학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해서 구약신학을 전공하고 우등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총신대학과 미국 Reform 신학교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목회학 박사 과정을 다 이수하고 논문만 남겨 놓은 상태로 도미하였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재학중일 때는 개척교회와 중형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중고등부를 맡아 지도하였습니다. 1989년 9월에 목사 안수를 받고 중대형 교회인 인천의 계산교회 1년 반, 서울의 효성교회에서 3년 반, 신용산 교회에서 만 5년간 모두 10년간 부목사로 사역을 했습니다. 부교역자로 사역을 하면서 목회자로서 목회에 대한 것은 다 경험했습니다. 교육위원회 위원장, 선교 위원회 지도목사, 심방, 새벽 예배 인도, 주일저녁 예배 설교, 금요철야기도회 인도, 구역 인도자 성경공부, 부부성경공부, 남,여전도회 성경공부, 평신도 성경 대학, 일대일 제자 양육, 대학부 지도, 청년부 지도, 선교지 및 교회 신문 발간 등을 맡아 하였습니다. 특별히 효성교회와 신용산 교회에서는 담임목사 대신으로 각각 1년동안 교회를 실질적인 맡아 매주일 낮예배 인도와 설교를 하면서 목회를 했다.
1999년 10월에 신용산교회의 후원으로 New Jersey의 New Brunswick Seminary로 유학 와서 공부를 시작하려던 중 한국을 통해 저의 대한 소식을 들은 집사님들이 찾아 와서 2000년 1월에 우리 엘림 교회가 시작되었다. 저는 특별히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세아 신학교와 한국여자 신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두 군데 모두 학생들이 모든 교수중에서 저의 강의를 제일 좋아하였다. 유학 관계로 한국여자 신학교를 떠날 때 신학생들이 "우리 학교에서 제일 유능한 교수를 잃는다"고 한탄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목회의 사역은 더욱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가는 교회마다 교인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신용산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이 "백의흠 목사 같이 순수하고 사랑 많은 목사님은 세상에 없다"라는 과장된 말로서 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랑을 엘림교회와 성도들에게 쏟으려고 합니다. 저는 항상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려고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저의 아내와는 33살에 중매로 만나 만난지 한달만에 결혼했습니다. 사실 저의 아내는 저보다 훨씬 모든 면에서 뛰어 납니다. 목사의 딸로서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미국 와서는 제가 여러면에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반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저와 우리 교회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오늘은 저의 소개를 하려니까 저의 좋은 점만 나열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번 칼럼에서는 저의 목회관과 아울러 저의 약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