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우스갯소리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몇 해를 깊은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깨우치는 바가 없어 도 닦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열차를 탔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아쉬운 마음이 남아 이렇게 흥얼거립니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한 참을 이러고 있는데 객차 안에 수레를 끓고 지나가는 여객 판매원이 이런 말을 하며 지나갑니다. “삶은 계란이오.” 그 순간 깨달음이 있었다는 겁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
그 역무원은 계란을 삶아서 팔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의 말이 도 닦기를 포기하고 혼자 중얼거리던 사람에게 “삶이 계란”이라고 들렸습니다. 글로 써도 같은 말이니 누가 지었는지 꽤 재미있습니다.
사람의 삶에 대한 정의가 많습니다. 노랫말도 많습니다. ‘타타타’라는 노래를 부는 김국환 씨는 “산다는 건 좋은 거지”라고 말합니다. 벌거벗고 태어났는데 아무 것 없어도 옷은 입고 있는지라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자조합니다. 그가 불교신자로 알려진 바 이 노래에 불교철학적인 요소가 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낭만적이긴 한데 거기서 그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걸 감사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마십시오. 기독교적인 감사는 만족의 수준 그 이상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33절에 보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33:11절에는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하십니다. 이 두 구절의 뒷부분에는 동일하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이런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냥 사는 게 아닙니다. 마음, 목숨, 뜻(마 22:37)을 다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참 의도는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히 12:10) 하시는 데 있습니다. 삶은 참여입니다. 그게 사는 겁니다. 생명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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