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이윤석] 2020년의 성탄절 5 "2020년의 성탄절"

이윤석 목사 0 2020.12.19 09:36

[편집자 주] 성탄절을 앞두고 복음뉴스는 "2020년의 성탄절"이라는 주제의 글들을 연재합니다. 뉴욕, 뉴저지 일원의 목회자들이 쓴 글을 원고가 도착된 순서대로 게재합니다.    

 

 

68dc8ed3b7224b6de5f55e4835fcf605_1608388472_3203.jpg

 

제목 : 2020년의 성탄절   

 

2020년의 성탄절의 풍경은 예년의 상황과 많이 다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여파로 인해 모든 것들이 간소화되고, 이 전염병으로 인해 경제, 교육, 사회가 마비되는 것 같은 현실에 살면서, 과거처럼 성탄절은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교회의 예배와 모든 모임이 제한을 받는 시기에 함께 모여 성탄절의 분위기를 만끽한다는 것마저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침체되어 있고, 모든 환경이 부정적이 되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위축되고 축소되었기 때문에 2020년의 성탄절도 축소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런 축소의 분위기를 잘 아는 듯, 요즘에는 작은 축하 행사와 모임을 기대하는 새로운 트렌드로서 ‘미니마스(Mini-mas)'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런 팬데믹이 가져온 결과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가 되살아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모든 절기들에 대한 견해에 있어, 필자는 칼빈과 개혁주의 선배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청교도들의 올바른  성경적 견해에 의존하고 있다. 후기 교부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일의 성수에서 벗어나 지켜지는 모든 절기들이 로마 카돌릭의 국교화 이후, 이를 맹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곡해되고 오용되어 신약의 진리의 말씀을 퇴색하게 하는데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준수일은 오직 주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한 개혁교회의 올바른 입장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절기를 지킴에 대해 비성경적이라는 비판 일색을 고수하면서, 이에 대한 방향과 실제적인 제시에 대해 침묵한다면, 이 또한 개혁신앙의 전달자로서 무책임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성탄절과 이에 따른 여러 가지 부산물에 대한 성경적인 분명한 이해를 전달함과 더불어, 잘못된 관행과 미신적 마음에 대해 교정이 필요하고, 더하여 이런 절기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 제시가 필요하며, 더하여 팬데믹이란 악조건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때일수록 복음의 적용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기도 하다. 

 

성탄절은 오랫동안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듯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시간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의 성탄절은 복음의 핵심을 변질시킬 수 있는 기독교 문화의 세속적인 명절이라고 할 수도 있다. 현대의 성탄절은 오히려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기뻐하고 즐기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용되는 시간과 환경을 개선하고, 새롭게 하여 의미를 찾듯, 성탄절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하며, 진정한 기쁨으로 환원되기 위한 성탄절이란 문화에 대한 구속적인(Redemptive) 자세가 요구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구속이라는 개념 자체의 사용과 범위는 인간의 구원과 관계되어 사용되어야 하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독교 문화의 변화적 측면(transformational cultural perspective)의 입장에서 사용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성탄절에 기억해야 할 우리의 신앙과 진리는 성육신의 진리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에 감사하며 이 진리를 증거하며 삶에 적용하는 때이다. 우리 주님은 현대의 성탄 캐롤과 연극과 분위기가 묘사하는 것처럼 낭만적인 시기에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상황이었고 그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오셨다.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팬데믹의 상황을 종결시켜줄 백신의 상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 

 

