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결론
한국교회 초기 선구자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한결같이 주의 영의 감동, 인도, 결단을 하고 한국에 입국하거나 주의 사명을 감당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주의 성령이 그들을 부흥케 하사 때가 되매 그들을 한국으로 부르시고, 세우시고, 사명을 주어 감당하게 하신 게다. 주의 일은 나의 의지나 신념으로 되지 않는다. 오직 주의 성령의 힘으로 됨을 배우게 된다. 주의 영이 임하시면 죽음과 질병, 핍박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교회 선교 초기의 선구자들을 함께 나눴다. 물론 더 많은 분들이 보이지 않게 음지에서 사역을 하신 분들도 많을 게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 주님의 하늘상급을 받으셨고, 이 땅의 교회와 주님의 나라를 위해 하늘나라에서도 주님과 함께 기도하며 응원하고 계시리라. 우리는 결론적으로 이런 선구자들을 통하여 몇 가지 종합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희생이다. 희생이란 단어는 너무 식상하다. 하지만 희생은 말과 이론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이다. 초기 선구자들은 젊은 나이에 자신의 명예, 야망, 출세를 뒤로 하고 중국과 한국에 왔을 때, 그들은 자신의 부인을 잃기도 하고, 자녀를 먼저 천국으로 환송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순교의 재물이 되는 아픔과 고통을 경험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위로와 천국을 소망하며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주님의 명령을 이행 했을 때, 우리 주님이 그들의 섬김을 받으셨다. 희생이다. 당신과 나는 과연 어느 정도 희생적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 주님 앞에 겸손히 물어야 하리라. 희생 없는 믿음은 없다. 그것은 거짓이든 위선이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 나를 드리는 것이기에, 즉 내가 산 제물이 되는 것이기에 반드시 희생이 동반되는 것이다. 그러나 희생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 안에 기쁨과 행복이 싹튼다. 초기 선교사들은 바로 그러한 원리를 알았기에 기쁨으로 이 땅에서 살았던 것이다.
두 번째는 사명이다. 우리가 함께 나눈 선교사들의 삶은 한 마디로 사명의 삶이다. 부흥을 위해 말씀을 전하고, 성경을 번역하며, 그것을 나눠주는 것, 사명으로 하였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들은 겸손히 기도하였으며, 아무리 힘든 전도여행이라 할지라도 기쁨으로 감당하였으며, 때로는 그 사명을 감당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므로 이웃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였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사명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물론 사명을 감당할 때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질병과 싸워야 하고, 물질의 염려도 있고, 인간관계 어려움을 겪기도 하겠지만, 인내함으로 우리 주님만 바라보면,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일꾼, 주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바울처럼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 나가자. 주님이 이 땅에 재림의 주로 오실 때까지 말이다.
세 번째는 위로이다.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신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하였다.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분이시다. 이 땅의 선교사로 오신 분들은 주의 사역 감당 할 때, 말 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다. 가난, 무지, 질병, 억압, 문화, 언어, 기후,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았다. 생명을 무릎 쓰고 항해를 하며, 걸어서 장거리 순회전도여행을 하며, 질병과 싸우면서 복음을 증거 했으며, 그리고 자신의 재능과 물질을 아낌없이 기부했던 이들이었다.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서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포기도 하고 싶고, 쓰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끝까지 승리 하고 천국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상주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위로로 기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가운데 심각한 고난과 역경가운데 있는 이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위로를 기억하자. 반드시 채워 주실 것이니 인내합시다.
필자는 우선, 한국교회 초기 선교를 위해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한 분들을 중심으로 함께 나눴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각 교파별로 나누어 여러분들과 함께 다시 나누길 기대하고, 그분들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하리라. 우리에겐 믿음의 선배들이요, 앞서간 신앙의 모델들이다. 그런 분들을 만남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적 위치를 점검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이정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본질이 아닌 비본질을 붙잡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숫자와 크기를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조그마한 교회라 할지라도 이웃과 세상, 열방을 향해 희생하며, 사명을 다하는 믿음의 덕목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한국 초대교회를 위해 이미 앞서서 헌신했던 그 분들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주님은 주와 복음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해 지금도 위로의 주님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리라. 주여, 이 땅에 부흥이 계속 일어나길 희망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오, 하나님
이 땅은 축복의 땅임이
틀림없습니다.
오, 하나님
한국교회는 축복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린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100여 년 전, 당신은
축복을 심기 위해
위대한 축복의 하늘 대사들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오, 하나님
이제 꿈이 보입니다.
사명이 다시 살아납니다.
희생을 각오하렵니다.
당신의 위로가 반드시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멘.
<부록>
<언더우드의 기도문>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언더우드의 내쉬빌 연설문>
언더우드가 1891년 10월, 내쉬빌 전국신학교 선교사 동맹 모임에서 행한 연설문
여러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습니다. “한국이 로마 카톨릭 국가가 되느냐 기독교 국가가 되느냐?” 만일 기독교회가 선교의 기회를 놓친다면 한국은 로마 카톨릭화가 될 겁니다. 그리고 복음의 빛은 영원히 사라질 겁니다. 이교도들은 어둠가운데 있고, 로마 카톨릭은 눈먼 장님입니다. 우리의 동역자들이 그곳에 먼저 입국하므로 성공적인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습니다.
