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목양교회(담임 장동신 목사)는 8월 18일 주일에 "한 생명 초청 잔치" 주일 예배를 드렸다. 장동신 목사는 요한계시록 2장 12-17절을 본문으로 :생명의 돌멩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아래는 장동신 목사의 설교 내용이다.
제목 : 생명의 돌멩이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2~17절
본문 1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들으라.” 그리고 하신 말씀이 이기는 그에게 흰 돌을 준다. 그 돌에 본인만 아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받는 자는 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알려면 받아야 합니다. 받는 그 사람만 아는 게 있습니다.
결혼을 경험 한 분에게 신혼 좋았나? 물으면 “좋았다.”고 하는 데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서로 싸웁니다. 죽자고 싸웁니다. 싸우는 기술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러면서 상대를 이겨 먹으려 합니다. 그렇게 이기는 건 이기는 게 아닙니다. 상대 죽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압니다. 이런 것은 이기는 게 아님을 압니다. 서로 죽는 겁니다.
우리가 성장한다, 변화한다는 것은 이겨내는 것입니다. 어려움, 환경,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걸 성숙, 성장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좋았던 추억이 있지만 그게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추억이 상황을 이기게 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기억들이 오늘을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문제는 오늘을 이기는 힘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기는 방법을 압니다. 몰라서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하지 않아서 이기지 못하는 겁니다. 이기는 행동이 있습니다. 용서, 사랑, 이해함, 관용, 베푸는 것, 남을 나보다 낫게 여김, 양보함, 다 압니다. 그런데 왜 못 이기나요? 행동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몰라서 못 이기지 않습니다. 이기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기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이기지 못합니다. 이런 우리를 성경은 지혜롭게 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바보는 결심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심을 누구나 합니다. 안 살아내면 못 이깁니다.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과로 들어납니다. 그런데 삶의 지혜는 이기는 자는 싸우는 과정에서 알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게 승리자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이기는 쪽은 지는 쪽의 상황과 형편이 보입니다. 안 보이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보이니까 이깁니다. 이미 이긴 싸움을 싸웁니다. 그래서 이긴 겁니다. 이기는 자는 인내도 사랑도 가능합니다. 이해도 포용도 됩니다. 지금 나는 불안한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의심하고 점검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지고 있는 겁니다.
본문 17절 다시 읽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긴 자에게 하나님이 돌을 주는 데 받는 자만이 아는 비밀이 그 안에 있습니다. 이게 영적 비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7개 교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중 본문에 <버가모>라는 교회 나옵니다.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버가모는 아주 험악한 동네입니다. 사단이 역사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안디바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사단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은 자들, 충성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믿음의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믿음 갖기를 소원해 봅니다. 축복합니다.
그런데 (14)~(15)에 책망할 것이 있다면서 구약의 이야기로 말씀 합니다. 내용을 설명하려면 조금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설교가 지루해 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버가모교회>가 어려운 환경에서 순교자를 배출한 교회이지만, 아직도 범죄 하는 자가 있고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이겨야 한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점을 주목합시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험하고 힘들어도 믿음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악하고 우릴 흔들어도 그 안에 우리를 향해 “참 하나님의 사람들이다.”는 평가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12주 전부터 오늘을 준비했습니다. 목사가 성도님들께 부탁을 했습니다. 전도하고 초청할 때 한 번만 와 달라고 하라. 목사 체면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이 누굴 데리고 가야 한다. 그러니 제발 한 번만 와 주라. 이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오시게 된 것은 이런 과정이 있었습니다.
저를 돌아보니 첫 미국 왔을 때보다 어느새 적응되고 사는 나를 봅니다. 많이 달라지고 성장한 모습을 봅니다. 아직까지 변화하지 않았다면? 성장되지 않았다면? 나아지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어른이 됩니다. 성장하고 자라면서 부모는 기쁩니다. 부모의 마음은 내 자녀가 나 보다 커지기를 바라는 것이 정상입니다. 나를 돌아봅니다.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이기고 있는가? 불안한가? 나는 아는 가? 아직 불안안가? 내 손안에 생명의 돌멩이를 쥐고 있는가?
몸은 어른인데 생각이, 마음이 아이인 사람이 있습니다. 침례신대 정동섭 교수는 이를 ‘어른 아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른 아이는 그냥 살겠지만 그 옆의 사람은 힘듭니다. 여전히 도와줘야 하고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만 4년 전에 두 교회가 합쳤습니다. 나아질 줄 알았습니다.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져 갑니다. 굳어지는 느낌입니다. 하나로 각각 있을 때보다 변화한 것이요 성장한 것은 맞지만 다시 원점으로 가는 모습이 목사에게 보입니다. 이러다가는 반드시 멈춥니다. 힘들어집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일이 됩니다. 이 때 전도가 사명이기도 하지만 깨어나기 위한 방향 제시하고 한 생명 전도행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우리의 상황 속에 오늘 초청받아 오신 분들이 오시게 된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초청에 응해 주시고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둥근 넥타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늘 바쁜 부흥강사가 넥타이를 둥글게 한 상태로 목에 걸었다 뺐다 하는 넥타이를 둥근 넥타이라 합니다. 어느 새벽예배 시간에 늦잠을 잤는데 담임목사님이 깨워 역시 이 넥타이를 급히 매고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웃습니다. 그래서 강사가 담임목사에게 고개를 돌려 왜 교인들이 웃느냐 묻습니다. 이 때 담임목사님의 대답이 “강사님, 넥타이를 매긴 했는데 와이셔츠를 입지 않으셨네요.” 합니다.
우리가 늘 하고 사는 그 방식으로 살다보면 이런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돌아봅시다.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본문 계시록을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주신 책인데 그런데 안 풀리면 이상하지 않나요? 문제는 죄의 속성으로는 볼 수도 이해되지도 않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주실 때에는 계시를 알리고자 하심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럼으로 영적으로 보게 되면 열리는 책입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승리자에게 내가 돌을 주겠는데 그 흰 돌에 새겨진 이름이 있다고 하십니다. 받는 자 만이 안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 돌을 받을 수 있을까요?
16~17절이 답입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세상과 죄를 이기라 그리하면 생명의 돌을 준다, 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믿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받으면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안에 주어진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비밀이 있는 줄 압니다. 이 은혜 안에 살아갑시다. 또 이 축복 안에 거하고 살아가는 생명의 돌멩이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동욱 기자ⓒ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