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추석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던 날이 내일입니다. 어떤 날도, 추석만큼은 못하다는, 추석이 최고의 때라는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를 지어 먹고 살던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 가장 풍요로운 때가 추석 무렵이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일 년이면 두 차례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날이 설과 추석이었습니다. 설과 추석에도 새 옷 한 벌 얻어 입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했던 때였지만, 제 아버님께서는 설과 추석에는 꼭 새 옷을 사서 입혀주셨습니다. 명절에 새 옷을 얻어 입은 아이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피어 있었지만, 그러하지 못한 아이들은 고개를 숙인채 한쪽 구석에 따로 서 있곤 했습니다.
몇 년 사이에, 저에게 고국의 명절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전에는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쯤이면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명절 인사를 했었습니다. 그 시간이면 부모님께서는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셨습니다. 전화를 받으시면서 "네가 일등이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도 계셨고, "셋째가 먼저 했다"거나 "영민이가 먼저 했다"고 하실 때도 계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먼저 세상을 뜨셨고, 어머님께서도 저희들 곁을 떠나셨습니다. 백부님도, 숙부님들도, 모두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제 명절 아침에도 전화를 드릴 곳이 없습니다. 먼저 세상을 뜬 바로 밑 아우 생각이 나서 명절 아침이면 조카에게 전화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이면 시간에 무척 신경이 쓰입니다. 내가 너무 일찍 전화를 걸어서 젊은 아이들 자고 있는데 깨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무 전화가 늦어서 아이들이 모두 외출한 것은 아닌가,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릴 때는 한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일로 마음을 쓰곤 합니다.
명절은 명절인데, 우리 같은 이민자들에게 고국의 명절은 신문에서나 보는, 방송에서나 보고 듣는, 교회에서나 기억하게 해 주는, 그런 날입니다.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추석이라고, 설이라고, 업무를 쉬는 것도 아니고, 학교가 휴교를 하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명절 전날이면, 카톡으로라도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곤 했었는데, 그것마저 망설여집니다. 저에게 전혀 감흥이 없는데, 그런 메시지는 보내서 뭣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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