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한준희] 두 분의 은사 목사님

한준희 목사 0 2017.12.1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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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잊지 못할 두분의 은사 목사님이 계신다.

A라는 한분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23년을 모신 목사님이시다. 초등학교 때부터 거의 그분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세례도 받았고 성경공부도, 설교 스타일도, 목회 방침 등 보이지 않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학생회 회장, 청년회 회장, 주일학교 선생, 학생회 지도교사, 집사, 그리고 전도사 부목사까지 거의 그 목사님의 영향권에서 자라났다, 그래서 인지 지금까지 목회를 하면서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그분의 설교 스타일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또 목회 스타일도 비슷하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나는 그분을 닮아 있음을 보게 된다.

 

또 한분의 B목사님이 계신다. 이분은 내가 신학을 공부할 때 나를 전도사로 채용하신 분이다.

왜 전도사로써 다른 교회를 다녔어야 했느냐 하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교단이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같은 교단 소속에 있어야 한다는 법적 조항 때문에 어쩔 수없이 내가 어린 시절부터 다녔던 교회를 잠시 떠날 수밖에 없었었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 A목사님과는 꽤 오랜 세월 친분관계를 맺고 살아 왔고, 우리집 살림살이까지 훤히 알고 계신 분이 그분이다. 그래서인지 나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써도 나는 끝까지 함께 하는 동역자로 인정을 하셨던 것 같았다.

 

그게 나는 무척 서운했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분은 시큰둥했다, 그리고 어떤 조언도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를 한사람의 목회자로 키울 생각을 안 하셨던 것 같았다. 그것이 내가 다른 교회 전도사로 가게 된 결정적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면 내가 전도사로 재직했던 교회 B목사님은 나를 끔찍이도 아껴주셨다. 앞으로 목회를 할 때에 목적이 무엇인지,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직간접적으로 나를 지도해 주셨고 강도사고시, 목사고시에 모든 행정적 뒷받침을 다해 주셨다.

더욱이 내가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 목회를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심한 갈등을 하고 있을 때 유학의 길을 마련해 주신 분도 이분이시다.

 

이렇게 자상하게 뒷받침을 해 주셨음에도 나는 어려서부터 다녔던 교회를 잊지 못하고 목사가 되어 부목사로 그 어린 시절의 교회로 부임해 갔다. 한마디로 B목사를 배반한 것이었다. 이런 배반자를 B목사는 미국 유학의 길을 마련해 주고 공부 많이 해서 돌아오라고 격려해 주신 분이 이분이시다. 결국 그분의 지도하에 나는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고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를 그렇게 인도하셨던 B목사님에게는 별로 정이 안 간다.

그래서일까 한국에 가면 어린시절 함께 했던 A목사님 교회를 늘 찾아간다, 하지만 나를 키워주셨던 B목사 교회는 잘 가지질 않는다. 그저 형식상 인사만 올리고 올때가 많다. 나를 키워주신 고마움을 물질이나 인사치례로 얼버무릴 때가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나도 궁금하다, 어쩌면 A목사님에게는 내적으로 오랜 세월 심어진 정이라 할까(?)

정적인 감정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고, B목사님에게는 이성적이고 지식적인 사회생활에 제도와 외면적인 가르침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지 않아 생각해 보았다.

 

A목사님에게는 내 감정이 자연스럽게 터득되어진 스승이고, B목사님에게는 지적인 노력에 의한 목사로서 해야 할 일을 배우게 해준 스승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A목사님은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내가 그 목사님을 더 많이 동경하고 있었던 목사님이셨고, B목사는 반대로 나를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그것이 외식적이라는 것을 나는 그분의 성격에서 엿보고 있었기에 결국 그분을 동경하지도 사랑하지 않은 이상한 관계였다고 본다.

이 말의 결론은 이것이다, 나는 결국 두 분 다 사랑하지도 공경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목사가 되기까지 필요 관계로 맺어진 스승일 뿐이라 여겨진다.

 

이제 세월이 흘러 두 분 다 80대 중반을 훌쩍 넘긴 고령의 목사님이 되셨고 나 역시 60대 중반의 노년에 들어선 지금 두 분의 스승을 되돌아본다.

과거에 나를 만들어 주신 존경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두 분의 스승이 있다면, 지금 현재 나역시 공경받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스승이 되어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본다.

 

누가 이 시대에 참 스승인가?

우리는 누구를 이 시대의 사표(師表)로 삼아야 하나?

답은 하나다. 우리의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그분을 닮은 시대의 스승이 안보이니 참으로 답답한 시대이다.

주님! 어찌해야 주님 닮은 시대적 사표(師表)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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