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백의흠] 개혁가들의 길을 따라 8

백의흠 목사 1 2017.10.1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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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0시쯤 피곤하여 잠이 들었다. 

12시에 잠이 잠시 깨었다가 다시 들었는데 6시에 Morning call 때문에 잠이 깨었다.

샤워를 하고 6시 30분에 예배를 드리는 줄 알고 밑에 층으로 내려 오니 아무도 없다.

룸으로 다시 가려고 하는데 어떤 사모님을 만났다.

1층에서 6시 30분부터 아침 식사가 된다고 한다.

1층에 가니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의 남성수목사님 부부만 식사를 하고 계셨다.

여기 식사는 다양하고 좋았다.

호텔 자체가 아주 고급의 호텔이었다.

열,일곱 정도 보이는 얌전하고 아주 예쁜 검은 hair의 전형적인 독일 아가씨가 서빙을 한다.

남목사님이 “어려 보이는데 이 아침부터 서빙을 한다"라면서 감탄하신다.

 

아침을 먹고 8시부터 주일 예배를 드린다.

호텔의 room도 다양하고 크고 많은데 호텔 끝쪽에서 돌고 돌아 구석의 방을 내 주었다.

그곳도 잠깐 빌리는데 78불이다.

목사님들이 순서를 맡아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9시에 루터가 작센의 선제후인 Friderich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성경을 번역한 Eisenach의 Wartburg성으로 향해 갔다.

멀리서 성을 바라보니 영화에서 보던 성이다.

중간에 버스가 주차를 하고 성까지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성 안으로 들어 갔다.

그런데 실제로 가 보니 영화에서 보던 성들과 똑같다.

나는 중세의 영화를 보면서 그것은 영화 때문에 만든 성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영화에서 보던 것과 똑같다.

천연의 요새가 맞다.

성문 정문 앞에 다리와 이중 문, 적이 쉽게 쳐들어 오지 못하게 만들고 방어하기 쉽게 만들었다.

수백명의 방문객들이 모여 구경을 한다.

성 안의 내부 방에 들어 가는 입장료가 16 유로다.

'왜 이렇게 비쌀까?'하는 생각을 가졌지만 실제로 방 안에 들어가니 돈의 가치가 있다.

입장은 시간을 정해 인원수를 제한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12시 40분에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체이고 시간이 없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문을 통해 입장을 시켜 주었다.

성 내부에는 미로처럼 거의 백 여개의 방이 있는 것 같다.

방마다 유물과 중세 시대의 성 내부의 모습을 보여 준다.

안에는 좁은 감옥도 있는 것 같다.

벽화와 그림도 많다.

어떤 벽화는 모자이크처럼 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니 작은 타이루 조각이다.

타이루를 작게 짤라서 벽화를 벽과 천장에 다 만들어 놓았는데 타이루 같지 않고 선명한 얼굴 모습 그대로 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그 외의 예수님에 관한 그림이다.

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 있을까?

유럽의 그림, 벽화, 조각품, 건축물 등을 보면 감탄을 자아낸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걸작품이고 저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한다.

연회석도 있고 마지막에는 루터가 머물면서 성경을 8개월동안 번역한 방이 있었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성경책만 놓여 있고 작은 장농과 난로만 있다.

아주 초라한 방이었다.

루터가 성경을 번역하던 방이었다.

조용하고 혼자 있는 외로운 방이었지만 종교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방이고 오늘의 우리를 있게 만든 방이었다.

루터가 성경을 번역하여 몇 몇 카톨릭 성직자만 독점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루터의 성경 번역은 그 당시 쿠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를 발명하여 성경이 급속하게 대중화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하나씩 준비해 놓으셨다

 

그 곳에 나와 성 앞에서 찍은 사진들을 아내와 고등학교 카톡 그룹에 올렸다.

친구들은 매일 옷이 바뀌는데 누가 사진을 찍어주고 누가 옷을 골라 주는 지 궁금하다고 배경은 안 보이고 다양한 셔츠와 티를 입고 있는 내 모습만 보인다고 한마디씩 한다.

아내는 “자기 멋있다"라고 말한다.

자기가 골라 준 옷 보고 잘 어울려서 좋다고 한다.

전에는 이틀을 같은 옷 입으니까 '왜 똑같은 옷을 입었냐?'고 하고 '바지는 왜 안 바꾸냐?'고 한다.

 

그 곳에서 내려와 바하 생가와 루터 생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중국 집에서 식사를 했다.|그곳의 음식도 다양하게 맛있게 나왔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서 sunglass를 두고 나왔다.

음식점에만 들어 가면 전화기 전기  charge하느라고 바쁘다. 

내 전화기 battery가 너무 빨리 소모된다.

전화기를 충전하느라고 선그라스를 잊어 버렸다.

나중에 그 곳에 선그라스를 두고 왔다,

음식점을 나오면서 알았는데 차에서 안 가져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다시 가지 않았는데 나중에 차에 와 보니 가방에 없고 가는 도중에 찍은 사진을 보니 선그라스를 쓰고 찍었다.

