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칼럼

 

교회에는 "저런 사람"이 많아야

김동욱 0 2017.04.05 08:13

교인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고 잦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교인이야?” “저 사람도 교인이래!” 라고 힐난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자주 들려 온다.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칠 때, 그들의 기준점 이하로 보인다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의 삶의 모습이 여느 사람들의 삶 보다는 더 정결하고, 더 순결하고, 더 정직하고, 더 품위있고, 더 교양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인들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니 결코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가 없다. 왜? 교회는 교회에 올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정해놓고 있지 않다. 교회에는 누구라도 올 수 있다. 사깃꾼도, 협잡꾼도, 강도도, ...난봉꾼도, 깡패도, 간음죄를 범한 사람도, 어떤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흉악무도한 범죄자라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교회에 오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저런 사람들”, “저런 인간들”, “저런 인간같지 않은 것들”이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어야 하는 곳이 교회이다. “저런 사람들”이 교회안에 많이 들어와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로 볼 때 교인들의 평균치가 낮아지고 폭락을 하더라도, “저런 사람들”이 더 많이 교회를 찾아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문의 좌우를 넓혀야 하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의 문제는 “저런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문제는 “저런 사람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저런 사람들”로 남아있는 데에 있다. 어떤 모습으로 교회를 찾았건, 교회를 처음으로 나왔을 때의 처지와 형편과 모습이 어떠했건, 시간이 감에 따라,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교인들의 자세이다. 어린아이가 자람에 따라 생각도, 말씨도, 행동거지도 성숙되어 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도 먹고, 신체적으로도 성숙했는데,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여전히 젖먹이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미숙아지고 지진아이다. 세상에 미진아가 있고 지진아가 있는 것처럼, 교회안에도 미진아도 있고 지진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진아나 지진아가 너무 많아서는 안된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교인들의 평균 수준이라고 하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느냐, 퇴보하고 있느냐, 아니면 정체되어 있느냐이다. 강도짓을 하던 사람이 교인이 되었으면 강도짓을 그만 두어야 한다. 난봉꾼이 교인이 되었으면 더 이상 난봉꾼 노릇을 해서는 안된다. 단시간에 옛날의 버릇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단박에 벗어날 수 없다면, 단번에 떨쳐버릴 수 없다면, 조금씩이라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 좀 달라진 것 같아!”라는 평판을 듣게 된다. “저 사람, 교회 다니더니 많이 변했어!’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된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순결해야 한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세상 사람들의 기대치를 훨씬 뛰어 넘는 고결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가 순결하지 않으면, 교회가 고품격을 유지하지 못하면, 교인들을 품을 수가 없다. 상하고 찢긴 교인들을 담을 수가 없다. 교회의 정결함이 더럽고 추한 모습의 “저런 사람들”을 중화시켜야 한다. 교회의 넉넉함이 속좁고 이기적인 “저런 사람들”을 품어야 한다. 교회의 신성함이 “저런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교회에는 “저런 사람들”이 자꾸만 찾아와야 한다. “저런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으려고, 빈손으로 아무 때나 찾아올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교회가 정말 그런 곳인지 정직하게 대답해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들이,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저런사람들”을 기다리며 환영하고 있는지, 진솔하게 되돌아보자!

 

[필자 주] 페이스 북이, 제가 집사였을 때 썼던 글이라고 알려주어, 오늘 아침에 다시 한번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 이곳에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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