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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가들의 길을 따라 12

백의흠 목사 0 2017.11.05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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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10시가 되어 잠을 잘려고 했는데 김은범 목사가 들어 오지 않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혹시 잠이 들었다가 김목사가 들어 오는 소리에 잠이 깨면 다시 잠을 들지 못할 것 같아서.
김목사가 다른 목사님이 함께 모여서 game을 하는데 붙잡혀서 같이 마피아 게임을 하다가 12시에 들어 왔다.
12시에 잠이 들었다가 4시 30분에 김목사의 전화기에 알람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났다.
새벽 기도회를 가기 위해 맞혀 놓은 알람이다.
기도를 하고 6시에 샤워를 하고 6시 30분에 식사를 했다.

이번 호텔은 별로였다.
인터넷 접속도 되지 않아 로비에 가서 겨우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고 방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안 됐다.
8시에 칼빈의 생가가 있는 Noyon으로 향하였다.
1시간 20분 정도 달려 프랑스 시골 마을인 노와용(Noyon)에 도착했다.
노와용의 인구는 4,300명인데 종교 개혁자 칼빈의 생가가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신교도인이 한명도 없다고 한다.
칼빈의 생가에 도착하니 조그만한 3층 집이다.
칼빈의 생가는 16세기 말에 카톨릭 교도 연맹에 의해 파괴 되었고 17세기에 조그만 마당을 가진 가옥이 신축되었는데 판화와 사진 그림등이 약간 전시되어 있다.
1차 세계 대전까지는 노와용 시청에 소속되어 있었고 1914년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이 집을 “개혁자의 생가"라는 표지말을 붙였다.
2차 세계 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1954년에 복원되었다.
이 박물관은 프랑스 개신교회와 노와용 시의 공동 위원회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는 종교 개혁에 실패 했지만 칼빈같은 위대한 종교 개혁자를 배출하였다.
독일에서 종교 개혁자 루터는 크게 추앙을 받고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칼빈을 홀대한다.
독일에는 수많은 루터의 길이 있는데 노와용에서 칼빈 생가 앞의 길이 작은 칼빈 길이다.

칼빈의 생가를 나와 앞에 있는 노와용 노틀담 성당을 방문했다.
오래되어 벽돌들이 다 낡았지만 엄청나게 큰 성당이다.
안에 들어가니 안에도 오래된 조각들과 동상들이 있고 한쪽 편에는 10여명의 여자들이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유럽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은 마을의 중심에 성당이나 교회가 있다.
가장 중심지, 가장 좋고 높은 곳에 성당을 짓고 그 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 되었다.
유럽은 종교가 중심인데 이제는 그 종교는 사라지고 단순히 문화 유산이 되고 돈벌이에만 이용하고 있다.

칼빈의 생가를 둘러 파리 시내로 다시 와서 프랑스 식당에서 프랑스 점심을 먹었다.
프랑스 요리는 너무 양이 작다.
점심 식사를 하고 에펠탑(Tour Eiffel)으로 행했다.
날씨가 쌀쌀한 덕분에 줄서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올라 갈 수 있었다.
올라가면서 밑을 보니 아찔했다.
그러나 안전하기 때문에 재미있고 스릴이 있다.
철로 이런 거대한 탑을 백여년 전에 만들었다는 자체가 기적이고 놀라운 일이다.
이런 선조들의 때문에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살고 있다.
그 곳에 파리 시내를 본 느낌은 뉴욕의 Empire State 빌딩 꼭대기에서 보는 것보다 더 황홀하고 멋있었다.
단순한 고층 빌딩이 있는 뉴욕 보다는 고대 유적이 함께 어울려 있는 파리가 더 멋있다.

유럽을 방문하면서 은영이에게 미안하다.
은영이에게 금년 10월이나 11월에 프랑스나 이태리를 같이 가자고 계속 카톡을 보냈다.
나만 보면 본 것이 아니다.
아내와 같이 보아야 완전히 본 것이다. 
에펠탑에서 내려 와서 또 사진을 찍었다.
에펠탑 밑에는 흑인들이 여러 크기의 에펠탑 모형의 열쇠 고리를 팔았다.
작은 것은 1불에 5개씩 해서 10개를 쌌다.
은영이가 자꾸 선물을 사오라고 야단이다.
칼은 부엌에서 요리할 때 쓰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고 "나만을 위한 선물을 사오라"고 야단이다.
"이렇게 돈을 못 쓰는 사람이 어떻게 남에게는 수천불씩 그냥 주냐?"고 투덜된다.
26년을 같이 살았어도 아직 아내 마음을 모르는 남편이 한심스럽다.
사실 나는 선물을 살 줄 모른다.
아내와 애들을 위한 선물을 사 봤어야 알텐데 평생 선물이라고는 한번도 산 적이 없으니.
14년 전에 한국에 다녀올 때 어린 아들이 자기 장난감을 사오라고 했는데 그 장난감을 못 찾아서 그냥 왔는데 내 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이 내 가방을 뒤지더니 자기 선물이 없는 것을 보고 대성통곡을 한다.
지금도 아내는 그 일을 이야기 하고 나도 그 때 일만 생각하면 아들에게 미안하다.
에펠탑 열쇠 고리 10개를 쌌다고 하니 가격이 싼 줄 모르고 "짠 우리 남편이 웬일이냐?"고 한다.

