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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삼현] 이사야 - 서론

복음뉴스 0 2022.12.21 18:15

제목 : 이사야(The Book of Isaiah)서론

: 한삼현 목사(뉴저지 빛과소금교회)

 

1. 구약 39권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과 그들의 관점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약 선지서 이사야를 관찰함에 있어서 필자는 먼저 구약 전체(39)을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입장을 밝힌다. “그림자와 실체”(217),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심과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심”(112)에 근거하여 구약은 그 자체로서는 불완전함 내지 미완성임을 깨닫고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완전하여졌고 성취되었음을 밝힌다.

 

이미 기독교의 정경 역시 이런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66, 그 중 구약 39권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장과 그들(유대인)의 입장을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우리의 구약 39권에 대한 유대인들의 견해의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오직 배열(arrangement)과 합권(one book)이라는 점에서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크게 삼분하면서 24권으로 생각한다. 율법()선지서(비임)성문서(투빔)로 구분하면서 율법(5), 전선지서(4)후선지서(4), 지혜서(3)오축(5)다니엘(인물), (하나로 취급), 역대기(역사)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면에서 말씀의 분량(quantity)은 우리(기독교)와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크게 사분하면서 39권으로 간주한다. 헌법(여호와 신앙의 기초로서 율법)역사서(과거)시가서(현재)선지서(미래)로 구분하면서 사무엘(2개로 분리), 열왕기(2개로 분리), 역대기(2개로 분리), 에스라와 느헤미야(2개로 분리), 소선지서 각각(12개로 분리)으로 해서 우리가 15책이 더 많다. 실제적인 분량에서는 결코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2. 이사야의 시대적인 배경

지정학(geopolitics) 측면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애굽과 바벨론(앗수르), 즉 두 제국 사이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 시기에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전쟁의 시대에는 항상 어느 쪽에 소속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이와 더불어 국내적으로는 친 애굽파와 친 앗수르파 사이에서 반목과 싸움이 빈번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좀 더 북쪽에 위치한 북 왕국(이스라엘)은 북방 세력(앗수르, 바벨론)과 가까웠고 좀 더 남쪽에 위치한 남 유다는 남방 세력(애굽)에 가까웠다고 생각할 수 있다.

 

1) 앗수르 제국의 팽창과 레반트 지역

(1) 주전 9세기에 관한 스케치 주전 9세기 고대 근동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앗수르(Assyria)가 주도권을 잡고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급격히 팽창하였다. 앗수르 제국은 안정을 찾으면서 서진 정책(driving to the west)을 펼치기 시작했다. 즉 레반트 지역은 물론이고 서남쪽으로 애굽까지 진출을 노렸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애굽이 안정을 찾게 되면 대개 동진 정책을 펼쳤다.

 

앗수르의 서진 정책을 본격화 한 왕은 바로 살만에셀 3(주전 859824 통치)였다. 한편 앗수르의 팽창에 맞서서 레반트 지역의 소국가들은 연합전선을 펼쳐 동맹군이 되었다. 특히 Qarqar 전투(주전 853, 앗수르 살만에셀 3세에 대항해서 아합을 포함한 레반트 지역의 열 두 왕이 펼친 전쟁)에서 동맹군의 우두머리인 다메섹(아람)의 하닷에셀은 병거 1,200, 하맛은 병거 700, 북 왕국 아합은 병거 2,000을 보내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후로 앗수르는 계속 레반트 지역을 위협했지만, 한 동안 그 내부사정으로 서쪽 원정을 펼치지 못했다. 이런 틈을 기회 삼아 다메섹(아람)이 주도권을 잡고 세력을 떨쳤고 이때 북 왕국 아합 왕이 아람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하닷에셀 벤하닷에게, 왕상 222940). 그 후에 예후가 아합 왕조를 누르고 일어났지만 북 왕국의 국력은 점차 쇠약해졌다.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때는 극에 달해 병거 10(왕의 호위 병력과 나라의 치안을 위한 경찰병력 정도), 기병 50, 보병 10,000밖에 되지 않았다(국력은 거의 와해되었다). 그리고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때에 국력을 회복했다. 때마침 50년 정도 앗수르의 공백을 이용하여, 북 왕국 여로보암 2(793753)가 아람을 복속시키고 영토를 회복하였다. 이때 북 왕국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부흥이 일어났고 남 유다 역시 웃시야(792740) 때에 부국강병을 경험하였다.

 

(2) 주전 8세기에 관한 스케치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8세기 앗수르 제국의 팽창기와 이스라엘의 쇠퇴기로 특징지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사역하였다.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 3(주전 745727) 주도하에 앗수르인들은 서쪽으로 아람(시리아)와 가나안 지역까지 휩쓸어 장악했다. 주전 733년경 아람 왕 르신과 북 왕국 왕 베가는 반앗수르 연합에 유다 왕 아하스를 끌어들이려고 예루살렘을 공격했다(712). 그러나 아하스 왕은 반앗수르 연합에 동참하지 않았고 오히려 디글랏 빌레셋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즉 친앗수르 정책을 펼쳤다). 이런 결정은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맹렬하게 책망을 받았다(713). 앗수르가 유다를 도왔지만, 주전 722년 앗수르는 북 왕국(이스라엘)을 정복하여 멸망시켰다. 이 사건은 유다를 더욱 취약하게 하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주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은 유다의 모든 성읍들을 쳐서 취하고 마지막엔 예루살렘 자체를 위협했다(361). 이때 드러난 유다 왕 히스기야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죄는 결국 바벨론의 손에 사로잡힐 것이라고 드러난다. 바벨론의 사절단이 히스기야를 방문했던 그 일이 바로 이런 예언에 대한 발판이 되었다(391, 6). 이렇게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실한 경험까지 이사야(The book of Isaiah)의 흐름에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다.

