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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분노를 치유하라

복음뉴스 0 2022.05.20 15:19

제목 : 분노를 치유하라

글 : 김경수 목사(서울 광은교회, kks50205020@gmail.com)

 

분노란 모든 사람이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하나님의 강렬한 정서적 반응이다. 

그렇다면 먼저 도덕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이 분노는 잘 못된 것인가?

분노는 다스릴 수가 있는 가?

분노란 그 분노를 자극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에 발생하여 폭발하는 본능적이고 생리적인 반응이다. 분노는 분명히 어떤 위협에 대한 반사적이고 불합리한 반응처럼 느껴지기 쉽다. 

다음에서 분노의 사례를 보기 원한다.

 

사례 1: 외도 후 반성의 기미가 없는 남편 A씨의 태도에 매일 싸움을 하고 있는 부부. 

단순한 폭언에서 시작됐으나 점차 상호 폭력으로 이어졌다. 아내 B씨의 분노 조절 장애가 먼저 표출됐고, 싸움이 격화되는 과정 중에 남편도 분노 조절 장애가 됐다. 두 사람의 분노가 함께 폭발할 때는 베란다 난간에 매달리는 행위를 비롯해 자해, 살인 위협까지 벌어진다.

 

사례 2: 20대 후반의 남성 C씨. 

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지속적인 어머니의 원망에 노출됐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져 8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살던 그는, 모욕당하고 무시당한 순간이 떠오르면 거실로 갑자기 뛰쳐나와 온 가구, 식기를 부수고 욕설을 퍼부은 다음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집안 곳곳은 파인 자국으로 가득하고 가구는 모두 폐품 수준이며, 식기는 모두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스틸 등 깨지지 않는 것으로 대체됐다.

 

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대부분 욱하는 분노조절장애의 원인이며 증상은 조절할 수 없는 충동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분노는 무엇이며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를 느끼며 살아간다. 분노에 사로잡힐 때는 대부분 그것을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해소시키게 된다. 

 

분노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화를 내는 것’, ‘성을 내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욕망의 실현을 부정하거나 지지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결과로 생기는 감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욕망의 실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 갖고 싶은 것을 갖거나 갖기 싫은 것을 내치는 것과 같은 의지만을 가리킨다. 이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직접 관계가 없이도 나의 신념 체계에서 볼 때 옳지 않다고 판단되는 일에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분노(resentment)의 어원은 라틴어 레센티레(resentire)에서 찾을 수가 있다. 라틴어의 센티레(sentire)는 “느낀다”라는 의미이다. 어떤 행동을 계속 느낀 것을 다시 느낄 때 나오는 반응이 분노이다. 이런 분노가 자기 안에서 일어나면 상대방은 물론이고 공동체와 자기 자신까지 겉잡을 수 없이 파괴시킬 수 있어서 자신을 잿더미로 만들만큼 무섭게 타오르는 것이다.

특별히 운전을 하다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저지르는 범죄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최근 일어난 아동학대, 분별없는 폭력, 묻지 마 폭력 등등. 이런 사건의 공통점은 '분노조절장애' 환자에서 발생한 점이다. 그들은 스스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극단으로 표출하고 만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서 유달리 분노가 많은 편이다. 아마 오 천년 역사 동안 너무 많은 시련을 겪다 보니까 어떤 한(恨, unresolved anger)이 우리 속에 맺혀 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는 감정이 폭발하면 앞뒤 없이 총을 들고 나가서 난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마음의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런 분노로 나타나게 되는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다음 같이 나타난다. 

 

첫째, 왜곡된 지각을 가지고 지낼 경우

나이 50줄에 들어서야 예수를 알게 된 청소부가 있었다. 

그는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교회 문턱도 밟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고교 시절에는 학생회 회장을 맡기까지 하였다. 그는 하루 종일 쓰레기와 씨름하면서도 고달픈 줄을 모르면서 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과속 트럭에 치어서 즉사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아버지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할 것만 같았다. 이런 왜곡된 지각이 분노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둘째, 위협이나 해를 받을 경우

곧 자신이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존감이 상해서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을 때, 또는 외부에서 공격을 받게 될 때 분노한다. 


셋째, 좌절감에 빠질 경우

설정한 목표를 향해 가지 못하게 하는 급작스러운 장애물을 만나게 될 때 사람은 엄청난 분노가 나타나게 된다. 

 

넷째, 자기의 기대치에 못 미칠 경우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자기의 기준치나 자기 스스로 부끄럽다고 느낄 때의 분노는 자신감의 결여나 열등감에서 기인되어서 나올 수가 있다. 


다섯째, 영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에베소서 4장 26-27을 보면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화를 내면서 영적으로 겸손하게 신앙생활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여섯째, 욕구 충족이 되어 지지 않을 경우

한마디로 말하면 개인의 욕구충족이 되어지지 않을 때 분노가 일어난다. 

 

일곱째, 가족들에게 분노하게 될 경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성장한 사람들은 부모를 향한 분노를 많이 가지고 있다. 

 

여덟째, 환경적인 분노를 느낄 경우

환경적인 분노는 어떤 일로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될 때 찾아오는 분노이다. 

 

아홉째, 사회적인 분노를 느낄 경우이다. 

사회가 공평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느끼는 사회를 향한 분노이다. 반대로 유익한 분노도 있다. 

