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칼럼

 

장소를 구분해야

김동욱 0 2017.01.17 00:44

내가 소년 시절까지 살았던 향리에는 동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분이 계셨다. 요즘 도시의 말단 행정 조직인 동의 수장과는 다른 일을 하시는 분이셨다. 이 분께서 하시는 일은 고함을 지르는 일이었다. 앰프를 이용한 방송 시설이 동네에 설치되기 전에, 육성으로 공지 사항을 전달하는 것이 이 분이 하시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내일이 추곡 수매를 하는 날이라면, 동네의 언덕에 올라 "내일(오늘)은 공판날잉개(공판날이니까)... " 하고 외치는 일이, 그분께서 하시는 일이었다. 마을이 제법 컸던지라, 너댓 군데의 지대가 높은 곳을 골라, 그곳에서 고함을 지르곤 하셨다. 동네에서는 이 분께 소정의 수고비를 곡물로 지급해 드렸었다. 이 분께서 공지 사항을 전달하시는 시간은 약간 늦은 저녁 시간과 이른 새벽 시간이었다. 그 때가 가장 조용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정적을 깨는, "내일(오늘)은..." 하는 소리가 들리면, 동네 주민들 모두가 방문을 열고, 동장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었다.

나는 목소리가 크다. 어머님께서 종종 "큰 애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보다!" 고 말씀하시곤 하셨었다. 가끔은 장난삼아, 동네 언덕에 올라 동장 아저씨의 흉내를 내보곤 했었다. 기계로 측정해 본 적은 없었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로는 내 목소리가 동장 아저씨의 목소리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의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스포츠 중계를 담당하는 라디오 방송국의 아나운서들의 말의 속도보다도 더 빨랐다. 아버님께서는 가끔 "너는 입에 오토바이 달았냐?" 하시곤 하셨었다. 스포츠 중계 방송을 참 잘했었다. 대학 방송국에서 활동하면서 중계 방송을 자주 했었다. 물론 녹음 중계였다. 대학 방송국에 동시 송출 장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 학교가 다른 학교와 농구 시합을 하면, 그 경기 실황 중계를 녹음을 했다. 전반전이 끝나면, 그 녹음 테잎을 학교에 보내 방송을 하곤 했었다. 현장과 두어 시간 정도의 시차가 나는 중계 방송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후로, 종종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자주 했었다. 목소리는 유난히 크지, 말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면 끝이 없지, 이런 나의 단점이 곳곳에서 나타나곤 했다. 식당에서, 다방에서,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한참 떠들다가 얼핏 주위를 쳐다보면, 많은 눈동자들이 나를 향해 있었다. 물론 심히 못마땅해 하는 눈빛들이었다. 아차! 내가 너무 떠들었구나! 목소리를 낮추어 천천히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지만, 조금만 지나면 또 목소리는 높아져 있었고, 빨라져 있었다.

근자에, 그랬었던 나의 모습들을, 많은 목사님들에게서 본다. 식당에서 둘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는데, 마치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듯이 목소리를 높이시는 목사님들이 많이 계신다. 나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와 대화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식당에 와 있는 손님들 모두에게 설교를 하시는 것 같다. 대화의 내용이 긍정적인 것들일 때는 그래도 조금은 낫다. 내용이 부정적인 것들이 주를 이룰 때 -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이에 속한다. 목사님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긍정적인 화제들보다는 부정적인 주제들의 이야기가 훨씬 많다 - 는 당혹감을 갖게 된다. 대화의 내용을 조금만 들어보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들이 목사들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목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대화의 내용은 목사들과는 거리가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그 목사는 설교를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어!", "그 목사는 그렇게 골프장엘 자주 가고, 기도는 언제 해?", "그 목사는 무슨 퇴직금을 그렇게 많이 챙겼어?", "무슨 교회를 그렇게 호화판으로 지어?", "그 목사는 무슨 사례비를 그렇게 많이 받아?" 모두가 부정적인 이야기들 뿐이다. 식당에서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손님들 중에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됐건, 마음 속으로 한심한 목사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를 향해서? 대화에 등장하는 목사들을 향해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목사들을 향해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나 당신들이나 똑 같지 뭐가 달라?

교인들이 함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식사 기도를 한다. 그 식당에는 손님들이 제법 많이 있다. 기독교인들도 있고, 비기독교인들도 있다. 큰소리로 기도를 시작한다. 선교지를 순례한다. 구약을 언급하고, 신약을 언급한다. 한국 교회도 등장하고, 이민 교회도 등장한다. 어른들 이야기도 하고, 아이들 이야기도 한다.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다. 그 자리에 담임목사님이 함께 와 계시면, 더더욱 끝이 없다. 담임 목사님께 자기의 기도 실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기도를 길게 하는 것이 기도를 잘하는 것으로, 기도를 길게 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공공 장소에서 길게 기도를 하는 것은 공해와 같다. 식사 기도는 식사를 위한 기도이다. 한 문장이나 두 문장의 기도면 충분하다. 다른 기도들은 골방에서 조용히 하면 된다. 

공공 장소에서 일장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들, 공공 장소에서 주저리주저리 길게 기도하시는 교인들을 오랫동안 보아 오면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나쁜 습관들을 고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지금은 공공 장소에 가면, 말을 크게 하지 않는다. 빨리 하지 않는다.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기보다는 들으려고 노력한다. 식사 기도는 한번도 길게 해보지 않았다.

목사님들께 부탁을 드린다. 공공 장소와 예배당을 구분하십사고!!! 공공 장소에서는 조용조용히 말씀하시라고!!! 한국인들이 없는 공공 장소에서도 마찬가지다.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떤 이야기라도 큰소리로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는 목사님들이 상당히 많다.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도 조용조용히 대화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너무 크게 떠들면, 그것은 말이 아니라 소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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