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김동욱] 회한(悔恨)

복음뉴스 0 2022.04.10 17:54

발행인 칼럼 - 회한(悔恨)

글 : 김동욱 목사 (복음뉴스 발행인/편집인) 

 

 

10년 전 이 맘때였습니다. 어머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작고하신 지 2년 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어머님과도 이별하게 될 것 같다는 착잡함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님의 사지는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살집이 거의 없었던 어머님의 팔과 다리가 팽팽하게 공기를 주입해 놓은 것처럼, 부풀어 있었습 니다. 의료진들이 어머님의 병실을 자주 찾지 않았습니다. 의료진들이 어머님께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오전에 회진을 왔다가고, 어머님이 통증을 호소하면 간호사가 와서 진통제를 주사해 주는 것이 의료진이 하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제가 한국에 도착한 지 사흘 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약물 치료로는 효험을 기대할 수 없으니, CT 촬영을 해서 수술이 가능한 지의 여부를 판단하겠노라고, 그렇게 해 보겠느냐고 보호자인 저에게 물었습니다. CT 촬영을 마치고, 어머님께서는 병실로 돌아오셨습니다. 의료진들이 보호자인 저를 만나러 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데, 저를 찾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정오가 가까와졌을 때, 외과 의사가 저를 불렀습니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수술을 해서 회복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으면, 어제 CT 촬영을 마치자마자 바로 수술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수술을 해서 나으실 가능성이 10%가 안 됩니다. 그런데, 어머님의 현재 몸 상태가... 전신 마취를 했을 때, 깨어날 가능성이 30%가 못 됩니다. 의논하셔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수술을 했을 경우에 수술의 경과가 좋아 어머님께서 나으실 가능성이 10%가 못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을 하려면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데, 어머님께서 마취에서 깨어나 지 못할 가능성이 70%가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식물 인간이 됩니다. 수술을 해서 나으실 가능성이 50%만 되어도, 식물 인간이 될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수술을 해 달라고 하겠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동생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습니다. “큰형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큰오빠 결정에 따를께요”, 의료진들에게 “어머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통증을 느끼시지 않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어머님께서 나으실 수 없다면, 고통이 수반되는 모든 진료 행위를 중단하고, 통증을 느끼시지 못하도록 진통제를 무제한으로 투여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어머님과의 이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문병객들의 발길이 끊기는 밤이 되면, 어머님께서 누워 계시는 병상 옆에서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미 말을 할 기력을 잃으신 어머님은 제가 묻는 말에 고개를 겨우 움직이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셨습니다.

 

“엄마, 다시 태어나도 아빠랑 결혼할거야?” 고개를 밑으로 끄덕이셨습니다. “엄마, 하나님한테 (하나님 믿지 않은 것) 용서해 달라고 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하나님 믿는다고 기도해!” 또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찬송을 수도 없이 불렀습니다. 병실에서 큰 소리로 찬송을 할 수가 없기에, 소리가 나지 않게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어머님을 받아 주실까? 어머님을 천국 백성을 삼아 주실지의 여부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에 제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연옥(煉獄) 생각이 났습니다. 캐톨릭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남은 죄를 씻기 위하여 불로써 단련 받는 곳”이라고 설명하는 곳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연옥(煉獄) 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고, 저도 당연히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에 두고 계신 어머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믿는 개신교에도 연옥(煉獄)이라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면죄부( 免罪符)라는 것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절박함이 밀려 왔습니다. 연옥(煉獄)이라는 것이 있으면 어머님이 그곳에 가 계시는 동안 어머님께서 천국에 가실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주고서라도 면죄부(免罪符)를 구입하여 어머님을 천국에 가실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밤 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찬송을 수도 없이 불렀습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제 어미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제 어미가 정신이 온전할 때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지라도, 제 어미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딸로 인(印)쳐 주시옵소서!”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부모님들께서 이 세상에 살아 계셨을 때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한 것이 회한(悔恨)으로 남아 있습니다. 부모님들께서 그렇게 이 세상을 뜨셨는데, 동생들 중 단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한 것이, 자식들 중에도 하나님을 떠나 있는 아이들이 있는 것이 늘 제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동생들은, 자식들은, 조카들은, 손자녀들은 부모님들처럼 이 세상을 뜨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아들들로, 하나님의 딸들로 인(印)쳐 주시옵소서! 그들 모두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이끌어 내시어, 푸른 초장으로 시원한 물 가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이 세상을 뜨게 되는 날,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못한 회한(悔恨)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일은 생기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편집자 주 : 2021년 11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6호에 실린 글입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22 [사설] 어른이 되십시요! 복음뉴스 2022.12.21
421 [김동욱] 마무리 복음뉴스 2022.12.21
420 [조원태] 모르드개 형에게 복음뉴스 2022.12.21
419 [이종식] 나의 목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방법 복음뉴스 2022.12.21
418 [이윤석]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 복음뉴스 2022.12.21
417 [김정호] 아직도 나를 부끄럽게 하는 목회 스승 복음뉴스 2022.12.21
416 [강유남] 새 계명 복음뉴스 2022.12.21
415 [한삼현] 이사야 - 서론 복음뉴스 2022.12.21
414 [조진모] 인간의 부패에 대한 반면교사 복음뉴스 2022.12.21
413 [정관호] 말, 어떻게 할 것인가? 복음뉴스 2022.12.21
412 [이선경] Total Praise 복음뉴스 2022.12.21
411 [이민철] 창조주 하나님 (2) 복음뉴스 2022.12.21
410 [유재도] 무엇이 예수님을 권위있는 교사로 만들었는가? 복음뉴스 2022.12.21
409 [김현기] 카메라 렌즈 조리개에 대하여 복음뉴스 2022.12.21
408 [김경수] 외로움을 치유하라 복음뉴스 2022.12.21
407 [한준희] 신학이란 무엇인가? (1) 복음뉴스 2022.12.21
406 [조희창] 로닝 커닝햄을 만나다 복음뉴스 2022.12.21
405 [오종민] 무엇을 남기고 떠나시겠습니까? 복음뉴스 2022.12.21
404 [양춘길] 필그림과 메이플라워 복음뉴스 2022.12.21
403 [박시훈] 감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복음뉴스 2022.12.21
402 [김혜영] B와 D 사이 복음뉴스 2022.12.21
401 [김용복] “목사님이시죠?” “아닌데요.” 복음뉴스 2022.12.21
400 [곽상희] 물고기 사랑 복음뉴스 2022.12.21
399 [임현주] 그릇 이야기 복음뉴스 2022.12.21
398 [배성현] 머리 둘 곳 없는 예수 복음뉴스 2022.12.21
397 [박인혜] 가을 단풍 복음뉴스 2022.12.21
396 [양희선] One Way Ticket 복음뉴스 2022.12.21
395 [사설] 한심했던 뉴저지교협 제36회 정기총회 복음뉴스 2022.11.17
394 [김동욱] 바른 호칭을 사용하여 기도하자! 복음뉴스 2022.11.17
393 [강유남] 죄의 시작과 본질 복음뉴스 2022.11.17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