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님? ⑨ 세월이 유수라 했던가?
글 : 권캐더린 목사 (기쁨과영광교회)
벌써 2022년의 한 달이 지났다. 새해 인사를 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한 달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2022년 1월은 역사 속에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젊은 시간은 길고 노년기는 짧다는 말이 생각난다. 세월이 총알보다 더 빠르다. 연초에 계획했던 그 일들은 잘 되어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연초에 생각했던 길에서 조금씩 빗나가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그곳에 서있는가?
세월이 유수와 같다... 이 말은 아쉬움에서 오는 말이다. 한정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요,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가 싶다. 만약 우리에게 시간이 한정 없이 있다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들 무슨 대수겠는가? 마르고 닳도록 쓸 시간이 남아 있는데 말이다. 인생은 끝이 있고, 그 끝이 오기 전에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 한 채 시간이 유수와 같이,흐르는 물처럼 빠르게 지나고 있으니 아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생,로,병”에 관심을 집중했던 의학계가 “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생의 마지막에 대한 관심이다. 생명의 연장 치료로 환자 의 마지막 날들이 무작정 길어지고 있는 현상과 상관이 있다.
의사의 의무는 환자를 고쳐서 오래 살아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보던 데서 환자가 품위를 유지하며 편안하게 마지막을 보내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생명연장 대신 환자의 웰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의사는 말기환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라고 이 분야 전문가인 아툴가완디 박사는 권한다. “미래에 대해 어떤 두려움과 걱정이 있는가? 남은 날들 동안 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인가? 희생할 수 있는 것과 절대로 희생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아주 좋은 날이다 싶은 말은 어떤 날인가? 생의 벼랑 끝에 서 있어서 일 초도 낭비할 시간 이 없으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만을 챙긴다는 자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자가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살다 가게 해주는 것이 목표이다.
18개월 전 어머니가 위독하실 때 의사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수술을 해도 생존율이 낮다 하며 고통없이 편히 계시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어머니가 병원을 오가시며 양로원에 계실 때 제게 한 부탁의 말씀이 있었다. 생명을 연장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말고 편히 가게 해달라는 당부의 말씀이셨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말씀과 의사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병원에서 가족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첵업을 하더니 어머니가 운명하셨다는 말에 우리 가족들은 펑펑 눈물만 흘리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보려 애써도 대답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리도 인생이 허무한가? 어머니하고 공원에 나가 함께 웃으며 놀던 일들이 떠오르며 세월이 마냥 야속했다.
몽둥이 들고 지켜도 못 막고 철사줄로 동여매도 잡지 못하는 세월… 더 늦기 전에 좀 더 의미있게 사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10) “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4:14)
우리의 인생이 안개와 같이 허무한 것이라면, 잡을 수 없는 세월의 유수함속에 살고 있다면,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천지창조의 하나님,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이 새해에 이 일은 분명 생애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편집자 주 : 2022년 2월 1일 자로 발행된 <복음뉴스> 제9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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