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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철] 메이첸 박사 저 『근대세계 안에 그리스도인 신앙』(1936)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는가?

복음뉴스 0 2022.04.12 21:27

이민철 목사의 메이첸 박사 근대세계 안에 그리스도인 신앙(1936) ③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는가(Has God Spoken?)

: 이민철 목사 (맨해튼성도교회)

 

2장 요약: 보이지 않는 세계(an unseen world)를 더욱 탐닉 하는 시대, 구렁텅이 속에 심연(深淵)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도대체 계신지 또한 만약 계시다면 그가 어떤 존재(being)이신지를 알 수 있는가? 그러나 궁금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죄악된 인간의 마음은 더욱 끝없이 깊어진다. G. W. F. 헤겔은 동일한 보이지 않는 대상을 다루고 있는 다른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따진다는 것 역시 외적인 관심에 휘말리는 것이 되어 정작 중요한 진리의 인식은 오히려 흐려져 버릴 염려1가 있다고 외치고 있다. ‘하나님’(God)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어떤 존재(a being)가 계시다고 가정한다면 우리 같이 연약하고 유한 (有限)하고 단명(短命)한 피조물들이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려는, 하나님 편에서의 어떤 의지가 없이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그를 발견한다는 것은 논리적 전제에 있어서 매우 불가능하게 보인다. 적어도, 나는 우리가 그런 식으로 발견할 수 있는 신은 발견할 가치가 거의 없는 존재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

인간들이 무엇을 보지 못할 때, 그 사실에 대한 두 가지의 가능한 설명이 있다. 첫째, 볼 대상이 거기에 없다는 것이며, 둘째,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이 멀어 있다는 것이다.


3장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는가?: 이 짧은 연속 이야기의 시작에서, 여러분이 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연기시킬 수 없는가를 말하려고 했다. 이 세상은 현재 매우 절박(切迫)한 문제들(pressing problems)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오는 세상과,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큰 문제를 소홀히 한다면 이 세상의 문제들도 바르게 해결될 수 없다. 그 다음에 나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세계와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알려지실 수 있는지를 말하려고 했다. 그는 그가 만드신 우주를 통하여(through the universe) 알려 지실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의 존재(the existence of the world) 는 세상의 창조주와 통치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에 의해 놀라웁게 확증 되어 있지만, 그것이 단지 성경으로부터만 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람들 앞에 널리 드러나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의 마지막에서 나는 성경 밖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반계시(一般啓示, general revelation of God)에 관하여 말해야 할 것은, 개괄적으로라도, 다 끝마칠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가 만드신 세상의 장엄함과 아름 다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방법에 대해 말했다. 아직 여전히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물들에게 말씀하신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 있다. 그는 단지 우리 밖의 세상의 놀라움들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안에 있는 그의 목소리를 통하여서도 말씀하셨다. 그는 우리의 마음속에 그의 율법들을 심으셨다(He has planted His laws in our hearts.). 그는 양심의 소리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그는 아주 타락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고귀한 말은 “내가 해야만 한다”는 말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그는 도덕적 율법의 권위(the majesty of the moral law)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율법은 율법을 주신 분을 암시한다. 양심은 하나님에 대해 증거 한다 (Conscience testifies of God.).

이러한 제시에 대해 특히 마음을 기울이는 것 같은 사람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 수년 전에 어떤 유명한 철학 교수의 평이한 강의를 들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강사는 우리에게 철학적 견해의 현재 상태에 대해 말했다. 그는 말하기를 오늘날의 철학사상은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에 대해 압도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너머에 초월적인 어떤 실재(實 在)(any reality beyond and above the universe)를 믿는 철학자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 강사는 자기 자신은 이러한 자연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초월적인 실재를 믿었다(He did believed in a transcendent reality.). 왜 그런가? 그는 말하기를 자기는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서 혹은 의무를 위하여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희생시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다고 했다. 만약 정의(正義)라는 초월적인 원리가 없다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게 할 수 있을까? 만약 이 세상을 초월한 어떤 실재가 없다면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모든 세상적인 이해관계(worldly interests)와 반대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성경(The Bible)이 외부세계를 통하여 오는 계시를 인정(認定)한다는 것을 보았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또한 양심을 통한(through conscience) 하나님의 게시를 인정한다. 예를 들면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2)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인간의 본성의 바로 그 구조(構造) 속에서(in the very constitution 3) 말하는 양심의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는 율법이 복종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실제로 그것에 복종하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그는 모든 사람이 복종치 않았다고 매우 분명히 가르친다. 그들이 그 율법에 복종치 않았지만, 그러나 최소한 그 율법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들은 불순종(disobedience) 때문에 그들은 그 율법의 정죄 아래(under the condemnation of the law) 놓여 있다. 그러므로 그 율법 자체는 그들에게 아무런 소망도 결코 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 율법의 결함이 아니다. 도덕적 율법은 그들의 존재의 구조 안에(in the very constitution of their being)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그것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핑계치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외부세계의 경이(驚異)들 속에서 계시되듯이 위대한 율법의 수여자(受與者)이신 그는 양심의 소리에서 제시되신다. 만약 자연이라는 말을 인간의 본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이 두 가지는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구성하는 것으로 분류될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우리 위에 별이 반짝이는 하늘(the starry heavens)과 우리 속의 도덕적 율법(the moral law)을 인간의 마 음으로 경외심으로 채우는 두 가지 사실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을 요약해 말한 것이다.4


그러나 그 두 사실이 칸트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가 지식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참된 생각을 가졌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성경을 떠나서(apart from the Bible)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는 것들에게 대해 그가 바르게 요약 하였다는 것이다.