성탄절에 울려 퍼질 메시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창조주이자 우리의 주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되 가난 하고 비참한 환경에 오셨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왕 중의 왕이신 구주께서 질병과 불안이 가득한 환경인 구유에 나셨기 때문에, 이것을 묵상한다면 우리는 2020년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에 얼마든지 복음의 기쁨과 감사를 누리고 전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 팬데믹의 상황이 2000년 전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때 목자들이 받았던 소식에 대해 느끼고 감격해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런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2:3-14)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의 유년 시절을 상기해보아도, 성탄절은 교회와 상관이 없는 불신자들이 교회에 와서 함께 좋아했던 날이기도 하다. 그들이 1년에 한번 성탄절에 교회에 왔을 때의 기억이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접촉점이 될 수 있었다. 만일 지금도 동일하게 성탄절이란 기간에 복음을 모르던 사람들이 그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고 믿어 구원받을 수 있는 배경이 된다면, 그들에게는 참으로 복된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탄절이 기독교 문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마치며, 추억과 즐거움을 찾는다는 점에 있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초대하고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성탄절이라는 문화적인 도구를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2020의 성탄절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기억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신 예수 이름을 받아들이고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긍정적인 면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탄절은 개혁주의 선배들과 우리가 사는 이 곳의 정신적인 토대를 놓았던 청교도들에게 있어서는 금식의 날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탄절은 1년이란 시간 속에서 삶을 재평가하고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이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 속죄가 우리 개개인에게 주는 의미를 음미하며 1년을 반추하며 회개하며 새로워질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절은 과거를 기념하자는 것이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셨다는 진리의 현재적인 적용과 더불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체득 체감하며, 다시 오실 그 날을 기다리는 재림의 진리를 강화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만일 성탄절의 메신저들이 그분의 탄생 이야기만을 들려주고 탄생일을 축하하는 내용에 제한시킨다면, 이런 메시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오히려 세속적이고 비 성경적인 성탄절을 가지게 하는 시간이 되게 할 수도 있다. 2000년 전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 오신 주님께서 복음을 주셔서 새로운 소망으로 일으키셨듯이, 2020년 성탄절은 답답한 환경 속에서도 기쁨과 구원과 은혜를 주시는현재적인 주님을 체험하며, 다시 오실 축복된 그날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성탄절은 새롭게 구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게 만드는 날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복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세상 문화적인 방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기독교적 진리와 양식과 참된 문화를 전달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날을 중요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1년에 한번 행하는 의식이나 절기로 변질시킴으로, 복음의 진리를 희석시키고 퇴색시키는 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절기를 방치하지 않고, 올바르고 정당한 성경적 해석과 조명으로 확실한 복음 진리와 삶을 재천명할 수 있는 날이 되게 해야 한다.

 

이제 2020년 팬데믹 속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은 과거에 그 의미를 상고하지 않고 마냥 지냈던 익숙함으로부터 결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소망이 있으며, 얼마든지 복음이 주어진 상황과 같은 환경 속에서 성육신과 임마누엘의 진리를 적용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2020년 팬데믹의 성탄절에 우리가 많은 제한을 받을지라도, 우리는 모든 첨단 문화적인 환경들을 동원해서 이 진리를 나타낼 수 있다. 또한 가까운 지역에서 이웃에게 도움을 주면서 소외되고 지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가짐으로, 하나님이신 분이 말 구유에 오셨다는 진리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선사하는 커넥션을 활용하여 멀리 있는 가족들과 친척들과도 창의적인 성탄절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팬데믹 기간이 우리의 사회와 마음을 축소시키고 있지만, 외롭고 힘겹게 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오히려 제한 속에서도 작은 것들이 주는 기쁨을 즐길 수 있다. 크게 외치는 캐롤과 크리스마스 장식과 오가는 선물들과 들뜬 쇼핑이 제한을 받는다는 것은 오히려 복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가장 위험하고 비참하고 외롭고, 팬데믹보다 훨씬 더 부정적 환경에 오셨던 주님에 대하여, 메신저들은 얼마든지 이 시대와 공감되는 복음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생명 안전의 위기, 혐오와 차별의 확산으로 인한 사회 안전의 위기, 제대로 일할 수 없기에 다가오는 극심한 경제위기, 민주주의 사상의 오염과 정치적인 분열로 인한 이념의 위기는 형태와 문화만 달라졌을 뿐, 2000년 전에 주님이 이 땅에 오셨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이 팬데믹으로 인한 총체적인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자유와 기쁨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2020년의 성탄절에 우리는 주님의 성육신을 전하고 임마누엘의 진리를 전하고 적용할 수 있기에 오히려 매우 낙관적인 사실이기도 하다. 팬데믹의 성탄절에 우리가 가까운 이웃들과 소통(communication)할 수 있는 방식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복음으로 소통하는 사랑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 뿌리를 내린 우리 주위의 환경과 이런 팬데믹을 가져온 재앙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성육신의 하나님의 사랑과 임마누엘의 진리의 수신자인 우리가 이제는 전달자가 되어 주님의 낮아지심(humiliation)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2020년의 성탄절은 그 어느 해보다 더욱 체험적인 진리의 실천 현장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글 : 이윤석 목사(부르클린제일교회)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