 

2) 앗수르 제국의 팽창에 맞선 유다 왕들의 반응

이제 우리는 이사야 11에 나타난 유다 왕 4명이 앗수르 제국의 서진 팽창에 맞서서 어떤 반응과 선택을 하였는지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1) 웃시야(Uzziah) 웃시야가 통치 초반에 형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부친(아마샤)을 기꺼이 따른 일(“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함”) 뿐만 아니라 스가랴(영적 멘토)의 생존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찾았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대하 2645). 그렇지만 더 넓은 시각에서, 즉 대외적인 관점에서, 북 왕국 여로보암 2세도 함께 경험했던 것처럼, 앗수르의 팽창이 잠깐 동안 주춤하였던 기간에(50여년) 경쟁을 벌일 대상이 없었으므로 웃시야는 블레셋과 애굽 변방까지 팽창할 수 있었고 부국강병을 경험하였던 것이다(대하 26615). 그런데 웃시야는 자신의 영역을 넘어 성전에서 분향하려다가 여호와께서 나병으로 치셨으므로 성전출입의 금지는 물론이고 격리되어 버렸다.

 

(2) 요담요담의 통치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는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성공하여 번영을 가져왔지만 영적으로는 취약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곧 유다에 대한 광범위한 영적 개혁을 시행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앗수르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그의 통치 말년에, 즉 아하스와 공동섭정 기간(주전 735732)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공격을 요담과 아하스가 함께 경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3) 아하스이사야 7장의 유다 왕 아하스의 반응는 국가적 위기에서, 즉 아람과 북 왕국의 위협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검증시험대(1st actualization)였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사야 3637장의 유다 왕 히스기야의 반응은 국가적 위기에서, 곧 앗수르 왕 산헤립의 위협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검증시험대(2nd actualization)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사야서의 관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유다 왕 아하스와 히스기야라고 할 수 있다. 아하스의 16년 통치에서 가장 큰 종교적인 특징은 다윗 왕의 후손으로서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북 왕국 왕들의 혼합주의적 이방관습을 따랐다는 점이다. 열왕기의 서술에 따르면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아하스를 폐위하고 꼭두각시 통치자(다브엘의 아들)를 앉힐 목적으로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아하스는 앗수르의 도움과 보호를 끌어내기 위하여 거대한 예물(은금)을 보냈으며(왕하 1659), 친 앗수르적인 외교 정책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앗수르와 완전히 타협해버렸던 것이다(왕하 161018). 물론 르신과 베가의 예루살렘 공격으로 인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사자로서 이사야의 목적은 신앙적인 응답을 장려하는 것이었다(79). 특히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어떤 징조라도 요구하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사실은 경건한 체하면서 영적 가면을 쓴 것이다(71012, 616을 비교하라). 이런 국가적 위기에서 조차도 하나님을 신뢰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위선적인 아하스는 하나님의 징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몹시 화가 난 이사야는 아하스가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임마누엘의 징조를 선언하는 것으로 반응을 하였다(714).

 

(4) 히스기야히스기야는 불경건한 부친(아하스)의 아들이었으나 참된 여호와 신앙을 증진하는데 열심을 냈다. 완전한 인물은 아닐지라도 요시아와 함께 남 유다를 통치한 가장 선한 왕 중 두 명에 포함될 것이다. 북 왕국과 사마리아가 앗수르인들에게 무너지는 것(722)을 목격한(왕하 18912) 히스기야, 아마도 그런 비극적 운명을 목격한 일이 히스기야로 하여금 유다에서 더욱 종교개혁을 주도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북 왕국이 멸망했을 때 비록 남 유다가 앗수르 제국에게 휘말리진 않았을 지라도, 항상 매년 조공을 바치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그와 같은 큰 제국의 그늘과 위협 아래 놓여 있었던 것이다. 주전 705년 앗수르 왕 사르곤 2세의 사망 후에 아마도 히스기야는 반앗수르에 대항하는 광범위한 반란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써 앗수르의 새로운 왕 산헤립은 주전 701년에 예루살렘을 위협했다(36). 앗수르 군대는 성공적으로 유다의 많은 성읍들을 탈취하고 앗수르의 대표(랍사게)가 예루살렘의 성벽 앞에, “윗못 수로 (), ‘세탁자의 밭으로 가는 길에 나타났다. 이때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켰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왕하 18171937, 대하 32123, 3637). 앗수르에게 포위와 구원을 경험한 후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이사야는 그가 죽을 것이라고 하였지만(왕하 20111, 38),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 연장 15년을 허락했다. 특히 해 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움직이는 징조를 보여주셨다. 이런 징조까지 경험한 것은 부친 아하스와 너무나 대조적인 신앙이었음이 분명하다(71013). 그러나 히스기야에게도 나쁜 순간이 있었다. 바벨론 지도자 마르둑발라단에게 성전의 보물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보다는 외세(떠오르는 바벨론)를 신뢰하려는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히스기야는 선지자로부터 그의 후손들이 자신의 행동의 결과(바벨론에 사로잡힘)를 겪을 것이라고 듣게 되었다(왕하 201221, 39). 

 

* 2022년 12월 14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8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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