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0분에 morning call이 들어 왔다.
지난 밤에는 12시까지 일기를 쓰고 잠이 오지 않아 발버둥을 치다가 거의 2시에 잠이 들었다.
호텔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8시 30분에 호텔에서 출발하여 Heidelberg성으로 향하였다.
하이델베르그 성은 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서 궤도 기차를 타고 잠깐 올라 갔다.
이런 성이 정말 요새이다.
점령하기 힘들다.
그런데 세계 이차 대전때 폭격으로 인해 성의 절반이 무너졌다.
성도 멋있지만 성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전경은 정말 멋있었다.
옆서에 많이 나오는 라인강을 굽어 보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풍경 사진이다.
라인강과 그리고 숲과 어울려진 2-4층의 장난감 같은 집들.
멋있다.
정말 동화속의 도시이고 그림에나 있을 것 같은 풍경이다.
Heidelberg 성을 보면 옛날의 성주들의 화려함과 강력함 그리고 부유함을 느끼게 만든다.
나는 항상 왕 제도를 못마땅해 왔다.
왕이라고 백성위에 군림하여 백성들의 희생속에 초호화 생활의 특권을 누리며 인간의 목숨을 함부러 빼앗을 수 있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더구나 그 부와 권력을 대대로 세습하면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똑같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인간이다.
지금 같은 민주주의가 좋다.
위임받은 지도자로써 잠깐 통치하고 이끌다가 임기가 끝나면 물러가는.
그리고 자기 각자의 노력과 개인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하고 지도자도 될 수 있고 잘 살 수 있는.
지도자는 백성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국가를 섬기는 직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하이델베르그성을 구경한다.
그런데 서양 가이드는 거의 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거의 다 60이 넘고 70이 넘은 할머니들도 있었다.
한국 같으면 벌써 은퇴할 나이에 일하면서 열심히 살아 간다는 모습과 노련함과 원숙함이 나를 감탄시킨다..
우리에게는 하이델베르그 교리 신조로 더 유명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성으로써 더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성에서 나와 shopping하는 곳으로 갔다.
한국 사람이 주인이고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유명한 Twin 독일 칼을 파는 곳이다.
은영이가 선물을 사오라고 하는데 이 선물을 사다 주면 제일 좋아할 것 같은데, 칼을 사면 짐을 비행기 내로 가져 들어 갈 수 없고 부쳐야 한다.
그런데 그냥 갈 수 없고.
망설이다가 그냥 나왔다.
짐을 부치고 찾기 싫어서.
그런데 주위의 목사님들이 권하고 특별히 동경에서 오신 고정석 선교사님이 더욱 권해서 다시 가서 3개 들은 120유로 짜리의 칼과 46 유로 짜리 가위를 샀다.
평생 처음이고 나에게는 엄청난 거금의 선물이었다.
은영이가 일어 났을 때 "200불짜리 선물을 샀다"고 말하니까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네가 좋아하고 여자들이 좋아 하는 것이라고 하니까 "칼이냐?"고 대답한다.
칼과 가위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니 "좋다"라고는 말을 하는데 별로 좋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광장에 있는 돔 성당인 성령 교회를 구경했다.
여기서 신교와 구교가 서로 전쟁을 일으키며 성당을 차지하여 예배와 미사를 드리다가 나중에는 신교와 구교가 같이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지금은 내부에 들어 가 보니 구교가 사용하는 것 같았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이 탄생했다.
오늘 점심도 어제 먹은 한국관에서 먹었다.
어제 된장 찌개도 별로 였지만 그래도 먹을 만 했는데, 오늘 김치 찌개는 완전 형편없다.
된장 찌개가 아니고 된장국이고 오늘 김치 찌개는 김치국보다도 더 못하다.
한국에서 또 다른 여행객팀도 이 곳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지금까지의 외국 식당, 중국 식당을 다 합해도 한국 식당이 제일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 곳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감사함으로 감수해야 한다.
점심을 먹고 하이델베르그의 라인강을 따라 지나 가면서 독일과 프랑스 경계에 있는 프랑스령인 Strasbourg로 향하였다..
이 곳에는 Thomas Muntzer와 Calvin이 목회를 했던 교회가 있다,.
가는 도중에 Baden Baden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바덴 바덴은 우리 나라의 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확정한 곳이다.
그리고 사모님들이 독일 치약을 산다고 supermarket에 간다고 둘렀다.
여기서 나도 가게 종업원들과 교인들에게 줄 치약을 샀지만 1시간을 지체 하였다.
거의 모든 목사님들이 교인들에게 줄 치약을 샀다.
그리고 드디어 프랑스 땅인 Strasbourg에 들어 왔다.
유럽의 모든 도시들이 다 비슷 비슷하게 아름답지만 이곳도 아름답다.
더구나 스트라스부르크는 나에게 관심이 많던 곳이다.
내가 신학 대학원 3학년 때부터 2년 동안 이 곳에 유학을 오려고 불어 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불어를 배웠다.
군대에서 연대 군종으로 있을 때 내가 모시던 최전방 81연대 소택교회 김신 목사님이 그 당시 파리 연합 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시무하고 있어 나에게 오라고 해서 프랑스를 가려고 준비했다.
그 당시 장신대 교수이며 나중에 새문안 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가신 이수영 목사님이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칼빈에 대한 연구로 학위를 받아서 나도 프랑스에 가서 파리에서 목회를 하면서 스트라스부르크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런 꿈과 생각이 있던 스트라스부르크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감회가 새롭다 .
스트라스부르크도 역시 나의 마음에 감명을 주었다.
개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이 일을 이루었나?
고난의 가시밭길과 생명을 내건 개혁이었다.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먼저 Thomas Muntzer가 목회한 토마스 교회에 갔다.
그리고 칼빈이 목회를 한 교회를 방문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개혁 운동을 하다가 2년만에 추방 당하고 스트라스부르크에 와서 프랑스 이민자들을 위해 3년간 목회를 하였는데 칼빈을 추방했던 제네바가 폭동과 도덕적인 타락으로 도시가 엉망이 되자 칼빈이 다시 오기를 강력하게 원하여 제네바의 요청에 의해 다시 제네바로 돌아 간다.
스트라스부르크 생활에 만족하던 칼빈은 다시 제네바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제네바의 요청이 점점 절박해지자 결국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과해 주는 이 과업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겨 다시 제네바로 돌아 간다.
칼빈이 3년간 목회한 교회는 칼빈의 후임자까지만 목회를 하고 카톨릭에 의해 20년간 신교의 예배가 금지되었다.
이번 종교 개혁 500주년 유럽 방문은 철저히 종교 개혁자들의 삶과 자취를 밟으면서 새로운 각오를 갖는 시간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도 있지만 개혁자들의 삶을 돌이켜 볼 때 부끄러운 것 뿐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교회와 우리 목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개혁자의 정신과 모습을 가져야 하는데 현실에 고착되어 마치 중세의 카톨릭과 사제들처럼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이것이 옳다고 생각되어 그냥 살아가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다 .
스트라스부르크의 방문을 마치고 다시 독일과 스위스 경계인 Besel의 Carat Hotel 에 묶었다.
저녁은 호텔에서 돼지 갈비와 튀김 닭 날개가 나와서 먹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9시에 전체가 다같이 모여 평가회를 갖고 취침에 들어갔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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