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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식]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 예배

복음뉴스 0 2022.04.14 08:58

목회 이야기 ⑨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것, 예배

글 : 이종식 목사 (베이사이드장로교회)


나는 목회를 하면서 성도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예배라고 강조하여 왔다. 그 이유는 예배는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여기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예배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무리 봉사를 잘 하고 헌금을 잘 드려도 예배 생활이 좋지 않으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는 좋지 않다고 보아왔다. 그 이유는 예배 생활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자는 다른 그 어느 것도 오래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예배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여야 한다. 예배가 빠진 신앙생활은 우상 종교를 믿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 것인가?(우리는 신학적으로 예배에 대하여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배자로서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어로 예배를 “Worship”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Worth”라는 단어와 “Ship”이라는 단어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Worth”는 가치를 말하는 것이고 “Ship”은 무엇인가를 보내고 운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예배는 하나님이 얼마나 나에게 가치 있는 분인가를 하나님께 전달하는 것이다. 예배라는 원어에는 4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그 첫째는 사차 (sachah)라는 말로서 ‘엎드려 존경을 표하다’라는 말이다. 그런즉 예배는 하나님께 존경을 표하는 행위이다. 두 번째로 예배라는 말에는 프로스쿠네오(proskuneo) 라는 단어가 있다. 그 의미는 ‘입맞춤을 하다’라는 뜻이다. 그 뜻은 상대방에게 경외와 존경과 사랑을 표하는 것으로서 예배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합니다” 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예배라는 단어로 라트류오(latreuo)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봉사하다, 사역하다, 섬기다’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 뜻은 그 어떤 봉사도 예배를 대치할 수 없다는 것인데 최고의 섬김이 예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어로는 레이트르고스(leitour-gos)가 있다. 그 뜻은 영어로 liturgy라는 말로서 설교나 성찬을 통한 예배 사역을 의미하고 있 다. 그러니까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을 떼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칼빈은 예배시 말씀을 전하는 자는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나팔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입장에 있는 성도들은 사람이 아닌 오늘 세우신 사자(메신저)를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있다고 믿으며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전해지는 말씀은 우리 가운데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필라델피아에 갔을 때 The Tenth Presbyterian Church(제십 장로교회)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그 교회 예배 안내판을 보는데 그 주일에 설교할 제목이 쓰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그 설교 제목이 나에 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The word cannot be silenced.” 번역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잠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설교 제목을 읽으며 참 설교 제목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잠잠할 수 없다. 말씀은 듣는 자의 죄로 물든 마음을 씻어내기 때문이다. 말씀은 사람의 눈을 밝게 하기 때문이다. 말씀은 우둔한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롭게 하기 때문 이다. 그리고 시편 1편은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시사철 열매를 맺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일을 일으키는 말씀을 예배 중에 들어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자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가 전하는 말씀은 자신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제이 아담스는 말하기를, 설교자는 자신이 전하는 말씀을 통하여 일어나기를 바라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뜻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적어도 그 말씀을 통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믿고 바라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시 시행되는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떡과 잔에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임재함을 믿으며 그것을 먹을 때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삶에 변화를 맛보게 된다. 나는 믿기로 성찬을 믿음으로 뗄 때 질병도 떨어져 나가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성경을 보면 성찬을 경시하며 받을 때 병든 자들이 생겼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찬을 잘못 떼어 병든 자가 생길 수 있다면 성찬을 믿음으로 받을 때 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성찬을 뗄 때마다 믿음으로 받을 것을 강조하는데 여러 성도들이 병에서 자유함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성찬은 성도에게 있어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엄청난 특권인 것이다. 그리고 예배는 성찬과 말씀만을 말하는 것은 아 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축도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게 됨을 믿는다. 그러므로 예배는 정말 진귀한 것들로 가득 찬 것이며, 그러한 예배를 온전히 잘 드려야 한다. 잘 드리면 은혜가 충만 하고, 잘 드리지 못하면 은혜를 받지 못해 삶이 참으로 추해지는 것이다.