차도 그 쪽으로 가지 않아 할수 없이 잃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선그라스는 내가 일반적으로 쓰는 가게의 산 것이 아니라 아내가 마샬에서 산 polo이다.

선그라스 생각에 핸드폰을 차 안에서 흘려 의자 사이에 끼어 버렸는데 핸드폰도 차에서 잠깐 내린 사이에 잃어 버렸는지 알고 허둥지둥 됐다.

변목사에게 전화를 걸라고 해서 전화 벨 소리를 듣고 의자 사이에 낀 핸드폰을 찾았다.

 

지금까지 방문한 모든 곳이 옛 동독의 땅이었다.

만약 독일이 통일되지 않았더라면 가보지 못할 곳이다.

동독땅이 이런데 서독땅은 얼마나 더 멋있고 낭만적일까?

특이한 것은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우리가 걸어간 길이 다 상가들인데 모든 상점이 오늘이 주일이라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미국 보다 더 낫다.

미국도 수십년 전에만 해도 주일날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는데 이제는 문을 여는 가게들이 더 많고 모든 mall들은 문을 다 연다.

 

중간에 휴게소를 둘렀다.

화장실에 가려면 돈을 내기 때문에 옆에 있는 맥도날드에 혹시나 하고 갔다.

그 곳에 가니 돈을 안 받았다.

휴게소로 와서 다른 목사님들에게 맥도날드는 돈을 안 받는다고 말을 하자 몇몇 분들이 맥도날도로 가시고 어떤 목사님들은 간단히 먹을 것을 산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1불에 몇 개나 하는 막대 아이스 크림 세개가 10유로다.

비싸도 너무 비싸다.

 

독일의 도로는 미국과 똑같다.

들판과 나무 등 도로의 모습이 미국의 도로의 모습과 똑같다.

미국이 독일보다 더 높은 산들이 많을 뿐이다.

 

차 안에서 가이드 하는 사장님의 권유로 목사님들이 돌아 가면서 한마디씩 한다.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갑자기 세번째로 나를 지적하여 할 말이 없어서 내 이름에 대해 그리고 목사된 배경과 모습을 이야기 했다.

나는 말에 재주가 없다.

말을 잘 못하고 재치도 없고 유모 감각도 없다,

순간적인 지혜로운 말을 못한다. 상황에 맞는 말도 못한다. 

내가 말을 하면 설렁하다.

나는 정식적인 말밖에 못한다.

이것이 나의 약점이다.

나의 아내는 말을 잘한다.

순간적인 말에 대한 재치와 기교가 있다.

15년 전에 뉴욕 서노회에서 New hampshire주의 White Mountain으로 단풍 구경을 갔을 때 차 안에서 돌아 가면서 말을 할 때 내 아내 보고 말을 하라고 해서 나는 아내가 말을 못하는 줄 알고 창피 당할까 봐 내가 대신해서 말을 했다.

그런데 14년 전에 띠아 뜨레스의 마지막 날 가족을 초청하여 발표회를 할 때 내 아내가 그 기를 대표하여 발표를 하는데 그 곳에 참석한 백 여명을 웃고 울리면서 말을 하는데 얼마나 잘하는 지? 내가 놀랐다

같이 십 여년을 살았어도 내 아내의 능력을 몰랐다.

내 아내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을 압도하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내 아내의 말은 재치가 있다.

가끔 내가 "나는 머리 나쁜 사람과는 못 살아!"라고 농담을 하면 아내는 "나는 머리 나쁜 사람과 살잖아!"라고 말을 한다.

고려대 영문과를 그냥 들어 간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나의 말은 재미가 없는 그냥 말한 것에 불과하다.

바울은 내가 말에는 졸하나 글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는데 나는 글에도 자신이 없다.

요새 자꾸 글을 써서 조금은 쓰는 것 같은데 이것도 부족하다.

그래서 글을 쓰고 글을 쓴 다음에 아내의 검토를 받고 아내의 조언을 듣는다.

말의 재치도 은사중의 은사인데, 특히 목사에게는 중요한데.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있는 그대로 살아야지.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보여 줘야지.

노력하고 배우면 좀 더 발전하고 나아질텐데.

지금은 그것을 하기에는 늦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싫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고쳐야 하는데 살다 보니 하기가 귀찮은 것이 많다.

나는 모험도 하지 못한다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그래서  내가 발전하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달구지 관광사 현사장님이 자기 간증을 하신다.

관광 사업을 하면서 크게 성공했다가 먹을 양식이 없을 정도로 망했었다고 한다

다시 재기하면서 오년 전부터 주일 장사를 안 하시고 주일을 범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주일에 자기 관광의 모든 것을 close하기 때문에 주일날 다른 여행사는 꽉차고 만원인데 월요일 부터 토요일까지는 다른 회사는 잘 안되고 자기 회사는 잘 된다고 하신다.