 

성경이 말하는 분노


성경이 말하는 분노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모세를 통해서 살펴보면 이해 할 수가 있다. 그것은 건설적인 분노이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는 애굽에서 탈출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지만 물이 없어서 목마를 때 불평하기 시작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분노를 한 것이다. 모세의 삶을 통해서 볼 때 분노는 개인적인 죄를 해결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문제는 화를 낼 때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이유로 내느냐가 중요하다. 분노는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다.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 분노하신 것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다고 하셨을 때 분노하셨다. 예수님의 분노는 결코 이기적인 일로 인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분노인 것이다. 

민수기 20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목마르게 되자 모세에게 화를 냈다. "우리를 애굽에서 죽일 것이지 하나님께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하느냐? 여기에는 무화과, 포도, 석류도 없고 더구나 마실 물도 없도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함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못된 백성에게 반석을 명하여 물을 주라는 것이다. 이 분노로 인하여 결국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이다. 그러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내 안에서 분노 다스리는 방법 


첫째는 화를 잘 다스려라. 

사람들은 언제나 화를 통해서 나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분노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분노할 때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감정을 처리하는 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가 있다. 

 

둘째는 분노를 잘 해결하라. 

분노는 우리의 정서 가운데 하나이다. 분이 난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나 스스로 내가 지금 화가 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는 보편적인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감정이기 때문에 분노에 대한 죄의식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분노의 원인을 생각하고 절제를 배워야 한다. 절제는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갈 5:23). 성경적으로 절제하기가 힘든 사람은 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자기 자신의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심리학에서 말하는 분노의 행동요법)

 

1. 냉정한 자세로 열기를 식히도록 노력하라. 손을 불끈 쥐지 않도록 손가락을 펴고, 속삭일 정도로 말하라.

2. 자기 자신에게 큰 소리로 외치라. "바보짓을 하지 말라. 화를 내서 얻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고 말하라

3.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화난 나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항상 상상해 보라.

4. 화가 나면 말하기 앞서 열까지 세라. 몹시 화가 날 때는 백까지 세 보라

5. 왜 내가 화를 내고 있나를 낱낱이 열거한 목록을 만들어 보라.

6. 터뜨리기 전에 이 분노가 가치 있는 행위인가? 하고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

7. 노하기를 잘하는 사람들과 가까운 교제를 피하도록 하라.

8. 사소한 의견 차이는 무시하도록 노력하라.

9. 자기를 주장할만한 권리는 하나님께만 있음을 늘 알라.

10. 계속하여 혀를 철저하게 자제하도록 노력하라.

이러한 인지행동적 방법을 통해서 잘 다스려야 한다

 

셋째 분노를 잘 조절하라. 

분노를 건강하게 표현하고 다루기 위해서 레스 카터(Les Carter), 프랭크 미너스(Frank Minith)는 분노치유에서 분노를 다루는 13단계를 소개한다

 

1단계_ 분노의 여러 얼굴을 인식하라.

2단계_ 모든 분노의 표현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모두 당신의 선택의 결과임을 받아들여라.

3단계_ 당신의 분노치료가 외부의 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지나친 의존성을 버려라.

4단계_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버리고 그 대신 자유를 선택하라.

5단계_ 이상적인 신화를 버리고 진실에 뿌리를 내려라.

6단계_ 감정적으로 안정된 일관된 생활 습관을 유지하라.

7단계_ 이기적인 자만심보다는 겸손하게 살라.

8단계_ 당신의 방어를 최소화하라. 당신의 건강한 주장을 믿어라.

9단계_ 당신이 이해 받기 위해 힘쓸 때 외로움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10단계_ 다른 사람에게 동등하게 다가가라. 자신을 그들보다 우위에 두지도 말고 열등한 위치에 두지도 말라.

11단계_ 분노에 대한 당신의 통찰을 후대에 물려주어라.

12단계_ 당신의 분노를 합리화하려는 유혹을 피하라. 당신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져라.

13단계_ 당신의 지속적인 성장에 책임감을 가지며, 당신이 분노를 조절하고 있음을 타인에게 알려라. 이러한 단계를 통해서 분노조절을 잘하기를 바란다.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3).

 

·분노조절 장애 진단 테스트


※ 아래의 항목을 읽고 그렇다면 맞는다면 ○를 하기 바란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감을 느낀다(   ).

·성격이 급해서 금방 흥분하는 편이다-타인의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킨다(   ).

·내가 한 일이 잘한 일이라면 반드시 인정을 받아야 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화가 난다(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

·화가 나면 주변의 물건을 집어던진다(   ).

·중요한 일을 앞두고 화가 나 그 일을 망친 경험이 있다(   ).

·내 잘못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며 화를 낸다(   ).

·화가 나면 쉽게 풀리지 않아 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

·게임을 할 때 의도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쉽게 난다(   ).

·화가 나면 상대방에게 거친 말과 함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

·분노의 감정을 어찌할지 몰라 당황한 적이 있다(   ).

 

※ 개수를 세어서 1~3개는 분노 조절 능력이 가능한 단계, 4~8개는 분노조절 능력이 조금 부족한 단계, 9개 이상은 분노조절을 하지 못하는 단계로 전문적 상담이 필요한 단계이다.

 

* 2022년 5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1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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