 

그것을 창세기는 가인과 아벨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다. 창세기 4: 3-5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 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어떤 자의 예배는 받으시고 어떤 자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난 인생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 증거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사를 드린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참으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의 예배를 안 받으신 이유는 무엇이 었을까? 창세기 4장 7절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씀을 보면 가인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 죄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다. 그것은 아벨도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도 타락한 인성을 가진 자로서 분명히 죄를 짓고 사는 인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죄가 있었음에도 그의 제사는 받아들여졌고 가인의 제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성경학자들은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이유는 그의 제사가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는 피의 제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경학자들은 창세기 3장 21절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하는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는 피의 제사를 드릴 것을 가르쳐 주셨다고 주장한다. 가죽을 만들려면 동물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로 성경에는 자연스럽게 피의 제사를 드리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견에 반해서 이 후로 모세는 율법을 제정할 때 곡식으로도 제사를 드리는 것도 언급하였기에 가인의 제사는 문제가 없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세는 곡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도 명하였지만 피의 제사는 기본으로 드려야 할 것을 말하였다. 그 이유는 타락한 인생은 죄를 짓게 되고 그 죄를 씻음 받으려면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는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인은 아마도 자신이 마음대로 제사를 드린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것이 가인의 일차적인 죄로서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으신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예배를 드리지 않고 사람들 보기에 좋게 형식적으로 드렸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예배를 드린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과 사람들이 즐기는 예배를 드린 것이다. 현대의 예배를 보면 사람들의 초점이 어떤 예배를 사람들이 좋아하는가에 맞추어져 있음을 본다. 예배실의 장식도, 예배실의 조명도, 악기들도 다 인간이 좋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러한 예배를 찾는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러한 것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초가집에서 예배를 드려도 부엌에서 예배를 드려도 모두 예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큰 은혜 중에 거하게 될 것을 믿는다.

 

이번에 우리 교회 30주년 기념 책자가 나와서 보는데 내가 오래 전에 청년들을 10여 년 동안 직접 인도했을 때 그 당시 청년이었던 사람들의 간증을 읽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금요일 청년 기도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는데 그 장소는 교회 부엌이 있는 작은 친교실이었다. 청년들은 금요일 예배 장소가 없어서 그 곳에서 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에 모여 말씀 듣고, 찬양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소도 아니고, 장식도 아니고, 훌륭한 악기도 아닌  떤 곳이든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진정한 예배자인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생각할 때 내가 들을 수 없거나 볼 수 없다면 드릴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배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가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볼 수 없는 사람은 듣고, 찬양할 수 있음으로 하나님의 가치를 인정하며 온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면 된다. 들을 수 없는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주님의 가치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 을돌리면 된다.

 

어느 목사님이 나환자들이 거주하는 소록도에서 본 다음과 같은 광경을 글로 소개한 것을 읽었다. 그분이 소록도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중 두 나환자가 찬양을 부르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그 나환자 두 사람이 손뼉을 치고 찬양을 하는데 한 사람은 오른팔이 없고 또 다른 사람은 왼팔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서로의 왼손과 오른손을 부딪쳐 찬양을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소개한 분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예배를 통해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가치를 증거하는 자들이었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손들 고 찬양하는 것을 부끄러워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힘찬 박수로 찬양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렇게 경배하여야 할 가치가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춤을 춰 그의 아내인 밀가에 의해서 왕의 체통을 지키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 것을 보면 다른 왕들은 자신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춤을 추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그런 행동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를 영원히 잊지 못하셨다.

 

나는 끝으로 제사를 잘 드리지 못한 가인과 제사를 잘 드린 아벨의 이름을 통해 예배에 관하여 느낀 점을 말하고 싶다. 가인은 “얻었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벨은 “헛되다, 덧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생각하며 왜 그들의 부모가 그런 이름을 지었나 생각해 보았다. 가인은 아담과 하와가 아들을 낳았으니 얻었다고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아벨은 왜 헛되다고 이름을 지었을까? 아마도 타락한 세상에서 인생이 덧없이 빨리 지나고 있음을 느끼며 그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그러므로 하와와 아담은 그 아들들의 이름을 통하여 타락 후 인생이 무엇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인생에서 무엇인가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헛되다, 덧없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대로 기쁨 가운데 태어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에 의하여 쫓겨남을 당하게 되어 세상을 유리방황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벨은 덧없이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예배를 잘 드린 아벨의 삶이 너무 비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벨은 그렇게 덧없이 죽은 것 같았으나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영웅으로 등장하고 있다. 마태복음 23장 35절은 그를 첫 순교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바치므로 자신의 핏 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믿음 안에서의 죽음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별히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삶은 하루를 살아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목사들은 인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도들을 이끌어 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새해 들어 무엇보다 성도로 하여금 참다운 예배로 하나님을 체험함으로 힘있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게 해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 2022년 2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9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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