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도의 날 '교회여 일어나라' 기도회 설교
제목 : 무엇을 위하여 달려갈 것인가?
본문: 열왕기상 19장 1-8절
모세와 엘리야는 대표주자였다. 율법은 모세로부터,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였던 선지자 엘리야, 대표 주자였다. 모든 사람의 롤모델이 되어야 하고 Exemplary가 되어야 할 엘리야가 어떻게 도대체 이렇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이세벨이라고 하는 여자의 말 한마디에, 갈멜산에서 팔백오십대 일의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여자의 말 한마디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오늘 3절의 말씀대로, 대표주자였던 엘리야가 “그 형편을 보고 일어나”..그 생명을 내놓고 사명을 감당하였던 종이 형편을 보는 순간 그의 삶이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기 시작한다.
오늘 제가 짦은 20분의 시간 동안에 여러분과 말씀을 나눌려고 하는 것은 저희 간증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년 3개월전에 시작이 되고 저는 일년의 반 정도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선교하고 전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던 사람이고 제가 계획하고 스케줄을 잡았던 모든 것들이 하루 아침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저의 심령 골수를 쪼개고 지나기 시작하고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부터 이는 하나님께서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고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가장 큰 은혜를 체험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저는 하루를 삼일을 쪼개며 살았다. 스물 네살 때 주님을 만나고 44년을 살면서 내일 모레면 70울 바라보는 이 나이에 3시간 이상을 자지 못하고 살았다. 내 평생의 소원이 4시간을 자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루를 스케줄을 해가지고 그 스케줄에 얽혀서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그러면서 일 중심으로 테스크 오리엔테이션된 사람으로 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해석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열왕기상에 있는 말씀이 저를 해석해 주기 시작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저를 다시 주님 앞으로 수술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말씀이 첫번 째 3절 형편을 본다.
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형편을 본다. 사람을 본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세밀한 주님의 음성을 들어가며 주님과의 관계가 solid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도 내공이 있다고 하는데 내공이 있는 사람은 사람 눈치 별로 보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든든한 사람은 형편과 처지와 상관 없다. 그런데 저처럼 일 중심으로 살고, 선교회를 세우고, 259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면서, 별의 별 역사들을 많이 체험하고, 얼마나 많은 일 때문에 내가 한 일 때문에 나는 열심이 특심하여서 나같은 사람은 별로 없겠지 하는 교만한 마음도 들어가면서 살았던 저이기에 엘리야가 “형편을 보고”라고 하는 말씀은 제 심령 골수를 쪼갰다.
일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람의 형편을 본다. 주일 날 얼마나 들어왔는지 확인한다. 형편과 처지를 본다. 그래서 조금 좋으면 일히일비하고 조금 나쁘면 비화하고..엘리야이다.
하나님은 일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관계가 무너졌던 우리들로 해서 코비드19을 주셨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4절, 스스로 광야에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한다. 성령이 저의 인생을 해석해 주셨다. 주님과의 관계가 든든하지 못하고 신학이 든든하지 못하고 나의 삶에 하나님이 불러주신 사명이 든든하지 못하고 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형편보고 스스로 죽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저의 고백이다…내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사람의 소리를 들었고 나의 일 중심으로 살았기에 스스로 죽기 구하는 엘리야를 통하여 저 자신을 본다.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않습니다.”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굉장한 것 같은데 항상 열등감이 있다. 왜요. 늘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다. 나보다도 못한 사람 같은데 나보다 더 큰 목회를 한다…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에서 내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본다. 사람과 형편을 바라보지 않는다.
5절 말씀이다. 엘리야에게 천사가 와서 어루만지시면서 그를 치유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지쳐 떨어지고 스스로 죽기를 구하고 열등감에 빠져 있는 사람을 그래 너는 쓸데없어 너 보다 잘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내가 잘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을 쓸꺼야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세를 보라.
엘리야나 모세나 똑같은 사람이었다. 모세가 네번째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다. “나는 말을 못합니다.”하나님은 진노하셨지만 하나님은 진노를 come down 시키시고 모세야 내가 말 잘 못하는 약점이 있느냐 그럼 말 잘하는 네 형을 내가 붙여줄 테니.
하나님은 약한 자가 죽기를 구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그 사람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 사람을 폐기처분하지 않으신다. 나의 약점있는 그대로 하나님은 어떻해서든지 그 약점을 체워주실 수 있는 사람을 붙여 주셔더라도 하나님이 일단 택하신 종들을 끝까지 신뢰하고 믿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가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빌레몬의 집안에 있었던 오네시모에게 있었던 별명은 useless person, 오네시모야 너의 별명은 쓸데 없는 소용가치가 제로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폐기처분하지 않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시켜 주셔서 오네시모의 별명이 from useless one to useful one,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종이 되리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눌리고 작고 체워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고…우리들의 삶에 하나님은 우리를 폐기처분 시키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약점을 체우시고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주시는 치유의 하나님이 되실 줄 믿는다….
떡과 물의 공급을 받고 엘리야가 사십주 사십야를 달려간다. 무엇을 위하여 달려갈 것인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아무것도 못했으니까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이 끝났으면 옛날의 삶으로 reset한다. Reset은 옛날로 다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코로나가 끝났으니까 일도 공부다 처음부터 다시 열심히 하자고 한다.
성경은 reset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Restructure, Restore, Renew, 다시 구조조정해서 새롭게 출발하는 삶이다…계속 reset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삶이다.
사십주 사십야를 달려간 엘리야의 발걸음은 reset된 발걸음이었다. 달려간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하나님이 보세요. 나같이 일하는 사람없고요 이스라엘에 나 하나 남았습니다…아직도 그의 삶은 restructure, revive 되지 못하고 그 기간동안에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밑에서 죽기를 생각하고 사업도 재정도 안되고 가정도 날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그러나 11절에 하나님께서 엘리아야에게 너희 삶이 reset 되면 안되니 restructuring 하거라… 너는 일 중심으로 돌아가려느냐. 너는 내 앞에 와서 서라. 너는 이제 사람 가운데 들어가서 일할 생각 그만두고 너보다 큰 사람 하나님 이시니 하나님 앞에 나와 나의 음성을 듣고 네가 나의 얼굴을 보고 내가 너의 얼굴을 보자…
일 중심으로 reset되어 살던 제 삶을 11절 한마디의 말씀이 저를 바꾸어 주셨다. 이제는 일하기 전에 내 앞에 나좀 보고 내 음성을 들으며 대면하여 하나님 앞에 서거라….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equality act나 Asian 범죄 이런 것들이요, 그 일을 행하기 전에 우리가 교회가 코비드가 종식이 되는 이 때에 하나님 앞에 대면하여 예배자로 서는 예배가 부흥해야 된다.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가 부흥해야 된다. 옛날로 돌아가서 또 일 열심히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가 기도할 때마다 일어나 주신다.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손을 들어 주신다. 저 악한 정사와 권세와 세상의 통치자들과 그들의 특징은, 그들의 모든 사상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이제는 우리가 예배자로 다시한번 하나님 앞에 대면하여 서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어나신다. 하나님이 손을 들어 주신다. 하나님이 악인들의 손을 꺽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