바깥의 우주의 경이들과 안의 도덕적 율법 - 이것들은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계시에 있어서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자연을 통하여(through nature)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또한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자연을 통한 그의 자신에 대한 계시와 다른, 하나님의 이 다른 계시는 자연적인 것(natural)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것(supernatural)이다.


우리가 ‘초자연적’(超自然的)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자연에 반대되는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자연에 반대되는 것은 아마 하나님으로부터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창조자이시고 그는 자신과 충돌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가 어떤 것이 ‘초자연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자연을 초월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재(實在)하는 자연 질서라는 것이 있다. 자연의 질서는 단지 하나님의 사역(God’s working)의 어떤 규칙성들에 대한 우리의 관찰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참으로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something that truly exists)이다. 이것은 자연이 하나님을 떠나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리어, 자연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지 않고서는 한 순간(one moment)도 계속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世上)과 따로 떨어져 계시지 않다. 그는 자연이 행하는 모든 것을 행하시고 그는 자연이 말하는 모든 것을 말씀하신다. 오직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아주 다른 방법으로 행동하시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가 만드신 세상을 수단으로 행동하시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은 수단을 사용치 않고 직접적으로 행동하시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세상을 창조(創造)하셨을 때 행동하셨던 방법은 후자(後者)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가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행하셨을 때 그리고 그가 우리가 이제 취급하고 있는 초자연적 계시(超自然的 啓示)로 인간에게 말씀하셨을 때 행동하셨던 방법도 역시 후자의 방법이었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계시가 왜 필요하였는가?(Why was this supernatural revelation needed?)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필요했다. 첫째로,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계시는 죄로 인하여(by sin) 우리의 눈에 숨겨지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번 이야기에서 외부세계의 경이들에 의해 주어진 계시의 경우에 이것이 어떻게 사실인지를 보았다. 이러한 경이(驚異)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한다(But men are blinded so that they do not see.). 이것은 우리 속에 있는 그의 음성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에 있어서도 한층 더 분명한 사실이다.


나의 친구들이여(my friends), 여러분은 양심이 무디어진 상태를 경험한 적이 없는가? 여러분은 처음에는 어떤 잘못된 일을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보았지만 그 다음에는 무감각하게 그 일에 빠지고, 그래서 이전에는 여러분에게 잘못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고, 마침내 어떤 슬픈 시간에 여러분은 자신에게 돌아와 여러분이 이미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적이 없는가? 아 정말(Ah yes), 양심의 소리는 죄의 생활에 의해 깊은 심연 속에 잠잠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이러한 무서운 점점 굳어지는 과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아주 두려운 것은, 성경에서 죄에 대한 형벌(a punishment for sin)로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양심의 타락은 또한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啓示)는 죄로 인하여 인간의 눈에서 점점 가리워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시, 죄가 우리의 눈을 가리웠다는 그 사실들을 보여주는 초자연적 계시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계시가 존재한다는 것이 모두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비참(悲慘)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위엄을 계시했다고 생각해보라. 양심의 소리가 우리에게 아주 명백하게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불순종에 대해서 말했다고 생각해보라. 그러한 계시는 얼마나 두려운가!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는 또한, 그의 초자연적인 계시고, 우리에게 다른 사실들도 말씀하셨다. 그는 우리에게 우리가 자연을 통하여 배워야 했던 사실들을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때 그는 우리에게 자연이 전혀 암시하지 않는 다른 사실들을 말씀하셨다.


즉, 그는 우리에게 그의 은혜(His grace)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그는 우리에게 그의 거룩한 율법을 범한 죄인(罪人)들, 그래서 오직 그의 진노를 받아야 할 그들이 무한한 값에 의해 그의 자녀들이 된 그리고 영원히 그의 자녀(His children for evermore)로 살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초자연적 계시를 어디에서 발견하는가? 나는 (메이첸) 우리가 그것에 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이제 한권의 책 안에서 발견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말하기를 원한다. 사실 우리 시대에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스스로 주장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선지자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내게 직접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나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그렇게 말했던 자들은 전부 거짓 선지자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초자연적 계시는 한권의 축복 된 책 곧 성경책(the Bible)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그러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기록하는 하나님의 그 계시에는 놀라운 조화와 완전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간이 있다면 나는 여러분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When sin came into the world), 장차 올 구원에 대한 계시가 있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부서트릴 것이다.