1886년 7월 11일 하나님의 섭리로 첫 번째 회심자가 세례를 받았고,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본래 외국에 대한 중국책을 공부하고 있었으며, 특히 선교사들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 책에 보면 모든 외국인들은 기독교인들이며, 선교사들의 책은 그들의 왕을 경멸하고,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를 버리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는 상스러운 종교라고 진술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국인들을 알아보고 싶었으며,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위해 외국 사람들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그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몇 주 동안 망설이다가 우리 집에 찾아 왔지요. 마침 그는 우연한 기회에 두 권의 책-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그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를 찾아왔는데 얼굴이 해같이 빛났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되돌려 주면서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를 교회에 참석하거나 세례를 받으라고 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위해 행한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에 어느 날 그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하길, “세례를 받을 수 있을 런지”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어는 명확하지가 않아 우리는 그 말이 무슨 의미냐고 물었지요. 그는 명확하게 말하길, “나는 세례를 받고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한 명의 회심자를 얻는데 6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2년 만에 한 명의 회심자를 얻었습니다! (이 사람이 노춘경, 혹은 도노사/별명-라는 사람입니다. 역자주) 1886년 겨울 서울에서 선교사들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해에 20명의 영혼이 주께 돌아오기를 위해 기도로 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해가 가기 전에 장로교인만 23명이 모이는 조직교회(새문안 교회, 역자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문호가 개방된 것은 1882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일꾼들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한국인 가운데 이수정이 일본에서 회심했습니다(한국 초대교회 이야기 참고). 그는 한국에 주의 복음을 증거 할 형제들을 보내 달라고 편지를 미국 선교부에 계속 보냈습니다. 1883년 그 소리를 들었지만, 한 사람도 가는 이가 없었습니다. 1884년에도 또 일꾼을 보내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내가 간다!”라고 했지만, 여전히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선교의 역사가운데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교회는 후퇴하고 선교지에 사람들을 보내기를 꺼려했는데 그곳에서 첫 번째 회심자가 2년 안에 나왔습니다. 1884년 의료선교사(알렌)가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1885년에는 첫 번째 목회자 선교사(원두우)가 입국했습니다. 1887년 23명의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1888년 100명의 세례교인을 얻었습니다. 열방의 백성들이 우리를 오라고 부릅니다. 작은 마을 경계 내에서는 선교사를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5일에 한 번 만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쪽복음을 읽습니다. 한 참 후에 그들은 서울(경성)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냅니다. 그리고 말하길, “당신들은 우리가 있는 곳에 와야 합니다. 그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걸어서 다시 30일을 눈 덮인 산을 넘어, 위험한 강도와 무서운 짐승을 피해 돌아갑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사람이 없다고 말을 해야만 합니다. 허기기고 목말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줄 수 없는 이 안타까움! 매우 많은 시간 우리는 한국의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아니다.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여행 중에 한 번은 ‘의주’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압록강 북부에서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권서인(성경 배포자)이 많은 책들과 소책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방어할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관에 들어갔을 때 그 여관의 마루에 앉아있는 한국인 몇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누군지요?” 라고 묻자,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내 방에 남녀가 모여 들었을 때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아들 예수님에 대해 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서울(경성)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의 문이 3-4년 안에 열리기가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을 만나는 선교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영원한 양식”이 없어 죽어가는 이 사람들-생명의 떡을 떼어 달라고 요구하고 찾고 있는 사람들. 주안의 형제들이여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하기 원합니까? 하나님이 우리 앞서 행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당신은 가서 무엇을 하길 원합니까?” 만일 우리의 지식이 지금 어떤 일정한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 한국에서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지식일 겁니다.
출처:The Union Seminary Magazine, "The Progress of Missions In Korea" 조경현 번역
<에필로그>
어느 날 이 원고를 정리하면서 필자가 즐겨 찾는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들린 적이 있었다. 주제 자체가 심상치 않아 클릭하여 그 내용을 읽어봤더니 충격적인 것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져 있었다.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내용인데, 간단하게 말하면 반기독교 운동은 현재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공감이 되는 것이지만, 그 글을 읽고 나는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도 한때 목회를 했던 목회자로서 마음의 가책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듯 보인다. 그렇게 열심히 모였던 교회, 만나면 전도하고 모이면 찬송하고 기도했던 교회, 오로지 목양만을 했던 목회자들, 그런 목회자를 존경했던 교인들, 이젠 먼 추억 속에 사라졌던 말인가.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첫째는 이 글의 주인공들은 10대에 회심하고 주의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20대에 헌신했다는 것이다. 무디, 귀출라프가 그러했고, 원두우, 아펜젤러가 그러했고... 언젠가 어떤 교회 목회자와 청소년 사역에 대해 나누면서 이런 말을 하였더니 나에게 청소년들을 위한 특강을 부탁하기도 했다. 우리 주님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 가운데 역사하신다고 확신한다. 그러하기에 10대 청소년 교육이란 매우 중요하며 우리가 투자하여야 할 영역이다
귀한 원고를 보내주신 조경현 목사님과, "선구자들"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도 저의 글을 객관적으로 읽어 보니 고쳐야 할 곳이 있더군요.
함께 읽어 주신 여러분들과
복음뉴스 담당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