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칼럼

밥은 먹는 사람 입맛에 맞아야

김동욱 0 2017.08.1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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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설교학에 근거한 창의적 설교 클리닉" 세미나의 강사였던 김남중 목사가 설교를 밥으로 비유하여 설명했다. 내가 오랫동안 자주 들어왔던 말이다. 조정칠 목사님께서 늘 "설교는 밥입니다. 설교자는 교인들에게 항상 맛있는 밥을 지어주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설교가 밥이라면, 설교자는 밥을 하는 사람이고, 교인들은 밥을 먹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가정으로 눈을 돌리면, 어머니가 밥을 하는 사람이고, 식구들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다.

 

밥이 누구의 입맛에 맞아야 할까? 밥을 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아야 할까? 밥을 먹는 사람의 입맛에 맞아야 할까? 나는 콩밥을 먹지 않는다. 보리밥도 싫고, 현미밥도 싫다. 나는 흰 쌀로 지은 밥을 좋아한다. 아버님은 콩밥을 참 좋아하셨다.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니, 어머님께서는 콩밥을 자주 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콩밥을 먹이려고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셨다. 영양가 이야기도 하셨고, 편식 이야기도 하셨다. 그런 이야기는 나도 익히 아는 이야기였다. 영양가가 어떠하건, 편식이 어떠하건, 나는 콩밥이 싫었다. 그냥 싫었다. 그게 이유였다. 때로는 '배 고프면 먹겠지!' 하는 방법까지도 쓰셨다. 콩밥을 먹지 않는 나에게 콩밥을 주셨다. 어머님께서 콩밥을 퍼 주시면, 나는 즉시 밖에 나가서 빵을 사 먹곤 했다. 어머님께서 생각을 바꾸셨다. 콩밥을 하실 때는, 콩을 솥의 가장자리에 넣고 밥을 하셨다. 밥이 다 되면, 아버님의 밥 그릇에 한 주걱을 퍼 담으신 다음에, 내 밥그릇에 밥을 푸셨다. 그런 다음에 콩을 섞에서 아버님과 식구들의 밥을 푸셨다. 밥은 먹을 사람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

 

설교자는 교인들이 원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 교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의 설교자들 중에서 '설교학적'으로 판단해 볼 때 설교를 썩 잘 하는 사람은 드물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저걸 설교라고 하나?' 싶을 정도의 설교도 많다. 그런데 교인들이 엄청 많다. 왜? 교인들의 생각에 들어맞는 설교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도자는 앞서서 인도하는 사람이지, 추종자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 말이 맞다. 틀리지 않다. 하지만, 추종자들이 따라가지 않는 지도자는 존재할 수가 없다. 초등학생을 단박에 대학생으로 만들 수는 없다. 중학생을 만들고, 고등학생을 만들고, 그 다음에 대학생을 만들어야 한다.

 

비빔밥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비빔밥을 해 주면서 아무리 맛이 있다고 강조해도 그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중화요리 식당에 가면 볶음밥을 먹지 않는다. 왜? 완두콩을 넣기 때문이다. 짜장면 위에 완두콩을 몇 알 얹어주는 곳이 있다. 난 젖가락으로 그 완두콩들을 걷어 낸다. 유별나다고 욕할 사람이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먹기 싫은 것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네 집에 갔었다. 내 식성을 모르시는 친구 어머니께서 콩밥을 하셨다. 콩밥을 안 먹는다고 하면 난감해 하실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먹었었다.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보신탕을 참 맛있게(사람들이 그렇게 평했다) 끓이셨다. 그걸 나에게 먹이시려고 별별 수단을 다 쓰셨다. 온갖 거짓말도 하셨다. 나를 속여서라도, 그 영양가 많은(진짜로 영양가가 많은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보신탕을 먹이시려고. 헌데, 내가 속지 않았다. 속아 넘어가야 하는데, 한번도 속지 않았다. 다른 식구들이 보신탕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푸성귀만으로 밥을 먹기도 했었다. 그래도 내가 (보신탕을 먹지 않고) 버티자, 어머님께서는 보신탕을 끓이는 날에는 '나를 위하여' 돼지고기 요리를 따로 준비하시곤 했다.

 

우리 어머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설교자의 마음은 우리 어머니 같으셔야 한다. 경우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하고 싶은' 설교를 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교인들에게 맞는' 설교를 해야 한다. 비록 설교자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런 설교를 계속 해 나가면서 가끔 설교자가 하고 싶은, 설교자가 해야 하는 설교를 해 나가면서, 설교자와 회중이 하나가 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하더라도, 먹는 사람이 없으면 쓰레기가 되고 만다.

 

호텔에 있는 식당과 시장 골목에 있는 식당, 어느 곳에 이는 식당의 음식이 맛이 있겠는가? 그런데, 어느 곳에 있는 식당에 손님이 많은가?

 

밥을 하는 사람이 꼭 확인해야할 것이 있다.

쌀에 돌에 들어있지는 않은지?
뜸은 잘 들었는지?
밥을 주어도 되는지?

 

설교와 설교자 이야기를 했으니, 한 마디만 더 써야겠다. 설교자들 중에는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 식당 주인은 다른 식당의 음식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다. 식당의 음식에 관해서는 손님들이 이야기해야 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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