 

오늘 마지막으로 Worms 의회에서 변론한 곳을 찾았다.

보름스에 가니 많은 동상들이 있었다

성경에 손을 얹고 서 있는 루터의 동상이 가운데 우뚝 서 있는데 이것은 1521년에 보름스 의회에서 Carl 5세 황제 앞에 당당히 서 있는 루터의 모습이다

루터의 동상 밑에는 "나는 여기에 서 있다. 나는 달리 할 수 없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Hier stehe ich, Ich cann nicht anders. Gott helfe mir. Amen)이라는 루터가 보름스 의희와 황제 앞에서 한 말이 글로 새겨져 있다

루터 동상 바로 밑에는 루터 이전의 종교 개혁자 4명의 동상이 있다

후스(Johann Hus, 1415)는 손에 십자가를, 위클리프(JOhann Wycliffe, 1387)는 성경을, 발두스(Petrus Waldus, 1197)는 허리에 주머니를, 사보나롤라(Hieronymus Savonarola, 1498)는 오른 손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들은 루터 이전의 카톨릭의 잘못을 지적하며 개혁을 시도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처형되거나 박해 받은 종교 개혁 이전의 종교 개혁자들이다.

그들의 개혁 사상이 루터의 종교 개혁의 밑거름이 된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이다

루터의 동상 바깥쪽 주위에는 루터의 종교 개혁을 도운 헤센의 필립(Phillip) 백작과 작센의 프리드리히(Friedrich) 3세의 동상이 서 있고 루터를 학문적으로 도운 멜랑히톤 (Philipp Melanchton)과 로이힐린(Johannes Reuchlin), 그외도 루터를 도운 스파이어(Speyer), 프리데(Friede), 막데부르크(Magdeburg) 등의 동상이 있다.

 

루터는 1521년 1월 28일부터 5월 25일에 보름스에서 개최된 신성 로마 제국 의회에 출석하라는 소환 명령을 받았다.

루터가 의회에 참석할 경우 신변 안전을 보장 한다는 약속까지 받았지만 그 약속은 하나의 헛 약속에 불과 했다.

보헤미아의 후스도 신변 안전을 보장 받고 갔다가 잡혀서 화형을 당했다.

루터는 4월 19일에 보름스 의회에 참석하여 자기가 주장한 이단 사상을 시인하고 이를 취소할 것인가? 아니면 그의 주장들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자기의 개혁 사상을 취소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나는 여기 서 있다. 나는 달리 할 수 없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라고 말하고 그의 답변을 끝맺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보름스를 떠나 비텐베르크로 향하던 도중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것은 프리드리히 3세가 루터가 곧 체포되어 처형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루터를 아무도 모르게 납치하여 바르트부르크성에 숨겨두어 루터를 보호한 것이다.

루터는 이 성에 머무는 동안에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칼 5세는 의회 마지막 날인 1521년 5월 25일에 루터를 악명 높은 이단으로 규정하고 루터의 사상을 전파하는 사람은 체포하여 처형하라는 내용의 보름스 칙령을 발표하였다.

지금 루터가 “내 주여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라는 찬송을 작곡, 작시하며 부르며 "내가 이 곳에 서 있다"라고 말한 그 자리에 신발을 동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도 루터가 서 있던 그 자리에 발을 집어 놓고 서서 루터의 심정과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목숨을 내건 루터의 각오와 결심.

부럽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루터가 '내가 지금 이 곳에 서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파문이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목숨을 내건 루터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 교회와 신앙도 있고 나도 있다.

 

목사가 되면서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의 결심과 자세가 지금도 나에게 있을까?하는 생각을 갖는다.

 

그 후에  Heidelberg로 이동하여 그 곳에서 한국 음식점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한국이나 미국의 한국 음식점에 비해 맛이 많이 떨어지지만 이 곳에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때문에 다 들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Mannheim의 Wyndham Hotel에 들어 와 오늘은 뉴저지 사랑의 비젼 교회 김은범 목사님과 함께 룸 메이트를 하였다.

오늘은 10월 1일이며 주일이다.

우리 교회는 이명주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고 안권사님의 아들이 추석이라고 송편을 주문해서 가져 와서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 무슬림 흑인 여자가 2불짜리 가짜 hair 하나를 사면서 잘난 체 해서 싸울 번 하고 같이 온 무슬림 복장과 모자를 쓴 흑인 남자가 자기를 때릴 것 같이 해서 때릴까 봐 겁이 나고 눈물이 나는 것을 참았다고 한다.

내가 은영이에게 내년에는 너랑 같이 이태리, 스위스, 프랑스 같이 가자고 했다,

9월에는 유럽 가고, 10월에는 한국 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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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승리인 2017.10.13 09:35
마치 그곳을 다니는 것처럼, 상세함, 자상함, 진솔함까지 느끼게하는 여행기를 감사하게 읽습니다 매일 기다리면서...
남은 일정도 함께 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강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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