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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단상)

조경현 0 2019.05.15 00:16

세상 살면서 상처(wound) 없는 사람은 없다. 이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사람이 무인도(deserted island)에서 혼자 아무의 간섭도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상처가 있더라도 어울려 사는 것이 감사요, 즐거움이요, 그리고 기쁨이다. 해서 우리는 언제나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을 소중한 동반자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해서 필자는 오늘부터 타인들을 볼 때 시선을 바꾸기로 다짐한다.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가 아닌 사랑과 감사의 텔레파시를 보내야겠다.

 

한국에서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자면 부딛쳐야 한다. 독불장군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나름대로의 처세술이 필요하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삶의 처세술을 세웠다. 첫째, 나보다 남을 소중히 여기자. 사람은 누구나 자기애(selfish love)가 있다. 해서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다. 만일 남을 소중히 여기면 그 사람이 나를 소중히 여겨줄 것을 믿는다. 성경은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정신이요, 그런 삶을 요구하고 있다(22; 39). 사람들이 자기 몸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나? 남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고자 하여야 한다.

 

둘째, 사랑받기 보다는 용서(forgiveness)하며 살자. 세상은 사랑보다 달콤한 단어가 없을 것이다. 유행가 가사에도 이것이 빠지면 노래가 안된다. 그만큼 사람들은 사랑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을 용서하는 데에는 매우 인색하다. 그리고 누구로부터 받은 상처를 원한으로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다. 그리고 때가 되면 원수를 갚는다. 아니다. 이는 건강한 삶이 아니다. 필자는 용서하는 삶을 살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해서 난 무조건 용서하는 삶을 시작하고 한다.

 

홍대 부근에 성-스캔들(sex scandal)을 일으킨 한 목사에 관한 기사가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왔다. 아직 사람들은 그를 불신과 정죄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해서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은 윤리적 잣대를 가지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런 기사나 말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깨끗하고 무흠한 삶을 살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 물론 그 목사의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회개-새로움-사역)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의 몫이다. 그 교회 교인들이 더 정확하게 확인하고 처리했을 것이다. 이젠 용서하자.

 

마지막은 목적이 아니라 의미(meaning)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자. 젊었을 때는 목적이 중요했다. 해서 어떻게 해서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달렸다. 필자 역시 젊었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렸을 때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 이후에 그 욕심을 줄였긴 했지만 내 자신의 브레이크가 말을 안들을 때도 있다. 그때는 그게 중요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것이 의미로 빠뀐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변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생의 끝은 결국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은 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언어와 문화(language and culture), 그리고 사고방식(thinking style)이 다른 곳에서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언어가 불통하므로 오해되는 부분들이 있다. 상대방이 무어야 했는데, 그것을 정확히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결과는 자신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의 문화적 기준에서 타민족의 문화 속에 살 때, 본인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음식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한인들은 우리들의 입맛이 있다. 언제까지 햄버거만 먹고 살 수 있겠는가!? 가끔은 얼큰한 김치찌게, 순두부, 그리고 설렁탕 등을 먹어야 마음의 속이 풀리지 않은가!

 

게다가 인간관계(human relation)는 어떤가! 사실 우리들이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무인도(deserted island)에서 살 수 없다. 물론 짧은 시간 그곳으로 여행은 갈 수 있어도 지속적으로 장기적으로 살 순 없는 일. 그런데 이웃들과 어울려 살자면 마찰이 반드시 있다. 그때 상처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 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만일, 그것을 거부하면 그것들이 쌓여 마음의 암(cancer)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상처는 또 다른 곳으로 전이된다.

 

필자가 미국의 한인들(Korean American)을 관찰한 결과, 그들의 문제는 이것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세상 말로 하면 스트레스(stress)인, 계속 쌓아 놓고만 있는 것. 이것을 신앙적으로 말하면, 기도로 치유(healing)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해서 한인들 가운데 지혜로운 이들은 취미생활을 통해 그때 그때 삶의 스트레스를 풀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이들은 그래도 건강하다. 그러므로 미국 사회에서 살려면 성격이 내성적이기보다는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사람들이 유리하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려면 맘의 상처(혹은 스트레스)를 인간적으로 푸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영적으로(신앙) 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초청했다(11; 28).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무거운 짐(life’s burdens)을 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런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초청하신다. 그 분에게 갈때 우리의 짐은 덜어질 수 있고, 맘의 상처가 치유가 된다.

 

필자는 그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이든 미국이든 교회들이 유약(so weak)하다. 이유는 좀 더 고민해야 하겠지만, 영적 파워의 문제이다. 이는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의 영혼은 기도할 때 강해진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영적통로(spiritual channel)이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아내에게 치유사역자(healing minister)로 일하길 권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기도로 호흡하고, 자신의 영혼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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