나는 이 약속의 점진적인 실현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에 대해 그리고 모세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특히 여러분에게 위대한 선지자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에서 우리는 초자연적인 계시가 무엇인지를 아주 명백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판(審 判)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형별과 위엄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매우 부드럽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했다.6


나는 이 약속의 점진적인 실현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에 대해 그리고 모세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특히 여러분에게 위대한 선지자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에서 우리는 초자연적인 계시가 무엇인지를 아주 명백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판(審 判)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형별과 위엄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매우 부드럽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했다.


장엄한 어느 해 저무는 시간, 하늘 위에는 어두운 구름이 있지만 지평선 저 아래에는 모든 예술가들의 붓이 표현할 수 없는, 짙고 맑은, 세상에 속한 것 같지 않은 빛이 있듯이, 위대한 선지자들에게는 우리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대한 경고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 경고들과 함께 하나님의 부드러움과 평화의 빛 (세상과는 낯선)들이 섞여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政事)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奇妙者)라, 모사(謀士)라, 전능하신 하 나님이라, 영존(永存)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 1:23).

 

단지 우리의 비유적 표현이 아주 합당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구절들은 우리에게 저녁놀을 나타내지 않고 멀리 떨어진 새벽을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새벽이 점점 더 가까워 오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낮이 오지 전에 자연 만물이 조용해져 있는 그 엄숙한 시간(solemn hour)과도 같다. 목자들은 밤에 그들의 양을 지켰다. 그들에게 하늘의 음성이 들려졌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For  un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ur, which is Christ the Lord -KJV-)”(누가복음 2:11).7


나는 여러분에게 이 구주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곧 그리스도 주, 그분은 예수! 예수는 사람이 말하듯이 결코 말씀하지 않았다. 예수의 전 생애가 초자연적 계시라고 불려질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 예수는 참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단지 사람뿐이지만은 않았다. 또한 예수는 참된 하나님이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예수는 초자연적인 일을 이루셨다. 나는 그의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진 후 사도들을 통하여 초자연적 계시가 영광스럽게 계속되어 온(gloriously continued) 방법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어떻게 신약성경의 서신들에 들어있는 계시에 주의함으로써 이 영광스러운 구주를 오늘날 여러분의 구주로 소유할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다. 나는 장차 올 일들에 대한 약속들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우리의 구주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볼 시간에 대한 약속들 을 가지고 있든 성경의 마지막 책(요한계시록)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렇다.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 계시에는 놀라운 조화와 완전함(symmetry and completeness)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우리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러한 계시의 참 된 ‘기록’을 가지고 있는가? 8 그 계시는 오랜 옛날의 사람들에게 왔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진술이 진리(true)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그 계시와 함께 왔던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참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계시와 계시의 기록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록이 참된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나는 이 강연의 다음 장에서 그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기할 것이다. 영감(靈感) 곧 그 계시가 기록되어 있는 책의 영감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주석

1) G. W. 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Felix Meiner Verlag, Hamburg, 1988), “So wird auch durch die Bestimmung des Verhältnisses, das ein philosophisches Werk zu andern Bestrebungen über densel-ben Gegenstand zu haben glaubt, ein fremdartiges Interesse hereingezogen, und das, worauf es bei der Erkenntnis der Wahrheit ankommt, verdunkelt.” Vorrede, S 4.


2) 로마서2장14-15절. 


3)영단어constitution은헌법:constitution,구성(구조):construction,composition,constitution,concoction.체질:constitution,sieving,temperament.제정:enactment,constitution,imperi-alism, presentation, monarchism, church and state.정체:identity, hull, constitution, form of government, tie-up, hold-up.소질:diathesis, fiber, constitution, fibre의 의미가 있으나 성경 적 구조의 법을 통한 의미인‘구조’를 택하였다.


4)마누엘칸트(Immanuel Kant, 1724~1804):칸트의 묘비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메이첸은이내용을인용한것이다. 칸트의 이 묘비명의 내용은 자신의 3개의 비판서 중에 하나인 그의 나이 65세에 기록된『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Vernunft,1788) 마지막 맺음말 첫단락에 기록된 위 내용을 묘비명으로 쓰여졌다.


5)창세기1장1절“태초에하나님이천지를창조하시니라” 


6)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7)메이첸의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의 이야기는 그의 나이 52살에 출간된『그리스도의동정녀탄생』The Virgin Birth of Christ (Harper & Brothers Pub, New York, 1932)총15장( 전체415페이지)으로 더욱 섬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8)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곧 성삼위 하나님과 인간의 죄를 구원할 자,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록인 성경,곧 그 성경을 진리의 책,생명의 책,구원의 책으로 진실로 믿는가?세상에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두 가지 사람 뿐이다.


[편집자 주 : 2022년 1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8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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