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한준희] 첫사랑으로 번지 점프하다(1)

한준희 목사 0 2019.09.2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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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다고 하면 성도들이 어찌 생각할까?

더욱이 60중반의 노년에 첫사랑 운운한다는 것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 같아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목사에게도 인간적인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고 또 나이가 들어도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나에게는 청소년시절 교회에서 만난 나이 차이가 나는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늘 교회를 중심으로 오빠와 여동생으로 얼굴을 보면서 지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좋아함이라 할까,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나이도 아니고 그런 관계도 아니다, 그냥 자주 만나니까 좋아졌을 뿐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후 나는 군에 입대를 하였다,

 

물론 그동안도 가끔씩 오빠, 동생으로 얼굴을 보곤 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군에서 제대를 했을 때 여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당시 내 앞날의 진로에 대하여 한참 방황할 때 나는 그 여동생과 자주 만났다. 다방에서도, 생맥주집에서도, 제과점에서도 극장에서도 우리는 허물없이 손을 잡고 서울 종로거리를 거닐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술을 먹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횡설수설 이야기하다가 그만 여동생의 마음을 상하게 한일이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겼고 두사람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 이후로 왜 만남이 사라졌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아무튼 내 첫사랑은 별 볼 일없이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면서도 아련하게 남아 있는 그 여동생과의 관계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고, 한번 만나보았으면 하는 미련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이제 할머니가 되어 만나보았자 다 옛추억에 지나지 않는 사라진 사랑이야기이겠지만 그래도 한번 만나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여동생을 만나보려고 찾아다녔다거나 하는 그런 일도 해본 적이 없다.

더욱이 목회자로써의 어렸을 때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여유도 없었고

주어진 내 아내와 자식들과 행복하게 살면서 가정과 목회에 충실하면서 지내왔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여성도가 교회에 새신자로 들어왔다.

첫 만남에 인사를 주고받은 이후 이상하게도 아련하게 그 여성도로부터 45여년전 첫사랑의 여동생의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것이 웬일일까,

웃는 모습에서부터 수줍어하는 모습, 말하는 태도 그리고 외모까지 너무도 닮은 그 여동생이 번지 점프를 했다고나 할까,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목사로써 그런 내 속마음을 들어 낼 수도 없을뿐더러 들어내서도 안 되는 성도와 목사로써의 관계가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난 더 평범하게 대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내 행동과 태도를 가장 예민하게 보고 있는 아내에게만은 이상하게 보여지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여성도 앞에서 태연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나 자신도 무척이나 힘들어 한다는 것을 내 자신도 잘 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정상적인 것은 아닐께다, 결코 목사는 이래서는 안된다. 하지만 나 스스로 제어할 수없는 마음속에 느껴지는 첫사랑의 감정을 뭐라 규정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그 여성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목회자로써 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종교적 규범 앞에서 철저하게 나를 절제시키면서 행동을 하지만 나의 속마음에 상상은 뭐라 해야 옳은 것인가, 죄라고 해야 하나, 못된 노년에 추태라고 해야 하나, 아니 아름다운 첫사랑의 이미지라고 긍정적으로 봐야 하나,

 

목회자로써 어떤 말을 해도 정당화 할 수 없는 첫사랑의 그 느낌을 마음속에서 담아두고 나는 나를 절제하는 훈련을 거듭했다. 그냥 목사와 성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냥 좋은 감정으로 옛 추억을 생각나게 한 한사람으로 주일마다 만난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스쳐지나가는 그 첫사랑의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추억을 죄로, 추태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싶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죄성인 것같다.

 

이게 성정을 가진 인간 목사의 한계인가 보다,

그렇다고 나만 그런 것일까? 혹시 목사님들, 예쁜 여성도를 보면 어떤 감정을 느끼십니까?

이미 이성에 대한 감정이 다 죽어서 아무 감정도 없으신가요?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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