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직도 나를 부끄럽게 하는 목회 스승
글 :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
내가 20대 초반 목회를 배울 때만 해도 도제 교육 씨스템이었다. 스승에게 홀로 배우는 것이다. 보스톤에서는 홍근수 목사님이 월요일이면 자신의 설교를 내가 평가하도록 하셨고 한 달에 한번은 목사님이 내 설교를 평가해 주셨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동하고 신학대학원 겨우 2학년이니 동서남북을 제대로 분별하지도 못할 때인데 당시 이민교회 최고 실력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홍 목사님 설교를 내가 어찌 평가를 하겠는가? 한 달에 한번 대예배 설교를 시키시고는 내 설교를 평가하는 월요일이면 목사님은 얼마나 열정적으로 내 설교를 분석하시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꼭 하시는 말씀이 “너를 보니 앞으로 감리교의 미래가 암담하다.”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 일 년 목사님 안식년 동안 임시담임까지 했다. 시카고 지역 감리사가 더 이상 타교단에서 목회하는 것은 안된다고 시카고대학목회 목회실장으로 불러 떠나게 되니 목사님이 내게 박사학위를 하라 하셨다. 나는 공부보다 목회가 하고 싶어서 결국 떠나기로 결정하고 말씀드리니 “김 목사 떠나면 나는 어떡하니?” 하셨다. 나는 스승과 제자가 어떤 것인지 홍 목사님을 통해 배웠다.
보스톤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마치고 시카고에 가서는 홍 목사님의 신학교 동기인 곽노순 목사님 밑에 들어가서 배웠다. 내 본업은 교단파송으로 시카고지역 6개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성경공부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다. 정말 잘하려고 열심이었던 때다. 그런데 어느 날 곽 목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너는 배운 것도 없는 놈이 뭘 그리 많이 가르치려 하느냐.” 하셨다. “다음 주부터 이 책 읽고 뭘 배웠는지 나에게 보고해라.” 하셨다. 매주 책 한권씩을 주셨다. 나는 목회학 매스터(전문가) 학위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어른에게는 배운 것도 없는 놈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공부하기를 원하신 스승들이 고맙고 그립다.
내 목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말씀을 스승들이 주셨다. 곽 목사님은 내게 “이놈아. 젊은 놈이 어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생각하느냐. 진리만 관심가지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 두려워해라.” 하셨다. 홍 목사님은 “교인들이 모두 성자라면 김 목사나 나 같은 목사가 왜 필요한가? 교인을 평가하려 하지말고 사랑해라.” 하셨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이 없는 예배당이지만 곽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면 신선한 가을 바람이 불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신비한 경험이었다. 홍 목사님이 설교하시면 나는 주로 졸았다. 서론 본론 결론이 서울법대 출신답게 정확하셨지만 나는 논리에 약해서 따라가지를 못했다. 다만 하바드 MIT출신 박사들이 그렇게 많은 교회였지만 홍 목사님의 인격과 신학적 고매한 수준에 모두 압도당했었다. 정말 목사라는 존재가 대단한 것이라는 자부심을 홍 목사님은 내게 주셨다.
40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스승들의 가르침이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옛날에는 이랬는데 저랬는데 어쩌고 말을 많이 하니까 친구가 한마디 한다. “착각 그만해라. 60중반을 넘었는데 왜 자꾸 40대 때 하던 것 지금도 할 것처럼 그러냐. 정신차려라. 조금 더 그러면 미친놈 소리 듣는다.” 위로하기는 커녕 잔인하게 현실을 지적해준다.
요즘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라는 말을 많이 생각한다. 코로나 기간 동안 내가 내 숨쉬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 많았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내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한다는 잔인한 현실을 알았다. 전에는 못 보았는데 얼굴에 조폭같이 고약한 인상을 주는 주름이 여기저기 보이고 작고 큰 버섯이 얼굴에서 피어나고 눈꺼풀에 작게 났던 점 같은 것이 커져서 흉하게 보이는 것이 아주 잘 보인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제는 남 앞에 어떻게 보이는 것에 예민하던 것이 없어졌다. 아무리 애써야 별 차이가 나지 않는 나이가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뉴욕 목회가 좋은 것은 내 마음대로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어 가지고 내 마음대로 되는 목회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추한 것인데 안 되니 감사하다. 다른 곳에서는 설교를 하면 팬클럽의 환호가 분명하게 들려오던 목회를 했었는데 뉴욕에서는 팬클럽이 아니라 앤티클럽이 여기저기 모여 열심이다. 이것도 내가 방심하지 않고 정신차리게 하니 좋다. 작년부터 월요일 오전이면 교회력 설교 공부모임을 한다. 주 멤버는 미국교회에서 목회하는 30대 젊은 목사들이다. 옛날 나에게 야단맞고 채플에 들어가서 손잡고 “하나님, 우리들 담임목사님에게 야단맞지 않게 해주세요.” 울며 기도하던 친구도 있다. 다른 멤버들은 실력은 있는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어렵게 목회하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좋다. 성경 본문을 읽어내는 시각이 나와 너무 다르기도 하지만 신선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써도 교인이 늘어나지 않는 목회를 하다 보니 오히려 그들은 아픔 바닥의 현장에서 복음을 발견해 내는 삶의 지혜가 넘친다. 그래서 월요일 설교준비 모임은 웬만해서는 안 빠진다. 에모리 신학교 설교학 톰 롱 교수가 매학기 나를 초대 설교학 강사로 불렀었다. 그래서 내가 설교 잘 하는 목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진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심정으로 겸손히 배운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열리는 목회자 멘토링 모임에 초청을 받았다. 그래서 아직도 내가 뭔가 잘하고 있고 젊은 목회자들에게 줄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사에게 부탁하는 내용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난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 자랑해서 목회 어려운 목사들 기죽이지 말라고 한다. 실수한 것 잘못한 것 말하란다. 그리고 강의하고 사라지지 말고 배우려고 온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란다. 가만히 보니 나를 위한 목회 정신 재교육의 자리이다. 나에게 이런 당황스러운 주문을 하는 교회개혁의 확신을 가진 분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이런 당당한 사람들이 있으니 교회는 소망이 있다.
코로나 기간 숨고르기가 하나님 주신 은혜의 시간이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도를 할 수 있다. 내가 많이 말하고 내가 뭘 잘하는 것이 드러날 때와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하다.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뭘 잘해서 교회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니 자유가 있다.
날숨을 하면서 내 속에 버려야 할 것들 버리고 들숨을 쉬면서 좋은 것을 들여마신다. 날숨을 하면서 나쁜 것과 더러운 것을 내뿜고 들숨을 하면서 감사와 기쁨을 마신다. 한 번도 실천에 옮긴 적은 없지만 목회를 하면서 마음속에 손을 보고 싶던 인간들이 있었는데 내게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못나고 못된 인간들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단련시켜주시고 인간에게서 보는 배신과 잔인함을 보면서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고 지금도 있는 것을 보게 하셨다.
가을이다. 하늘을 보기 참 좋은 때이다.
* 2022년 12월 14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8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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