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까지 2순 캠프에 모이기로 했었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쳐야 했다. 어제 아침과 같은 메뉴였다.
버스의 짐칸에 짐들을 적재하기 시작했다. 올 때에 비하면 현저하게 짐의 양이 줄었지만, 여전히 짐이 많았다. 짐들이 모두 실리고, 짐칸의 문이 닫혔다.
모두가 손을 잡고 원을 만들었다. 원주민 청년 두 명도 함께 했다. 그 땅을 위하여, 2018 뉴저지 북미 원주민 선교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우리의 안전한 귀가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원주민 대표들이 버스 앞에 나란히 섰다. 우리 팀원들도 줄을 섰다. 축구 경기를 마친 양팀의 선수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나누듯이 우리도 그렇게 했다. 축구 선수들은 악수만 하지만, 우리는 서로 안고 이야기도 하고, 눈물도 흘렸다. 때로는 제법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아무도 재촉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맨 뒤에 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별 모습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내 차례가 왔다. 들고 있던 카메라를 다른 팀원에게 건네 주었다. 내 모습도 담고 싶었다. 원주민 청년 하나가 내 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냐고, 무엇에 감동을 받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안고 있었다. 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왜지? 원주민들 중 어느 누구와도 단 한 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는데... 원주민 여자분이 물었다. "내년에도 뵐 수 있을까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일 년 후의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대답을 한단 말인가?
내가 버스에 오르자 인원 점검이 시작됐다. 모두가 탔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 밖에 서 있는 원주민 대표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금세 원주민 대표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을 감았다. 이제 자야 한다. 자는 게 제일 편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화장실 생각이 난다. 어젯밤에 일부러 커피를 많이 마셨었다. 잠을 자지 않으려고... 작전(?)이 들어맞았다. 졸음이 밀려 왔다. 자고 또 잤다.
우리가 잠을 자게 될 Ohio에서 Michigan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았다. 정이철 목사님께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어쩌구 저쩌구… 제가 오늘밤에 Toledo, Ohio에서 잡니다.” 금세 답이 왔다. “뵐까요?” “얼마나 걸립니까?” “50분 정도 걸립니다.” 만나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버스가 한미언약장로교회에 도착했다. 이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께서 예전에 뉴저지에서 사역을 하셨었단다. 나는 모르는 분인데, 목사님께서는 나를 알고 계셨다. 내 명함의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시며 “익숙한 모습”이라셨다. 아멘넷에 글을 쓸 때의 나를 기억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정이철 목사님이셨다. 정 목사님의 차를 타고 던킨으로 향했다.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무리’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교회 출입문이 밖에서는 열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안전을 위하여 안에서만 열 수 있게 해 놓았다. 내가 들어가야 김종국 목사님께서 취침을 하실 수 있었다. 오늘밤 우리 넷 – 김종국 목사님, 김학룡 목사님, 원도연 목사님, 그리고 나 – 은 유치부실 바닥에 침낭을 펴고 자는 날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하고, 밤 늦게 마신 커피 탓에 잠이 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자리에 누워야 했다. 내가 누워야 다른 세 분이 주무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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