이제 이 곳을 출발하여 Notre Dam 성당으로 향하였다.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 소설로 그리고 영화로만 대하던 유명한 노틀담의 성당에 내가 다 가게 되다니. 
오늘은 이 곳을 찍고 다음은 바디칸의 베드로 성당, 이태리의 밀라노 성당,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을 보아야 할 차례다. 
모든 곳이 다 기대된다. 

미국은 자연을 구경하고 유럽은 건축과 문화 유산을 구경한다.
미국은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고 유럽은 인간이 만든 유적에 감탄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능력은 대단하다.
인간이 자신들의 그런 능력을 믿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거역한다.
나는 대단한 인간의 유산을 볼 때마다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성이 나타나 보인다.

노틀담 성당에 오니 입이 벌어 진다.
성당에 조각품 들이 어떻게 저렇게 멋있을 수가 있을까?
거대한 성당도 멋있지만 조각품은 감탄을 자아낸다.
지금까지 본 성당이나 조각품도 이보다 더 멋있을 수가 없다.
교회 건물을 거대하게 짓는다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그 건물에 조각품으로 치장을 했다.
어떻게 다 만들었을까?
단순한 조각품이 아니라 걸작품들을.
프랑스의 모든 건물들에 조각들이 있다.
파리의 일반적인 건물이 7층으로 규격을 맞추었다고 하는데 그런 건물조차도 조각물이 있다.
길거리의 모든 건물이 7층이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당에 들어 가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캐나다의 성당은 돈을 받았는데 여기는 입장료가 없다.
당연한 것인데.
성당 안도 엄청나게 크다.
유럽의 성당이 거의 다 비슷하다.
성단 내부에 들어가니 각종 조각품과 벽화, 그야말로 작품이다.
감탄 자체이다.
거대한 성당의 내부와 옆으로 고해 성사를 하는 room들과 조각품, 벽화, 그리고 그림들, 장식들로 이루어진 방들이 많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마치 뉴욕의 맨해튼 거리만큼 사람들이 많다.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Louvre Museum으로 향했다.
루브르는 세계적인 가장 유명한 박물관이지만 이 곳은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인 위그노를 학살한 장소다.
1572년, 8월 24일, 이 날에 루브르 박물관 앞의 생세르망 성당의 저녁 종소리에 맞춰 위그노 대 학살이 일어났다.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는 처음에는 위그노를 보호했지만 자신의 권력기반을 안정시키는데 방해가 된다는 판단하에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프랑스의 바시에서 일어난 탄압을 계기로 종교 전쟁이 일어나 1562년부터 위그노에게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부여한 1598년, 앙리4세의 낭트칙령을 발표할 때까지 8번의 종교 전쟁으로 이어졌다.
세번의 종교 전쟁 후 평화 협정으로 종교적 관용을 누리던 위그노들이 성 바돌로매 축일이자 프로테스탄트 교인인 앙리 드 나바르와 섭정 카타리나의 딸 마르가리카 드 발루아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였는데 앙리 2세의 황후였고 샤를 9세의 어머니로 섭정이었던 카타리나의 명령에 의해 위그노들을 대학살하였다.
이 때 죽은 위그노가 1만에서 10만명에 이른다.
그 후, 바돌로매 축일의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앙리 드 나바르가 1594년 2월 27일, 대관식을 갖고 왕위에 올라 앙리 4세가 된다.
위그노였던 앙리 4세는 전쟁으로 지치고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천주교인의 도움을 받고자 구교로 개종하고 위그노에게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부여하는 낭트 칙령(1598년 4월 13일)을 발표하여 내전을 종식시키고자 하었다.
낭트 칙령은 위그노에게 광범한 종교적 자유를 주었으며 개인의 종교적 믿음에 대하여 사상의 자유를 인정한 첫 사례이다. 
그러나 천주교회가 이에 호응하지 않았고 결국 한 세기 후인 1685년 10월에 루이 14세의 퐁텐블로 칙령에 의해 낭트 칙령이 폐지되고 위그노들에게 훨씬 더 혹독한 박해를 가해 약 40만명의 위그노들이 영국, 네덜란드, 프로이센 등으로 망명하였다.
위그노들은 주로 상업과 공업에 종사해 왔으나 그들이 집단적 망명으로 프랑스는 이후 극심한 어려움에 처하였고 위그노의 망명을 도운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이 가능했다.
그 후 루이 16세가 관용 칙령을 선포한 1787년 이후에야 프랑스에서 개신교가 다시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런 피로 얼룩진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한다.
종교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4시 30분에 예약을 했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쉽게 들어 갈 수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의 안 밖으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엄청난 돈이다.
문화 유산으로 관광으로 돈을 벌어 드리는 것은 효과적인 것 같다.
나라를 세계에 알리기도 하고 불경기도 없고 얼마나 복된 나라인가?
우리 가이드가 안내해서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는데 김국중 guide의 해박한 지식과 설명에 감탄을 한다.
수많은 박물관의 모든 그림, 조각 모든 소장품에 대해 꿰뚫고 있다.
파리 뿐만 아니라 유럽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줄줄이 설명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고대 조각품, 중세, 벽화, 르네상스 그림이 너무 많고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박물관 안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 다니지만 레오나드르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 사람들이 더 많다.
다른 그림들은 큰데 모나리자의 그림은 아주 작았다.
소장된 그림 중에 제일 작은 것 같다.
제일 작아도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고, 세계에서 제일 비싸고 유명하다.
그런데 '내가 모나리자를 원화를 봤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사진을 찍기 바빠서 정말 중요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잊어 버렸다.
신비의 미소인 모나리자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는데 주객이 전도된 한심한 나의 모습이다. 

9시 45분에 파리 공항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구경할 수 없어서 6시 30분에 아쉬움을 남기며 박물관을 나왔다.
전체 박물관의 소장품중에 1/10도 못 가 본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없으니 어찌 하겠는가?
나는 은영이와 같이 와서 천천히 봐야겠다.
파리 거리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가는 곳마다 거리마다 다 문화재다.
수많은 모든 거리의 건물은 7층으로 규격화 되어 있다.
“파리, 파리”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고, “역시, 파리이고" 세계에서 관광객이 제일 많이 모이는 나라가 프랑스인 이유를 알겠다.
파리는 패션과 유행의 도시가 아니라 문화재의 도시이고 관광의 도시이다.

박물관을 나와 한국 식당에 가서 닭도리탕을 먹고 파리의 Orly Sud 공항으로 왔다.
8시에 도착하여 짐을 부치고 gate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다.
웬만한 거리는 특별히 유럽에서 여행은 비행기보다 고속 전철로 가는 것이 더 빠르고 시간이 절약된다.
시내에서 공항까지 가는데 교통 체증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check in하고 짐을 부치고 boarding하는데 그리고 출발할 때까지 대기하는 시간이 걸려서 훨씬 더 시간이 소비된다.
사실 유럽에서 비행기 여행은 국내나 똑같다.
보딩을 하기 전에 기내로 가져 가는 bag의 크기를 다 조사한다.
미국 비행기는 기내로 가져 가는 가방의 크기를 조사하지 않는데 여기서는 철저하다.
9시 20분부터 보딩을 시작하여 9시 30분에 자리에 앉았다.
우리의 비행기는 Transavia이다.
Amsterdam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행기도 미국에서 유럽 올 때의 비행기 만큼 컸다.
자리가 거의 꽉 찼다.
내 왼쪽 옆자리는 50대의 백인 남자이고 왼쪽은 60대의 백인 여자이다. 
은근히 자리가 비웠으면 했는데 양쪽으로 다 찼다.
변목사 자리의 한쪽 옆자리는 비었다.
그래도 한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니 부담이 없다.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한국 사람들이 여럿 있다.
내 뒷자리는 젊은 연인의 한국 남녀가 탔고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데 연휴를 맞이하여 파리에 갔다가 암스테르담으로 여행을 가는 중이라고 한다.
미국 국내나 미국 항공사의 Stewardess는 나이 든 여자들도 많고 한국 항공처럼 예쁜 스튜어디스가 없는데 여기 항공사의 모든 스튜어디스는 젊고 예쁘다.
9시가 되어 이륙한다.
비행기 안은 TV도 없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스튜어디스가 음료와 과자를 담은 카트를 끌고 온다.
나는 음료는 주는 걸로 생각하고 coke를 요구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의자 앞에 있는 paper를 보니 coca Cola 한 캔이 2.80유로이다.
엄청 비싸다. 
승객 가운데 아주 적은 손님들만 비스켓과 음료를 사먹는다.
결제는 전부 크레딧 카드로 한다.
11시에 착륙하였다.

그런데 터미날 게이트까지 가는 시간이 좀  걸린다.
공항을 빠져 나와 Dorint Hotel가는 셔틀 버스를 기다려 12시에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오목사님과 같은 방에 묶고 나는 내일 조금 일찍 떠난다.

류목사님과 함께 내일 아침 6시에 떠나자고 말을 했다가 나의 비행기 시간이 한시간 더 느려서 나는 7시에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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